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 over-communicate than under
정보라는 건 때로는 인생을 바꿀 만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 남편은 참 기가 막힌 타이밍에 좋은 정보를 얻어 육군 현역 대신 의무소방으로 복무했다. 당시만 해도 의무 소방이란 제도나 지원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친구 중 하나가 그 귀한 정보를 남편에게 공유해 준 것이었다. 시험에 통과해야 하긴 했지만 워낙 지원자 수가 적어 쉽게 합격했다고 한다. 물론 의무 소방 생활에도 어려움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훈련소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자신이 거주하던 동네 안에 있는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게 심적으로는 훨씬 부담이 덜한 것을 알기에 남편은 지금도 자신이 당시에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되새기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한다.
직장에서도 우리는 누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고군분투한다. ‘라떼는 말이야~' 시절로 불리는 고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사가 담배 피우러 나갈 때 같이 따라 나가서 피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흡연 타임에만 오고 가는 대화 속 정보들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고, 끔찍이 싫은 회식자리라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술이 취한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알짜배기 정보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업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결국 ‘소통'이라는 건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인데 이 행위가 언제나 평등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보 불균형이 생기고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권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니어 시절에야 내 눈앞에 떨어진 정보만 잘 이해해도 충분했다. 사실은 그것만도 소화하기 벅찼다. 연차가 더해질수록 알아야 하는 게 많아졌다. 회사의 정치 구도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어떤 팀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랑 친하게 지내야 좋은 지, 우리 회사 임원진이나 주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 팀 팀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뭐가 불만인지, 팀장에게 어떻게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등등 눈치 백 단 핵인싸에 머리까지 좋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용이했을 때가 있었다. 독일에서 법인장을 지원하던 업무를 하던 때였다. 법인장에게 오는 메일이 나에게도 전달되다 보니 본사와 그 법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누구보다 빨리 알 수 있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중 누가 나와 순수하게 친해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오는 것인지를 항상 조심스럽게 고민해야 했다. 특히 그 회사는 직급에 따라 소통, 공유되는 정보가 워낙 다르고 배타적이라 법인장이 본사 임원진과 회의를 하는 날이면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직원들이 내게 채팅을 보내 오늘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캐묻곤 했다.
반면, 과거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았을 때, 몸은 어느 때보다 편했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느꼈을 때는 독일 에너지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부족한 독일어가 그렇게까지 큰 업무 장벽이 될 거라고 예상치 못한 탓에 입사 후 훨씬 크게 좌절했다. 공식적인 업무 언어는 ‘영어'라고 해서 몇 달간의 채용 프로세스를 거쳐 들어간 팀에 운 나쁘게도 입사와 동시에 팀장이 바뀌었고 그 팀장은 대놓고 ‘나는 영어가 싫다. 소수(minority)를 위해 다수가 영어를 써야 하는 불편함을 원치 않는다' 고 모두 앞에서 공식 선언한 뒤 몇 달간 독일어로만 소통을 했다. 업무를 할 만큼 독일어가 능통하지 않았던 때라 회의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놓칠까 촉각을 곤두세웠고,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다행히 그 위기의 시간은 지나갔고 몇 개월 뒤 상황은 개선되었지만 외국인의 비율이라고 해봤자 한 자릿수밖에 되지 않는 회사인 탓에 아주 많은 문서나 회의, 사담들이 독일어로만 유통되어 나는 언제나 남들만큼의 정보를 갖기 위해 두 배를 더 노력해야 했다.
현 회사는 정보의 균형과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입사 전, 팀장과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굉장히 분명히 드러났다. 면접이 끝나고 그는 내게 직원들 간에 혹은 직원과 팀장간에 어떨 때 갈등이 생기는 것 같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대부분의 갈등은 ‘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직원 간 정보가 불균형할 때' 일어나는 것 같다고 내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했다. 팀장은 그 말에 적극 공감하며 본인은 과도한 소통이(Over communication)이 부족한 소통(Under communication)보다는 언제나 낫다고 생각한다고 첨언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또 반복하여 알려주거나, 상대가 원하는 것 혹은 상대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주어 피곤하게 하는 것이 상대가 알아야 하는 정보를 놓치게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팀장의 견해처럼 이 회사는 이렇게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회사가 있을까 싶을 만큼 정보를 공유하고 리더십은 어떻게 직원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리더십의 성과 리뷰에서도 매우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그래서 사실 이곳에선 정보를 얻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쏟아지는 정보들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취하고 취하지 않을지, 하루에 오는 수십 통의 메일과, 공유되는 문서, 캘린더에 잡히는 갖가지 미팅 중 무엇을 보고 들을지 결정하느라 쌓이는 피로감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정보를 공유하는 채널은 매우 다양하며 정보의 성격과 중요도에 따라 여러 가지 채널을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TGIF와 All Hands 같은 전자회의는 리더십이 직원들에게 업데이트를 공유하고, 궁금한 점을 해소해 주는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채널이다. 세계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전체 회의가 있고 아시아 태평양, 미주, 유럽으로 나누어 지역별 전체회의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엔지니어 등 부서 혹은 조직별 전체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여 추후 녹화된 영상을 공유하고, 전체 회의에서 나온 내용들을 팀 단위의 미팅, 더불어 매니저와의 1-1 미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주요 정보를 상기시킨다.
정보는 텍스트 형태로도 활발히 공유된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수십 가지의 뉴스레터, 사내 디지털보드를 통해 전달되기도 하며 주요한 업데이트는 사내 공식 인트라넷에 바로 개재된다. 예컨대 코로나로 인한 업무 변화나 회사 정책, 우선순위에 관한 업데이트, 재택근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은 매우 신속하게 내부 COVID-19 사이트에 공유되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규모의 세계적 팬데믹이었지만 초기에 나는 한 번도 우리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게 나 같은 중간 계급 직원에게는 이런 선도적인 정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과도한 커뮤니케이션(Over communication)에서 또 하나 빼놓지 않고 언급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당한 이유’에 대한 투명한 소통이다. 비즈니스와 관련된 어떤 업데이트 혹은 변동 사항, 지침 등을 공유할 때 그냥 결과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도 공유하여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직원들은 의사 결정에 관한 투명성에 굉장히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어, 만약 그 과정이 납득하기 어렵다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의 증거로 데이터를 공유하기도 한다. 예컨대 직원들이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 연계 병원을 변경하는 의사 결정을 내린다면 누가 그 과정을 주도했고, 어떤 근거로 A에서 B라는 병원으로 변경했으며, 이 변경이 가져오는 변화는 단계별로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의사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흔치 않더라도, 그 결정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들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계속 소통하는 것이 담당자와 리더십이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태도이다. 답정너 스타일의 상명 하강식 지침을 내리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어휴 뭘 저런 것까지 물어보고 반기를 들지, 참 피곤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까다로운 직원들 사이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나 역시 내가 하는 일과 결정에서 스스로 타당성을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