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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Nov 08. 2023

사명감 찾아 삼만 리

ep02. 추천 도서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끝까지 보다 보면 마음속에 한 문장이 남는다. <몽환화>를 오래전에 보았는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게 사명감이다.’라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 심어준 도서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 사명감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에게 이 도서를 추천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사명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작년 5월 말 퇴사하고 나의 열정과 사명감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질문을 품고 두 달간 쉬면서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었다. 그리고 나의 경험들(심리학과 학사, 아동학과 석사,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속에서 접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결론이 났다.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작업공간이 필요했기에 콘텐츠를 만드는 카페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육 콘텐츠와 카페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그때 나는 자신이 정말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뭐든 하면 된다는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급한 성격, 하늘을 찌르는 자만함 덕분에 카페 기획안부터 카페 오픈까지 40일 정도 걸렸다. 귀를 막고 달렸다. 그러다 카페 오픈 2일 차에 눈물이 났다. 종일 손님이 없는 것도 마음이 안 좋은데 혼자 공간을 지키다 보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근처 백반집이 자꾸 떠올라 안 바쁜 시간에 배달을 부탁드리면서 무료로 커피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전화를 끊고 온몸에 있던 서러움이 코끝으로 빨려갔다.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났다. 너무 본능적이고도 순수한 서러움이었다. 카페 오픈하기까지 공사와 인테리어, 영업 허가, 사업자 신청, 홍보, 마케팅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좌절한 적은 없었다. 첫 좌절이 밥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너무 서글프고 무기력했다. 


그러고 보니 공사 기간에도 식사를 거른 적이 많았는데 왜 그때는 눈물이 안 났을까? 카페를 오픈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였다. 다음 목표가 교육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인데, 나는 정확히 무엇을 만들고 싶고 얼마를 벌고 싶은 것일까? 목표가 흐릿해지자 들리는 목소리도 커지고 만나는 이마다 카페에 대한 조언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었다. 꿈도 좋지만, 돈부터 벌라는 오빠, 간판이 잘 안 보인다고 바꾸자는 엄마와 배우자, 하물며 근처 마카롱 가게 사장님께서 숍인숍 형태로 입점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접근해 왔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모두로부터 귀를 닫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귀를 막고 휘몰아치는 태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울고 나니까 고요해진 마음속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힘을 느꼈다. 다시 내가 해야 할 일, 나의 진짜 사명감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 배고픔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은 없겠다. 



끝으로 <몽환화>에서 인상 깊은 내용 공유한다. 

“내가 불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하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많아. 이를테면 가부키 같은 전통 예능은 그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당연히 뒤를 잇잖아. 오래된 가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건 유산이잖아. 이어 나갈 의무와 함께 득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모른 체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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