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에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열매들이 무르익게 되면 아버지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비닐 방수 천을 가져오셨다. 우리에게 귀퉁이를 잡고 받히고 서 있으라 시키시고 당신은 나무에 오르셔서 천위로 떨어지도록 은행을 두드리셨다.
나는 중학생이 된 이후 집안일들에서 많이 놓여나게 되었다 그러나 은행 따는 것만은 어김없이 아버지에게 붙잡혀서 방수 천의 귀퉁이를 잡고 서 있어야 했다.
은행나무를 뎅강 베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딴 은행 알갱이들을 포대에 담아서 한동안 놓아두면 씨를 둘러싼 껍질 부분이 무른다. 발로 살살 밟아서 어느 정도 짓이긴 후 고무장갑을 끼고 일일이 씨앗을 둘러싼 냄새나는 껍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말렸다.
은행의 껍질이 하얗게 되면 잘 말랐다는 뜻으로 지긋지긋하던 오물 냄새도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은행은 홍시, 고구마, 그리고 군밤과 더불어 긴 겨울밤 우리의 간식거리였다. 은행이 잘 마르면 아버지께서는 펜치와 신문지를 준비하셨다.
펜치로 살짝 껍질을 눌러서 은행의 단단한 껍질에 균열을 만든 후 껍질 채 팬에 볶아 주셨다. 군밤처럼 껍질이 잘 벌어지면서 익는 냄새가 나면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통째 들고 오셨다.
신문지에 탁 털어놓으시고 일일이 껍질을 제거하신 후, 투명하고 연한 초록색 은행 알갱이를 우리에게 주셨다. 식성이 좋았던 나도 냄새에 질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먹기를 꺼렸는데, 호흡기에 좋다면서 자꾸만 한번 먹어보라고 하셨다. 맛을 본 후에는 그 고소함에 이끌려서 절로 손이 갔다.
때로는 껍질을 먼저 깐 은행을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서 익혀 주셨다. 잘 익어서 투명하고 고소한 맛에, 오동통한 모양의 은행이 반짝거리며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은행의 독성 때문에 어린이는 하루에 네 알 정도, 어른은 열 알 정도가 일일 섭취량이라고 하셨다. 적정량을 섭취하면 건강식품이 되고, 과다하면 해가 된다니 무엇이든 적정한 선이 중요한 듯 보인다. 맛있는 은행이 입안에 들어가기까지는 그렇게 파란만장했다.
나의 큰딸이 태어난 날은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이다. 출산 후 회복기를 친정집에서 보냈다. 그 당시 나의 엄마는 여전히 교사로서 학교에 출근하셨고, 진즉 농사를 그만두시고 다른 직업을 택하셨던 아버지도 직장에 나가셨다.
남편도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했으므로 회복기를 보낸다는 것이 시골집에 갇힌 셈이 되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저녁에 퇴근하시자마자 공동으로 아기 목욕을 시켜 주셨고, 출산 한 딸을 위해 몸에 좋다는 요리도 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한쪽 방에서 밤마다 낮과 밤이 바뀌어 우는 아이를 달래며 행여 부모님을 깨우게 될까 염려하면서, 아이를 안고 서성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낮, 곤히 잠든 아기를 두고 아기 기저귀를 마당의 빨랫줄에 널고 마당을 걷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가을 하늘은 왜 그리 파랗던지, 집 뒤 뜰의 노란 은행잎은 돌계단을 어찌나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던지. 계절의 변화도 감지하지 못할 만큼 육아에 매달렸던 상태였다.
성큼 다가와 있던 가을을 느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산후 우울증 비슷한 현상이었는지 모르겠다. 배냇짓을 하며 방싯거리기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 절로 눈물이 나왔다. 출산 후 여전히 부풀어 오른 몸과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부석거리는 얼굴을 한 채, 아마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자란 후에는 방수 천의 귀퉁이를 잡을 아이들도 없었지만, 아버지 역시 다른 일들로 바쁘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떨어진 은행들을 주우시고 잘 말리셔서 해마다 분가 한 자식들에게 나눠 주셨다. 아버지의 노고는 잊고, 그마저 펜치로 누르는 일이 귀찮아 먹지 않고 쌓아 두기도 했다.
종이 우유 팩에 은행을 통째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펜치로 누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꼭 하루에 세 알이라도 먹으라고 말씀하셔서 몇 번 하다가 그도 저도 귀찮아 밀어 놓고 말았다. 겨울이 지나 말라버려서 버려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를 향한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딸이 태어났고, 아버지가 떠나가신 나의 가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은행이 열매를 맺고, 잎이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지면, 다시 싹을 틔울 것을 알듯이, 우리 삶도 생과 사가 스쳐 간다. 자연의 순리 앞에 조용히 순응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