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하지만 특수하지 않은 특수교육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특수교사가 되고자 했던 마음보다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고 난 그 길을 선택했다. 이후 힘겨운 시간이 있었지만 특수교사로 진로를 선택해서 지내고 있다. 기간제 교사로 지낼 때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임용시험'
졸업 후 이 과정만 통과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내 세상이 올 것만 같았다. 임용 대기 기간이 생긴다면 평생 숙원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가고 싶었고 해외 파견도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저 생각일 뿐 현실은 수년간 '불합격'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고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현재 학교에 임용이 되었으나 내가 계획했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 업무에 휩싸여 지내고 있다.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었다.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면서 본받을 점이 많은 선배 교사께서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선생님. 특수교사가 되더라도 자기만의 특기나 전문성을 가져야 돼. OOO선생님처럼 교육과정을 하든, 컴퓨터를 잘하니깐 공학을 하든 전문분야 한 가지는 키워가면서 생활해."
당시엔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당장 임용시험에만 목을 매고 있었고 아주 좁은 시야로 학교 생활을 했기에 그저 딴 선생님들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년간 학교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선배 교사께서 해주신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나는 나만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진로를 생각해야 했다.
특수교사가 특수교육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교과서, 교육과정, 행동중재, 상담, 진로직업 등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서 조금 더 깊이 있고 오랫동안 하게 되면 전문성은 키워진다. 나 역시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긍정적 행동지원(PBS)'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행동(도전적 행동)에 대한 지도에 관심이 많았다. 특수학교엔 남들이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문제행동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니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남자교사가 담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학생들을 몇 해 지도하다 보니 나름 요령도 생겼는데 이 요령이라는 것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것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운 생활 경험에서 나온 지혜의 덕을 더 많이 봤다. 그래서 이런 지혜를 뒷받침해 줄 만한 전문성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때마침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우리 반 학생이 선정되어 조금 더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하지만 나에게 재미있는 이 이론이 현장에선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은 혼자 잘해서 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부모도 참여를 해야 했고 전문가도 필요했으며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 했는데 가치관들이 다르다 보니 생각보다 조율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시키기엔 턱없이 전문성이 부족했다. 그렇게 이 분야는 조용히 혼자서만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나중에 우리 반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 있을 때 잘 지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면 될 정도로만 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것이 '진로전담교사'였다. 진로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특수학교에도 진로전담교사를 배치해야 했고 내가 임용되기 전 첫 해가 실시되었다. 처음 지원할 때도 학교에 지원자가 없어 되든 안 되든 호기심에 지원하게 된 것이었다. 예전부터 학생의 진로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에 호기심도 있었지만 조금 더 깊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한 학교에 1명은 필수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발이 되고 나서 겨울 방학 내내 연수를 듣고 학기 중 과제 및 연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름방학 연수를 끝으로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수를 듣는 내내 든 생각이 '아! 괜히 했다'였다. 특수학교에 진로전담교사가 예전에는 없다 보니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들도 무엇을 하는지 몰랐고 당연히 담임교사가 하고 있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들이 많았다. 현장에선 수업지원도 받고 업무도 수월해 보이니 불신이 많았던 것이다. 진로전담교사를 수행하고 있는 선배교사들도 어제까지 인정받고 열심히 하는 특수교사에서 소위 ' 여유로운 진로전담교사'로 인식되다 보니 자존감이 많아 낮아진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행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계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늘 불평불만만 하고 있을 순 없어 선배교사들과 함께 하는 연구회 활동도 하고 책도 찾아보며 나름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분명 지금은 힘들고 괴로워도 시간이 흐르고 나만 멈추지 않는다면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오늘도 열심을 다하고 있다.
요즘 드는 생각 중 한 가지가 '이렇게 특수교사를 하다가 명예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하면 그 뒤에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언제까지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와 같은 것들이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분명 일도 많고 복잡한 생활이다. 하지만 1년을 단위로 보면 아주 단조로운 생활이다. 개학 후 1학기 - 여름방학 - 2학기 - 겨울방학 이 생활이 매년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20년 정도 하면 정년퇴임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내가 과연 지금처럼 에너지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다른 학교 진로전담 선생님께 털어 놓은 적이 있는데 명쾌한 답을 주셨다.
"나는 지금 애들이 좋고 재미있어서 다니는 거야. 근데 내가 애들이 힘겹고 싫어지면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둘 거야."
너무나 명확한 답이었다. 애들이 싫어지면 나가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분명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나 역시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가장으로서 역할이 상당하지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가장 노릇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내가 또 다른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해보려고 한다.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분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