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새 생명을 찾아서
- 함민복 <가을>
'책 사냥꾼'이라는 저의 브런치 필명은 필연적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까치출판사에서 번역한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라는 책을 읽다가 제 마음에 쿵 하고 내려앉은 이름이 바로 이것이었답니다. 이 책은 한 책 사냥꾼의 이야기를 통해 중세의 오랜 벽을 허물고 근대가 태동하는 과정, 그러니까 르네상스를 꽃피운 역사적 '일탈'의 과정을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던지요. 그 역동적인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빠져들었습니다.
그린블랫이 쓴 이 책은 1417년, 당대 최고의 고전인문학자이자 고서수집가였던 '포초 브라촐리니'가 독일의 조용한 수도원에서 우연히 루크레티우스의 필사본을 찾아내어, 목숨을 걸고 세상에 그 빛을 알린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가 사냥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위대한 사상가 루크레티우스의 저작으로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담고 있었죠.
당시 신에 의한 창조론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 이러한 주장은 실로 위험천만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중심의 사상인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 열쇠가 되었습니다. 이 책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과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을 휩쓴 명작이라니, 저의 필명은 정말 멋진 역사의 한 조각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분이 살아있는 생명을 희생시키거나 포획하는 행위를 떠올릴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자연 파괴나 생명 파괴라는 비극적인 이미지가 먼저 다가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책 사냥'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책 사냥'은 서점, 특히 헌책방의 고요한 구석에서 어쩌면 이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책들의 생명을 되살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말 그대로 '책 생명 연장 운동'이랍니다. 살상과 생명, 파괴와 보존이라는 극명한 차이점처럼, 저의 '책 사냥'은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여정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주, 김포에서 열렸던 중요한 회의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자, 제 마음은 어느새 강화도 독립서점 '국자와 주걱'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잊고 지냈던 오래된 지도가 문득 펼쳐지듯, 예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그곳이 마치 운명처럼 저를 불렀습니다. 35km, 약 50분 거리. 제 손은 이미 내비게이션에 '국자와 주걱'을 입력하고 있었고, 그렇게 설렘 가득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맑은 날씨와 살랑이는 바람이 어우러져 완벽한 여행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초지대교를 건너 푸른 하늘 아래 강화도 땅을 밟자,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사냥꾼처럼 제 가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올랐죠. 블로그에서 본 '한옥을 개조했다'는 이야기에, 과연 어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저를 맞이할지 상상하며 화도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좁은 길로 접어들라고 안내하는 순간, 비로소 정겹고 따스한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와집, 슬레이트 지붕, 파란 양철 지붕 등 다양한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 사이로, 시멘트 포장된 좁은 길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졌죠. 겨우 경운기 한 대가 지나갈 만한 폭이라 조심스레 서행했고, 특히 직각으로 꺾어지는 코너에서는 차에서 내려 진행 방향을 확인하며 신중하게 서점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순간순간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마침내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줍니다. 빨간색, 아니 주홍색 함석 지붕이 빼꼼히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 한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자 형태의 한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은 듯 추녀 밑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거미줄과 먼지가 있었지만, '국자와 주걱'이라 쓰인 간판들이 벽과 나무에 정겹게 걸려 있어 비로소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물결쳤습니다.
대문을 들어섰지만 인기척이 없어 잠시 망설이다, 출발 전 연락드렸던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안에 있습니다! 들어오세요!"라는 정겨운 목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죠. 그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방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숨겨진 보물창고처럼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따뜻한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마루 한쪽에도 책들이 소박하게 쌓여 있었고, 그 오른쪽에는 계산대가 눈에 들어왔죠. 왼쪽 건넌방으로 향하니, 그곳이 바로 책방의 심장이자 영혼이 머무는 공간인 듯했습니다. 책장에는 책들이 제법 질서 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저는 벽면부터 꼼꼼히 훑어보았습니다. 책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새 책들이 주를 이루었고, 중간중간 헌책들도 조화롭게 섞여 있어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작년, 교육포럼에서 강화도 함민복 시인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시대에 왜 시를 읽고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한 시간가량 이어진 강연 중, 시인께서 강화도의 한 책방 이름을 '국자와 주걱'으로 지어주셨다는 이야기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지요. 저는 그 말씀에 깊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인께서는 국자와 주걱이 숟가락과는 달리,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먹을 때 국을 나누고 밥을 푸는 도구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숟가락이 '나'를 위한 도구라면, 국자와 주걱은 '남'을 위한 식기인 셈이지요. 이는 단순히 개인의 흥미나 지식 습득을 위한 '위기지학'을 넘어, 마치 국과 밥을 나누듯 책을 통해 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동체'의 의미로 책방을 떠올리신 것이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깃든 '국자와 주걱'을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었던 간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답니다. 그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순간, 제 마음은 나눔의 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서점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나타난 작은 문 뒤에는 또 다른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작은 책꽂이에 꽂힌 빛바랜 고서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매트를 보니, 이곳이 바로 주인장님의 깊은 사색과 책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곳에서 저는 누렇게 변색한 보들레르 시집, 릴케의 시집 같은 귀한 고서들을 발견했습니다. 1974년판 정음사, 값 400원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시집 두 권을 집어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은,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것을 넘어 과거와의 아름다운 교감이었답니다.
