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아이의 맨발은 참으로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또 무슨 단어가 있을까. 앙증맞고 깜찍하고 천사다.
마당의 잔디는 푹신하다. 그간 동분서주하여 정작 한 번도 맨발로 놀아보지 않았음을 알았다.
울 엄마 발은 곱디고운데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하도 싸돌아 다녀 발이 예쁘지 않다. 아빠를 닮았을 것 같다. 아빠 발가락들을 유심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모르겠다. 아빠 발 한번 찍어 놓을 걸 아쉽다.
나는 늘 어릴 때 엄마가 신발을 너무 큰 것으로만 사 주셔서 그렇다고 하면서 못난 내 발을 엄마 탓으로 돌렸다.
내가 큰 딸이니 커다란 신발을 사서 늘 헐떡거리고 다녔다. 중국의 전족이란 것에 비한다면 행복한 한국의 소녀였지만 나는 정말 싫었다. 어떤 때는 개울 아래 떨어뜨려서 그것을 주우러 다리 아래 내려가기도 했다. 때로는 떠나려 가는 물 따라 열심히 뛰기도 했다. 물에 내가 함께 떠나려 가지 않아 오늘 살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엄마는 반대로 말씀하신다.
넌 항상 새 것을 신었잖아.
그건 사실이다. 그 부분에서 할 말이 없다.
엊그제 깎아 잔디가 덜 폭신 거린다. 파릇하고 부드럽던데 그때 깎아줘야 하다니 아쉬웠다. 더 길면 깎기 힘들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깎으니 꼭 까까중머리처럼 되었다.
그래도 맨발로 밟아 보니 기분이 좋다.
라 라 랄 라~~~ 라 랄 라~~~
지나는 분만 없으면 왈츠라도 추고 싶다. 꽃들이 내 심정을 아는 듯 바라본다. 이렇게 혼자 놀고 있는데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시 들른 다는 것이다. 상자를 들고 왔다. 바로 장화다. 요 전날 왔다가 잔디에서 슬리퍼 신고 다니니 풀이 발에 끼고 좋지 않을 것 같았단다.
동료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예뻐서 차마 맨발로 뛰어놀았다는 말을 못 했다.
장화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는데 장화를 들고 오다니 참 이런 신기한 일이 있다.
어린날에 예쁜 비옷과 장화를 신고 싶었다. 물론 입어 본 적이 없었다. 날 것으로 비를 맞고 돌아다녔을 뿐이었다. 후에 내가 엄마가 되어 그 로망을 담아 나의 딸들에게 노란 장화와 빨간 비옷을 사줬었다. 우리 아이들은 기억하려나 모르겠다.
이제 장화를 신고 화단의 풀을 뽑는다. 에잇, 비가 오니 잡초들도 신이 나서 새싹을 내놓았다. 너무 많다. 문제는 엊그제 꽃 양귀비를 꽃씨를 뿌렸는데 새싹이 꽃인지 잡초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다 뽑아야 하는 현실이다. 화분에 씨앗을 뿌린 후 옮겨 심었어야 했다. 후회해도 어쩔 수 없으니 다 그냥 뽑아야 한다.
해가 쨍쨍할 때 호미로 긁적거려야 할 듯하다.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또 졸린다.
딸로부터 사진이 왔다. 서울의 밤이다. 아이들과 나는 이렇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서울은 한참 좋은 시간이다. 젊음이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본시 야행성이었건만 세월은 나의 시간을 이렇게 바꾼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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