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Apr 13. 2021

불면증 날리는 텃밭 일구기

고추, 부추, 방울토마토, 고수를 심다

 전주 남부시장은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한옥마을이 지척에 있어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토요일 저녁 먹거리 행사가 늘 열리던 곳이다. 미니 사과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시 식물병원에 들렸다. 


남부시장에는 농사, 원예용 모종을 파는 곳들이 즐비하다. 그중 우연히 알게 된 '전주 식물병원'의 단골이 되었다. 2대가 함께 운영 중이시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어제 그토록 예쁘게 매달려 있던 꽃들이 바람에 떨어져 버렸다. 어젯밤 강풍이 불었다고 한다. 안쪽에 있던 것은 그럭저럭 남아 있다. 미니 사과 꽃과 홍로(홍색 사과 품종)는 그 모양새가 비슷하게 보인다. 단지 홍로가 훨씬 꽃의 크기가 크다.


그래서 홍로사과를 대신 찍는다. 그러다가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배달은 그냥 오늘 해 주세요. 바로 심으려고요. 네. 그런데 이 모종들 너무 귀엽네요. 저 방울토마토 몇 그루 키워볼래요. 그때 5포기 심었는데 엄청 따 먹었거든요. 어? 그런데 고수도 있네요. 고수 정말 맛있어요. ㅎㅎ 아 맞아요. 향이 강하지요. 저는 고수 향을 좋아해서요. 그런데 부추도 잘 자라던데요. 부추 모종도 조금만 주세요. 와~! 여기 오이 고추 모종도 몇 포기 주세요 네, 거기 마당 넓은 집으로 가져다주세요. 뭐하는 곳이냐고요? 퇴직하면 공방 하려고요. 그림이나 자수 등등 체험하는 곳 하려고 그래요. 그림 배우러 오신다고요? 와~ 그래요?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살고 싶으셨다고요? 사장님께 그런 감성이 있으시다니 새롭네요. 그런데 언제 퇴직할지 몰라요. 하하하.

짧은 시간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원래 사장님 꿈은 시인이셨다고 하신다. 친구들이 너는 시나 쓰고 살 줄 알았다고 한단다.(시나 쓰며   같았다고 하신 부분의 뉘앙스는 그게 편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묻히고 사는 삶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신 듯하다. 사실 시나 쓰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것임을 나는 잘 이해한다. 그리고 지금의 생활도 좋아 보이 신다)


그래도 꿈을 지닌다는 것은 삶을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언젠가는 이루시리라 여긴다.


상호명을 식물병원이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과거에는 식물에도 농약을 독하게 했는데 지금은 농약 먹고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그만큼 독성이 강한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죠. 계속해서 좋은 약을 개발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농약 대신 '식물 보호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전주 식물병원이란 상호명을 쓰게 된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나름의 철학적 해석이 있으셨다. 늘 부지런한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가게다.


이것저것 모종을 두세 포기씩 골랐다. 사장님께서 나무 샀으니 덤으로 주신다면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더덕 모종
부추 씨앗이 꼭지에 대롱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야호~~! 맛있겠다. 몇 년 전에 아기 토마토를 화단에 심었는데 엄청 많이 열렸다. 그때 사장님께서 지주대를 1.5미터를 주셔서 너무 크다고 1미터로 사 왔었는데 한 뼘 모종이 2미터 가까이 자라게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방울토마토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번 키워본다면 좋을 듯하다. 부추는 잔디만큼 생명력이 강해서 잘라서 먹으면 또 자라고 또 자란다. 그래서 몇 년 전, 화단에 심어 열심히 잘라 부추전을 부쳐 먹었다.


지금 리모델링되는 곳의 명칭은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짓기 전까지 <꿈꾸는 마당>으로 해야겠다.


나는  <꿈꾸는 마당>에 먼저 가서 호미질을 조금 했다. 곧 약속한 시간에 사장님께서 스카이로켓 4그루, 목련 큰 것 하나, 미니 사과나무 하나 그리고 각종 모종들을 가져오셨다.


스카이로켓은 잔디 가장자리에 띄엄띄엄 놓던지 화분째 이동하려고 생각 중이다.


사장님께서 기존 목련을 뽑고 가져오신 목련의 식수를 직접 해 주셨다. 맨 처음 심은 벚꽃나무도 사장님께서 심어주시고 가셨다. 물론 다른 나무들 심기가 더 힘든 점은 있었지만 한 그루 식수도 감사할 따름이다.

길가 쪽의 담장 시멘트는 크림 화이트로 색칠될 예정이다.

공간의 앞집 대문도 흰색으로 칠해주고 싶은 지경이나 꾹 참고 나의 공간만 가꾼다.

마당 정리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신 담 쪽은 텃밭을 내기 위해 비워 둔 곳이다.
내가 얻어온 모종들
고추 모종 밭고랑 하나 내는데 이리 힘이 들다니.
부추
고수

오늘 적기에 남편이 들르지 않았다면 캄캄할 때까지 혼자 했거나 모종은 정말 내일 심었을 것 같다. 밭고랑 1.5미터 만드는 데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문제는 너무너무 돌자갈이 많다는 것이다. 꼭 시골 농막 주변 돌자갈들 같이 생겼다. 남편이 내일 농막에서 낮은 개비온을 가져다준단다. 그 안에 돌들을 넣으면 딱 맞춤일 듯하다.


너무 추워서 내가 심은 고추, 부추, 토마토, 고수가 떨지 않기를 빈다.


일을 서둘러 마치고 나니 허기가 밀려온다. 가까운 음식점에서 함께 고랑을 내 준 남편과 삼겹살을 먹었다. 아직은 부엌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두릅전은 못해 먹겠다. 두릅 대신 묵은지를 구워 먹었다. 내일은 꼭 두릅전을 먹어야지 생각한다. 나의 텃밭의 고수가 잘 자라고 고추가 열리면 삼겹살을 유리 지붕이 있는 정원에서 먹어야겠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


너무 졸려서 꾸벅거리며 글을 완성한다. 역시 텃밭이나 나무 가꾸기는 불면증인 분께 강추드린다.




(4.13. 목련을 다시 심은 날)



남편이 개비온 재료를 가져와서 틀을 만들었다. 돌들을 채우니 금세 이만큼이다. 앞으로도 땅을 파면 또 나올 것이다(4.14).


개비온은 다시 철거하기로 했다. 돌들은 데크 아래 넣든지 없애야 할 것 같다. 팔뚝만 철사에 긁히고 말았다. 약한 상처라서 다행이다. 개비온 비추천이다. (4.15)

코니카 가문비가 아주 기분 좋게 잘 있다. 계속 씩씩하길~ 태양광 불빛이라서 한두 시간 정도 반짝거리다 사라진다. 밤엔 나무도 숙면을 취하겠지.

벌써 크리스마스 된 것 같다. 담장은 맨 위 미장으로 처리한 부분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얼른 크림 화이트 되면 좋겠다. 오늘도 홍가시 4그루 심었다.


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공사가 정말 더디게 진행된다. 텃밭의 목련과 홍가시를 뽑아 시골로 가져가면 상추 모종도 심으려고 한다.


모종을 심기에는 1주는 더 있어야 좋다고 한다. 아직은 조금 춥다.



<집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이전 04화 아름답게 살기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