그곳에서 다시금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햇빛을 밟을지라도』였습니다! 커피색으로 바랜 종이가 말해주는 깊은 세월의 흔적은 그 어떤 새 책보다 귀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어요. 1977년에 민음사에서 발행된 오래된 시집, 900원이라는 정겨운 값에 담긴 그 시절의 감성이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김수영 시집 옆, 또 다른 책 한 권이 저의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예전에 인문 고전을 주로 발간했던 동서문화사의 흰색 표지에 빨간색 테두리가 상단에 들어간 책이었죠. 바로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 첫사랑』이었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이라는 소설로 유명하지만, 저의 눈길을 강하게 끈 것은 다름 아닌 '사냥꾼의 수기'라는 제목이었어요. 스스로를 '책 사냥꾼'이라 여기는 저에게 『사냥꾼의 수기』는 마치 책 사냥의 잃어버린 지침서가 되는 듯한 강렬한 끌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조심스레 책을 꺼내 들고 맨 뒷표지의 해설을 읽어보았죠.
"투르게네프는 『사냥꾼의 수기』에서 러시아 대지의 삶을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했다. 당시 러시아 농민을 짐승 취급하며 문학의 소재로 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던 시대에, 투르게네프는 처음으로 농촌 민족 속에 숨어 있는 지혜와 재능, 상냥한 감정, 순박한 정신을 세련된 예술 감각으로 표현하여 인간미 넘치게 형상화했다.”
이 해설은 마치 저의 '책 사냥' 철학을 이야기하는 듯,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오늘 이 책은 반드시 저의 품으로 와야만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신간이라 할인이 없이 정가 15,000원에 판매된다고 했지만,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앞에 놓인 넓은 테이블 위에서는 또 다른 보물, 『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 전집』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버지니아 울프 하면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을 구입해서 읽었었는데, 단편선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목차를 훑어보니, 「행복」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눈에 띄더군요. 일단 「행복」 부분만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스튜어트 엘톤이 허리를 구부려 바지에서 하얀 실오라기 하나 를 털어내버리자, 어떤 감흥의 사태, 눈사태가 실제로 뒤따르는 그 사소한 행동은 장미 한 송이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꽃잎 같았다. … 즉 모두가 빨갛게 물이 들고 모두가 온통 따뜻하고 모두가 이 형용하기 어려운 광채를 띤 많 은 꽃잎들의 압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이제 나이 마흔다섯에 그는 단지 허리를 구부리고 바지에서 실오라기 하나를 털어내기만 하면 이 느낌, 이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삶의 감각, 이 밀려옴, 이 감홍의 눈사태, 하나가 됨이 그의 온 전신을 타고 쏟아져내렸던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행복이란 일상의 순간 속에 숨겨진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삶의 경험이 쌓여 이루어진 내면의 풍요로움을 통해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깊고 따뜻한 감각임을 우리에게 속삭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성숙을 어쩌면 이토록 수려하고 깊이 있는 필치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감동이 제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주저할 틈 없이 이 책도 저의 품으로 안기게 되었죠. 아, 감수성이 마구 폭발하는 순간이었어요!
이제 서점에서 내게 쏟아진 행복을 거두고 나를 기다리는 유은서재가 있는 집으로 향해야 할 시간입니다.
혹자는 저에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사냥하는 것과 책을 '구매'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저는 늘 이렇게 답합니다. 책을 구매하는 것은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정해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라고요. 하지만 '책 사냥'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날의 헌책방 분위기, 저의 미묘한 기분에 따라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책, 문득 시선이 머무는 책을 통해 얻는 황홀한 지적 흥분입니다. 그래서 '책 사냥'은 단순한 구매를 넘어선 설렘이자, 가슴 벅찬 흥분이며, 때로는 영혼을 뒤흔드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답니다. 일반적인 책 구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순간들이 '책 사냥'에는 가득합니다. 책 구매가 책의 내용을 읽으려는 목적에 충실하다면, '책 사냥'은 읽는 목적보다는 책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느낌이 먼저입니다.
어떤 때는 그저 책 제목이 좋아서, 어떤 때는 표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또 어떤 때는 이 책이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애틋한 마음에 소장하고 싶은 충동에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것. 문장 하나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하기도 하며, '책 사냥'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 그리고 황홀한 충동이 앞서게 되는 경우가 많죠. 이 충동은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아니라, 저에게 새로운 영감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되어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