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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Nov 25. 2023

아이 옷을 정리하다가 한참을 울었어

둘째의 미련

자궁암입니다. 전이될 가능성도 있으니 자궁적출을 해야 합니다.

기혼에다가 자녀도 있고 나이가 마흔이 가까운데

더 이상의 가족계획이 있나요?


아...제가 자녀라고는 딸아이 하나라... 남편이랑 상의해 보고 올게요.


평소 하혈이 잦고 그날 기간에는 외출이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해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자궁에 혹이 있다길래 그저 살덩이 혹만 떼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당일입원 수술을 했는데 떼낸 혹에서 나온 조직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생리할 때마다 저주했던 자궁인데 말이 씨가 됐을까. 날벼락같은 통보에 어쭙잖은 남편 핑계를 대고 후다닥 진료실을 도망쳐 나왔다. 의사는 암환자 등록서류까지 서둘러 발급해 주었다. 국가지원으로 병원비 부담이 덜하실거예요. 간호사의 친절함이 서글펐다. 그렇게 병원 복도에 한참이나 서있다가 그라데이션으로 슬픔이 덮쳐와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내 나이 자체로도 결혼이 늦었고 남편도 6살 연상인 남자를 만난 터라 첫 아이를 낳고 둘 다 육아가 체력에 부쳤다. 더군다나 아이가 특별한 점(..)이 있어 육아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둘째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첫아이처럼 두 번째 아기천사는 쉽사리 찾아와 주지 않았고 난임 병원까지 가기엔 둘째의 간절함이 덜했다. 그래 하나만 낳아 잘 기르지 뭐. 그래도 둘째가 찾아온다면 축복이고.


그렇게 지내던 와중에 이제 둘째의 가능성이 0%가 되버린다니.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자궁암이라는 복병을 만나 적출 수술을 했고 예후는 다행히 좋았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장기 하나를 이별한 채 산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었으나 이제 나는 365일 언제든지 목욕탕을 가서 때를 밀 수 있다는 해학으로 이겨내보려 했다. 정상인처럼 보이려 했으나 사실 나는 산 송장이었다. 나는 곪아가고 있었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니 외출이 어려워졌다. 집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 돈이었다. 자동차를 모는 것도 아아 한잔의 여유도 내겐 사치였다. 그렇게 카드빚은 내 두 발과 두 손을 묶은 채 집안에 가두었다. 마침 찬바람이 불어오던 가을이었는데 등교를 준비하던 아이의 긴팔 옷을 찾다가 옷장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작된 아이 옷장 정리였다.


여름옷을 비워내고 겨울옷을 채워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크는 나이기 때문에 작년 겨울에 입었던 옷이 매우 작아 보였다. 그동안 새 옷이 필요했던 건 너였구나. 아... 돈도 없는데 큰일 났네. 한숨이 나왔다. 내친김에 옷장을 싹 정리하려고 구석구석 옷을 비워냈다. 옷이 끼여 열리지 않는 서랍을 낑낑대며 열자 신생아 담요가 나왔다. 산모교실에서 만들던 배냇저고리도 나오고 얼룩진 가제손수건도 한가득 나왔다. 어머 이게 아직도 있어? 하며 아기 옷은 계속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작아져버린 원피스, 잠바... 이러니 옷장이 터져 나가지 나도 참. 그러다가 나도 몰래 숨겨뒀던 진심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가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걸 알고도 못 버린 건,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건 옷이 아니라 나의 미련이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져왔다. 이런 마음을 그 누구도 알 리 없다. 어디가서 누구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으나 들어줄 사람은 없다. 그냥 나 혼자 저리게 아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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