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대한 단상
지난 포스트, <오늘 날씨 맑음>에서 산행에 대해 언급했다. 날씨가 맑아서 떠나거나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러 나간다. 눈이 오면 나갈지, 집안에서 눈 내리는 모습을 볼 지, 창 넓은 곳에 앉아 따뜻한 차나 커피를 두 손에 감싸고 부산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것인지 선택한다.
소설에서 시작 부분에 비가 내린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하는 설정은 주로 어떤 역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킴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아 번역의 의지를 불태웠다. 일부분을 소개한다.
봄, 산, 바다 Spring, Mountain, Sea
1954년, 롭 엘드레드가 바다 건너 나라에서 신부를 데리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이른 겨울이었다. 그들은 초겨울의 강한 눈보라를 뚫고, 도시의 북쪽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마침내 입도 떼지 못하게 하는 세찬 눈발이 새 차의 지붕 위로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 듯했다.
롭은 끊임없는 실망감을 억누르면서 쉬지 않고 천천히 운전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대한 모습을 해군으로 지내던 동안 꿈꾸어 왔지만 그런 꿈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폭풍으로 인해 좁아진 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하얀 들판의 어느 곳을 보아도 모두 흐릿한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펼쳐진 하얀 바다는 헐벗은 나무나 외딴집 혹은 쭉 뻗은 금속성 울타리로 인해 가끔씩 끊어졌다. 이렇게 내린 눈이 아지랑이 피는 초록 들판과 짙푸른 호수가 있는 봄을 맞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롭에게 조차, 이곳은 황량하고 고독하게 보였다. 빨간 모직 코트의 칼라 깃을 여미는 제이드 문을 흘낏 훔쳐보았다. 그녀의 눈은 안식처를 찾는 듯이 펼쳐진 풍경을 훑어보고 있었다.
(킴 에드워드의 <불의 제왕>이라는 단편 소설 중 일부 - 번역 루씨)
아는 분 중에 현장 노동일을 하시는 부부가 있는데 비가 오면 작업을 못해서 수입이 줄어든다고 한다. 태풍에 대비해야 하는 고기잡이 하시는 분들에게도 마찬가지 이리라. 이렇듯 날씨가 생업과 관련될 때 다음날 날씨가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은 날씨가 좋아야 사람들이 찾는다. 그곳에는 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한옥 마을은 날씨가 좋아 많은 관광객이 왔다. 코로나 이후 많은 인파를 오랜만에 접한다.
많은 가게들이 장사를 접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전동 바이크가 사라지니 젊은이들은 한옥마을 자전거 대여를 즐긴다. 한 시간에 천 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여럿이 시끌벅적하지 않다. 산책길이 즐거웠다.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으려면 첫째로 날씨가 좋아야 한다. 오늘이 적기였다.
경기전도 오랜만에 조용히 거니는 커플들을 맞이한다.
한때, 날씨와 관련된 의상 코디 앱을 깔아서 어떤 옷이 어울릴지 살펴보았다. 비 오는 날은 좀 화사한 레인코트 느낌의 옷을 입고 너무 긴치마나 바지를 피해서 입어야지, 오늘은 저녁까지 나가 있으려면 오후에 춥다니까 하프코트 하나쯤 챙겨야겠다.
날씨를 고려하여 산뜻한 옷을 입고 출근하면 보는 이도 즐거워 보이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보는 이 역시 지겹다.
청바지만 365일 입는 지인이 있다. 그 청바지들은 본인에게는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가 언급한 후 살펴보니 다르긴 달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청바지들이 모두 고가였다. 참으로 일관되게 멋을 추구하는 분이시다. 나 역시 청바지는 늘 입어도 지겹지 않을 듯하다. 청바지와 윗 옷을 달리 매칭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따로 날씨를 염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치마를 입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옷에 관심이 많은 나의 경우, 직업이 '특별 가운'이나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골라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잤다. 먼저 날씨 체크부터 한다. 가을 옷을 봄에 입기에는 색감이 달라서 별로다. 기후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정말 입을 옷이 없다니까' 하면서 계절이 바뀔 때 새 옷을 산다. 그런 내가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빠진 이후 변했다.
땅(흙) 그리고
화분을 외부에 내놓아야 할지 말지 또는 정원에 심은 나무들의 상태와 관련하여 날씨를 봐야만 한다.
올리브 화분을 내놓아야 할지 실내에 두어야 할지,
날씨를 미리 살피는 이유가 되었네요
흙에 심은 꽃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햇빛, 물, 바람 이 세 가지다. 봄이 오는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실내에 갇혀 답답해 한 식물들에게 얼른 자연 바람을 쏘이고 싶다.
올리브 나무는 자연 바람을 제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올리브 나무 화분은 영하 4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과감히 바깥에 내놓았다.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무거운 화분을 낑낑대고 낮에 밖에 두었다가 밤에 다시 안에 넣었다.
화초를 장기간 키우신 지인의 말씀에 의하면 3,6,9월에는 화초도 거름을 줘야 한단다. 하지만 거름은 주지 않아도 산다. 그러나 햇빛이나 물 그리고 바람이 없으면 죽는다.
과거에 나는 물과 거름을 잘못 주어서 아주 예쁜 화이트 핑크 샐릭스를 죽였다. 배수가 잘 되지 않는 곳인 데다가 햇빛이 들지 않는 북쪽이었다.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지도 않는 곳이었는데 뿌리가 과습 하게 되었다. 비실거리니 고민되어 거름을 주었다. 나는 애정을 쏟았는데 잘못된 애정이었다. 속이 쓰라렸지만 그 일로 여러 가지를 배웠다.
나무와 꽃들은 너무 물을 많이 줘도 안 되고, 말라도 안된다. 적당히가 중요한데 처음엔 그것을 몰라서 주로 과습으로 죽이게 된다. 잘못된 애정을 듬뿍 주면 죽게 되는 것이다.
비가 오후에 오는데 오전에 물을 주면 인력낭비요, 식물에게도 좋지 않다. 요즘처럼 일주일에 한 번 비가 온다면 큰 나무들은 물을 더 이상 주지 않아도 된다.
낮동안 장시간 햇빛에 노출되는 동향, 남향 쪽에 화분을 둔다면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하여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들도 물을 먹어야 산다. 주말 아침이지만 출근 준비하듯이 새벽부터 아침을 먹고 <루씨의 꿈꾸는 마당>에 갔다. 이사를 한 식물들인 데다가 마사토를 많이 뿌려서 물이 금세 빠지기 때문에 자주 줘야 한다.
그런데 장미 잎을 보니 벌써 탄저병 증세가 있다. 장미는 물을 좋아하지만 조금만 비를 많이 맞아도 탄저병이 생긴다. 물을 신경 써서 줘야겠다. 다른 꽃나무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 주택이 정남향 집이다.
다행스럽게도 마당 바로 앞이 골목길이고 그 골목 너머 집도 낮다. 꽃나무들은 마당 전체에 고루고루 햇빛을 받는다. 하루에 한 번 들르는 주인이 살피면, 나머지는 주인도 없는 집을 미리 지키는 기특한 식물들이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유치원 종일 반에 아이들을 맡겨야 했다. 안쓰러워하는 내게 원장님께서 "과보호 보다 조금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낮동안 잘 살펴볼게요."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맞았다.
지금 나의 식물들에게 관심은 하루 한 번으로 족하리라 여긴다.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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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