특수하지만 특수하지않은 특수교육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12월부터 2월 사이가 가장 심란한 시기인 것 같다. 이유인 즉슨 12월엔 내년 부서 및 담임 여부에 대한 신청을 받고 2월이 되면 새 학기 담당 업무 및 해당 학년과 반 배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일부 선생님들은 예민한 채로 지내시는 분도 많다. 나 역시 평온하게 지내려고 해도 내년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부장교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미 포기한 상태지만 담임까지 한다면 그건 정말 힘든 한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즘은 다들 담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선배교사들은 후배교사들에게 사명감이 없느니, 편한 것만 찾는다 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학급을 운영하는 것이 녹록지가 않기에 이해를 많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학교 분위기나 문화로 봤을 때 담임은 정말 힘든 '직'이 분명하니 말이다.
내가 교사가 처음 됐을 때는 1학기 말부터 5개월 정도만 했기에 담임은 할 수 없었다. 학기는 이미 시작된 뒤였고 교과 교사 선생님께서 휴직을 하시는 바람에 그 자리에 기간제 교사로 지냈기 때문에 그 선생님 하던 일을 이어서 해야 했다. 교과 교사로 지내면서 학교 생활을 했는데 당시엔 담임인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자기 담당 학년이 있고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을 찾는 모습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나에겐 가장 좋은 시절 중 하나였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첫 해 짧게 일했던 그 시기와 작년을 제외하고 매년 담임교사를 해왔다. 담임을 하면서 내가 부러워했던 것들이 채워졌지만 교과 교사로 지낼 때의 여유는 더 이상 없었다. 처음에 담임을 했을 땐 일이 많아도 많은지도 몰랐다. 내 교실과 내 학생들이 있어 그저 좋았다. 학부모님들께서 예민하신지 아니면 무관심 하신지에 대한 감도 없이 그저 우리 반이라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선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담임을 하는 것이 좋았다. 학부모님들과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했고 내가 가진 능력이 많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남겨 주고 싶었기에 이것저것 배워가며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점이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담임을 했던 어느 해에 내가 느낀 것 중 하나가 '혼자 너무 유독 눈에 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을 넘어서 자만심이 넘쳤던 것 같다. 내가 하는 것만 옳고 다른 분이 하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집과 자만' 이것이 나에게 생긴 것이다. 당시 나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있었으니 '과유불급'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쳐 오히려 독이 된 시절이었다. 수업 중에 잠깐 노크를 하거나 조금만 방해가 된다고 생각이 들면 인상을 쓰기도 했고 속으로 '아니.. 수업을 방해하는 저런 행동이 맞나?'라는 생각을 혼자서 하곤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교에 있다 보니 아주 가끔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 대부분이었으며 수업을 방해하는 일 자체는 정말 잘못되었지만 학생들과 나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말씀을 하셨으니 말이다. 매일 그렇게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런 것이니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수업을 이어나간다면 그 선생님도 나도 서로 감정 상하기보단 조금 더 효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좀 더 유연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직관에 따라 이 조차도 이해 못 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나는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만 무언가를 하려는 것. 이것도 담임을 하면서 간과 한 것 중 하나였다. 특수학교는 동학년이 적게는 한 반, 많으면 3개 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 보니 동학년 선생님들 간의 호흡도 중요하다. 행사가 있을 땐 함께 회의를 하기도 하고 어떤 활동을 할 때도 서로 공유해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간혹 그런 것을 싫어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못하겠다. 자기 반 위주의 활동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다른 분이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공유가 되어야 하고 조율도 필요하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시는 분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을 만나면 서로 각자 자기 반을 이끌어 나가는데 함께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이때 고민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예전의 '아집과 자만'으로 가득 찼던 나 같았으면 속으로 엄청 비난을 하며 인상을 쓰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보니 결국 나만 손해였다. 내 감정만 상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서 다니는 학교인데 다른 분으로 인해 학교가 싫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존중하기로 하고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비교를 하기도 했다. 그 또한 눈치가 보이기도 했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요즘은 그런 경우가 생기면 '좋은 선생님 만난 아이들은 좋겠네...'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만큼 주변 선생님들과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젊을 땐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경력이 차고 나니 점점 눈에 들어와 이제는 담임의로서 '상생'이 즐거운 학교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담임을 하면서 매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부담감'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독특한 행동이나 주변 선생님들과의 조율 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결되었지만 부담감은 점점 늘어갔다. 이 부담감은 학급 학생들에 대한 부담감과 학부모에 대한 부담감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특수학교는 한 학급 학생이 최대 7명이다. '7명이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예전에는 경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과 중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 비율이 반정도였다면 요즘은 경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이 1~2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어려운 점이 많겠으나 그래도 하나를 뽑으라면 체력이다. 특수교육 실무사 선생님이나 사회복무요원이 있다고 하지만 담임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등교 후부터 하교 때까지 챙길 것이 많다 보니 오후가 되면 녹초가 된다. 당떨어진다고 간식 먹고 집에 가선 폭식하는 경우도 많아 건강도 안 좋아진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잠깐 회복했다 다시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런 생활을 수십 년간 하니 특수교사들도 잔병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학부모님들의 민원이 많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직까지 나는 그런 적은 없으나 다른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학부모님 때문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되고 있는 듯하다.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비단 교사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다양한 직군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모든 직업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예전보다 교직생활이 더 힘들어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담임교사보다 교과교사를 선호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담임이 아닌 교과교사의 생활은 어떨까? 첫 해 이후로 담임만 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담임이 아니라 교과교사로 한 해를 보내봤다. 교과교사는 담임에 비해 부담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작성해야 할 문서가 줄어들고 챙겨야 할 학생과 상담해야 할 학부모도 없다. 그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열심히 하고 그 결과를 충실하게 기록만 하면 됐다. 외부활동을 할 때도 도움이 필요한 반에 배치되어 '정'이 아닌 '부'가 되어서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었다. 체력적으로는 너무나도 편한 것이 교과교사였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임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그리웠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오늘이 되니 자기 담임만 찾는 것이었다. 서운할 정도로... 그리고 행정업무가 상당히 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일이 많다 보니 그 밖에 행정 업무를 더 많이 해줘야 했다. 그래야만 서로 평안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학교라는 곳은 잠깐 일하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서로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살겠다 하면 모두가 죽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행복한 직장이 되기 위해선 서로가 조금씩 양보 할 수밖에 없다. 담임을 좋아하고 잘하는 경우에도 격년으로 담임과 교과를 할 수 있다면 서로 숨통이 조금은 틔지 않을까?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에서 순환제가 당연 시 되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