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특수학교 학생의 진로
특수하지만 특수하지 않은 특수교육
'진로'
이 단어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들어간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소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극소수 있겠지만 대부분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할 것이다. 좁은 의미로 보면 '직업'이 곧 진로일 수 있겠으나 좀 더 넓은 의미로 보자면 직업뿐만 아니라 '인생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더라도 진로는 '앞으로 나아갈 길' 즉, 자신의 인생 방향을 뜻한다. 학생 때부터 듣게 되는 '진로'라는 단어는 특수교육에서도 언젠가부터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특수교육이 시작되고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일반 학생들뿐만 아니라 장애 학생들 누구나 듣고 있고 듣게 되는 진로에 대해 통합학급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다 보니 이야기하기가 부담스럽고 특수학교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장애학생들에게 진로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대학? 일자리? 꿈? 우리나라의 전체 학생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본 학생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학생들은 진로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학생들은 고등학교로 가는 것이고 고등학생들은 일자리나 전공과로 가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장애가 경한 통합학급 학생들은 사정이 좀 더 낫다. 대학에 가려고 하는 학생들도 있고 뭔가 일을 하고 싶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면 중증의 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진로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자신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운데 미래의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학생들의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보통 중증 장애 학생들의 진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은 부모님과 특수교사다. 부모님은 보호자로서 자식들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고 준비한다. 교사들은 자기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어디라도 소속이 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만큼 일반 학생들에 비해 장애 학생들은 진로라는 문이 좁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아마 특수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은 장애학생들이 졸업 후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감이 없거나 시설 혹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학생들도 나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선택하기도 하고 이끌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일반학교도 그렇겠지만 특수학교도 고3 혹은 전공과 2학년 담임교사들의 부담이 제일 크지 싶다. 초등학교, 중학교의 경우 상급학교로 진학을 시키니 서류 작업 외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고3, 전공2 담임은 서류 작업 이외에도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크게 고민을 많이 한다. 고3의 경우 취업을 하거나 전공과로 진학을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모두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고민이 많을 수 있다. 어디든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야 그나마 마음이 덜 무거운데 그렇지 못하면 부모님만큼이나 속상하기 때문이다.
졸업을 전제로 특수학교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있을까? 예전 고3 담임할 때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선은 전공과 진학을 목표로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했고 전공과 전형에서 떨어진 학생들은 지역내 '장애인주간보호센터'로 안내를 했었다. 그 시설에 TO가 있으면 졸업 이후부터 바로 이용가능하고 아니면 대기를 했다가 이용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전공과라는 뚜렷한 목표와 대체 가능한 기관 등에 대한 아주 얕은 정보로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특수교사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졸업반 담임교사에겐 정보가 곧 실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진로전담교사가 되었고 전공과 담임교사까지 하게 되면서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전공과 담임을 하면서 알게 된 점은 학부모님과 학생들은 예전 보냈던 지역사회 내 시설 이외에 더 많은 경로로 진로를 선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특수학교에서도 몇몇 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하기도 하며 일부는 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까진 대학보다는 취업이나 장애인 이용 시설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진로는 몇몇 유형으로 나뉘었다. 우선 능력이 뛰어난 경우-보통 이 경우엔 문해능력이 뛰어나며 대중교통 이용, 신변처리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경우이다-는 취업을 한다. 이때 개인의 선호도나 흥미에 따라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 같이 조건이 좋은 곳에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는 학교에서 바리스타 실습 시간을 좋아해 복지관과 연계하여 카페에 취직한 경우도 있다. 바리스타라고 해서 모두 커피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개인 카페나 ***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는데 막상 근무하면서 청소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 학생 같은 경우엔 직접 커피를 제조하고 서빙을 하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학생은 사무실에서 분리수거하는 직종으로 취직을 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취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도 하고 지역적 특색에 따라 업종도 차이가 많다. 취직이 어려운 학생은 '장애인 보호작업장' 이용인이나 '직업재활센터' 등으로 간다. 이곳에서 직업 훈련인 신분으로 지낸다. 이곳으로 학생을 보내면 감사하면서도 아쉬움이 크다. 조금만 더 잘한다면 월급을 받는 직장으로 보낼 수 있는데 훈련비만 받고 지내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졸업생들을 받아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위 두 유형이 모두 어려운 학생들은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장애인복지관', '평생교육지원센터' 등으로 간다. 이런 시설들도 이용 대기자가 많아 바로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해 졸업 후 이용하고자 하는 시설의 TO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빨리 들어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2월 졸업 전까지 어떻게든 뭔가 결정된다면 담임의 부담은 좀 줄어드는데 이 또한 졸업반 교사의 고충 중 하나이다.
진로지도를 하면서 많이 드는 생각이 있는데 중증의 특수학교 학생들은 진로 즉, 꿈이라는 것이 없을까? 대화가 가능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이 학생들도 하고 싶은 것이 존재한다. 다만 그 벽이 너무 높아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로상담을 하다가 미래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뭐가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경찰관', '소방관', '의사', '군인', '선생님' 등 다양한 직업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미안하지만 너는 그 직업을 못해. 시험을 볼 수 없어. 대신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할 수는 있어. 경찰서에서 일할 수도 있고 소방서나 학교에서 일할 수도 있어." 이다. 누군가는 꿈을 짓밟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대신 헛된 기대감보다 그 벽을 낮춰 함께 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진로라고 해서 꼭 직업만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로 인생의 방향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알려 줘야 한다. 직업을 못 가지면 패배자의 인생이 아니라 다양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좁은 선택지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알려 주는 것. 그것이 곧 나의 일이고 내가 더 노력해야 할 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