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하지만 특수하지 않은 특수교육
학교에 있으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선생님이고 하나는 부장님이다. 나 역시 다른 선생님들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부장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는 관리직 교사 이외엔 모두 평교사다. 하지만 학교 운영에 필요한 부서가 있고 그 부서의 팀장 격인 부장교사가 있다. 우리는 흔히 부장교사를 보직교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부장교사를 할 수 있을까? 교사 생활 중 원한다면 언젠간 한번쯤은 할 수 있는 것이 부장교사다. 부장교사라고 해서 특별히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수업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부장교사 기피로 인해 수당도 늘려주고 특정 부서의 부장교사는 수업 시수 감면도 해준다. 그렇지만 일부 부서만 그렇고 대부분 부장교사는 업무와 함께 담임을 하는 경우도 있고 수업 시수도 다른 교사들과 동일하다. -학교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 부장은 담임에서 제외하는 곳도 있고 수업 시수를 조금 줄여 주는 곳도 있다.- 아무튼 부장교사는 그만큼 책임감이 크고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런 부장교사를 하고 싶어 하는 교사도 있고 하기 싫어하는 교사도 있는 곳이 학교다.
나 역시 처음엔 평교사로 한 부서의 계원으로 일을 했다. 계원으로 있으면서 내가 만난 부장교사는 꽤 많은 편이다. 매년 부장교사가 바뀌었으니 내가 부장을 하기 전까지 6~7명 정도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부장교사도 있었고 절대 만나지 말았어야 할 부장교사도 있었다. 좋든 싫든 내가 만난 그분들 덕분에 나 역시 부장교사가 되었을 때 어떤 위치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부장교사가 된 것은 진로전담교사 연수를 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진로전담교사가 되니 진로부서의 부장을 권하셨고 고민 끝에 하게 되었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수업이나 행정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큰 어려움(?) 없이 첫해를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는 진로전담교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진로부의 부장교사도 계속 하게 되었다. 사실 부장교사라고 해도 각자의 업무가 있어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럴려면 계원 선생님들의 업무도 파악하고 있어야 했고 경청 후 결단을 내리는 역할도 잘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보다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만 잘하려는 성향이 더 강했기에 부장교사라는 타이틀이 맞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가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시는 계원 선생님들께 어려움이 생기기에 어떻게든 해야 했다. 이런 고민을 교감선생님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교감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부장을 한다는 것이 힘들어요. 나 역시 맞지 않는 부서에서 부장을 하기도 했는데 연기하는 것처럼 했어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깐 어떻게든 해야지요." 그랬다. '연기하는 것'처럼... 그래야 나도 조금은 부담이 덜고 내 업무를 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연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몰랐다. 과장해서 하라는 것인지, 주연처럼 일을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를 속이고 생활하라는 것인지... 아직도 '연기'에 대해선 알기 어렵다. 하지만 몇 년간 부장교사를 하면서 여러 계원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데 나는 부장교사로 있으면서 최대한 계원 선생님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다.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계원 선생님들께 '무'에서 '유'를 창조해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계획을 다 세우고 그 일에 대해 의견을 물은 뒤 함께 해나가려고 했다. 계원 선생님이 나랑 비슷한 생각이나 성향이라면 정말 잘 맞아서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수행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재미였고 기쁨이었다. 결국 그 일들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랑 함께 수업하는 학생들에게 적용되기에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의 성향인 교사를 만났을 때나 무기력한 교사를 만났을 때는 정말 피곤해서 모두 하기 싫어졌다. 어느 해에는 무기력 그 자체인 교사를 계원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작년에 했던 일도 제대로 못해 그 뒤처리를 여러 번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그지없었다. 그냥 업무분장표에 나와 있는 그 일만 제대로 해줘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엔 그 선생님게 불만이 가득했다. 학교 생활 중에도 얼굴이나 말투에 다 드러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오히려 그 선생님은 나에게 불만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분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에게 엄청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싫은 표정이나 말투로 대했으니 얼마나 내가 싫었을까? 당시엔 오로지 내 기분, 내 일이 먼저였기에 그 선생님의 기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제대로 못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옹호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때 내가 그 선생님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대했다면 적어도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싫어도 싫은 티 안 내고 모두를 대하는 것... 그것이 '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부장교사를 몇 년은 더 해야 한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너무 잘 안 하다. 나와 만날 계원 선생님들이 나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맞으면 좋겠지만 아니라고 해서 그분들을 무시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는 존중해 주는 부장교사가 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계원이었을 때 존경했던 부장님들처럼은 아니어도 최소한 함께하기 싫은 부장교사는 안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