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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Oct 29. 2020

꽃차와 여고시절

목마와 숙녀

나이테가 많은 나무처럼 오랜 친구들이 있다. 대학의 같은 과에서 만난 우리들은 대학 2학년 때,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스터디보다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매년 일박 이일의 여정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했다. 여자들 열명이 함께 하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전국에 흩어져서 교직에 몸 담고 있으며, 일 년에 두 차례 일박이일의 여행을 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상처에 더욱 단단해지는 나무처럼 오늘까지 30년 가까이 만남을 이어왔다.


마스크를 벗고 다시 즐겁게 여행하며, 이야기 꽃을 피울 날을 고대한다. 우리들은 다양한 취미 생활을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티소믈리에(tea sommelier) 과정을 통해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차 소개법을 배운 친구가 꽃차를 선물했다. '목련 꽃차'는 이비인후과 계열에 좋다고 한다. 맛을 보기도 전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목련의 색이 이렇게 레몬빛깔로 나오다니 놀랍다. 향도 은은하여 좋다.


(따뜻한 물에 의해 나타난 요정의 얼굴)

목련꽃차를 선물한 친구는 우리 모임의 구성원이자 여고 동창생이다. '꽃차와 친구'를 생각하다 보니 나의 여고시절이 떠 오른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던 고등학교 때, 막차를 타고 버스에서 내리면 10시가 넘었다. 학교가 집에서 멀고 교통이 좋지 않아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하루에 네 번 버스를 타고 다녔다. 새벽 5시 30분 정도에 집에서 나서면 아침 7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했다. 잠은 조금 부족했지만, 이른 아침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등교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밤이 문제였다. 그 시절은 야간 자율학습을 무조건 해야만 하는 학교 제도였다. 나의 집이 시골인 것을 싫어하기 시작한 때가 고등학교부터였다. 부모님께서는 모두 힘드셔서 마중을 나오시지 못하셨다. 핸드폰도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가로등도 없어서 막차에서 내리면 칠흑 같은 밤이었다. 하필이면 집으로 가는 길에 공동묘지를 지나야 한다. 그 공동묘지는 오늘날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친정집에 갈 때면 여고시절 밤길을 회상하게 한다.


무서운 밤길을 혼자 걸을 수 없어서, 같은 동네나 길이 나뉘더라도 어느 부분까지 동행할 수 있는 윗동네의 누군가가 막차를 탔기만을 바랐다. 만약 아무도 없을 경우,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버스를 다시 타고, 시내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 갔다. 나를 맞이한 작은아버지는 우리 집에 전화를 하셔서 알리셨다. 밤 11시 넘는 늦은 시간에도 작은어머니는 웃으며 맞아 주셨다.

(시골집 가는 길 약도)

우리 동네에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던 아이가 나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 말동무하며 같이 갈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집도 전주 도심에 있었으면 했다. 어린 시절 천방지축 뛰어놀 때는 온 산과 들이 나의 놀이터여서 마냥 행복했는데, 행복이 수험생이 되니 불행으로 바뀐 것이다. 막차에서 내려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전주 작은아버지 댁으로 돌아가야 할지, 뛰어서 집으로 가야 할지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어두운 골목길을 가야 하는 작은 아버지 댁도 무서웠다. 시내는 사람이 무섭고, 시골은 공동묘지가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도 자연은 나에게 위로를 주기도 했다. 동행이 없는 어느 여름밤, 용기를 내어 뛰다 보면 반딧불이가 여기저기에서 반짝였다.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 교복 호주머니에 넣으면 빛을 내어 위안이 되었다.

(반딧불이와 함께 달리던 밤길)

매일 첫새벽과 까만 밤에 달린 시골길이다.


계절을 알아챌 여유도 없이 수험생 고 3 가을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뒷동산에 올라보니, 구절초가 아름답게 흐드러져 있었다. 꽃을 보니 수험생이라는 속박에서 일시에 풀려나 자유로운 생각이 들었다. 꽃을 꺾어 여동생들과 함께 사용했던 방에 꽂았다. 학교에서는 재잘거리며 떠드는 긍정 대마왕 수다쟁이 여고생이었지만 감수성 많고 꿈 많은 여고생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영화의 정지화면처럼, 교복 주머니의 반딧불이와 뒷동산의 구절초의 모습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여고시절 읊조렸던 시들 중에는 조금 간질거리는 것들이 많다. 그때는 그런 류의 시가 쓰인 엽서를 사고, 외웠다. 그 엽서에는 언제나 청순가련형의 소녀가 안갯속을 걷거나, 꽃을 들고 나를 응시했다.

(여고시절 유행하던 청순 가련 형 엽서 스타일, 이런 청초한 모습을 꿈꾸었으나 나는 현실적으로는 삐삐 스타일이었다)

'꽃차'를 마시면서 <목마와 숙녀>를 다시 낭송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가 가는 내용 이건만, 그 시절에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좋아했다. 간질거리는 여고시절로 다시 돌아가 본다.

https://youtu.be/uLlg5_7hbxs


<집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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