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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Nov 08. 2023

선택의 갈림길에서 맡은 고약한 냄새

ep01. 추천 도서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도서 <위대한 멈춤>에서 친숙한 장소나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경우, 과거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이나 성취를 잃어버린 경우,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경우,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삶의 전환을 알리는 네 가지 계기라고 한다. 


삶의 변화를 마주하고 싶은 분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분에게 이 도서를 추천하고 싶다. 전환기의 신호,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고 전환에 필요한 9가지 도구(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를 배울 수 있고 적용해 볼 수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세 번의 이사, 퇴사와 카페 창업, 그리고 혼인신고까지. 올해 <위대한 멈춤>을 읽고서 비로소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전환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 4월의 어느 날 퇴근하고 집 문을 여는 순간 아주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담한 원룸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냄새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 또래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싶은 기분이 들 때마다 더 깊숙한 무기력으로 빠져들었던 날들이었다. 꼭 출처 없는 불쾌한 냄새와 같았던 4월이었다. 


주말에 밀린 빨래를 돌렸다. 빨래가 다 돌아간 소리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탁기로 가 빨래를 꺼낸 뒤 건조대로 갔다. 고개를 숙였다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고약한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방 중간 벽에 위치한 책장인가? 냄새가 날 게 없는데? 빨래를 내팽개치고 여기저기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마른 조미료를 둔 책장 위 올려놓은 검은색 봉투를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방치된 지 한 달은 된 양파였다. 검은 봉투 아래로 갈색 오물이 고여 있었다. 차마 그 안에 담긴 시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바로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그 순간 밀려왔던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날 아침, 친구이자 팀장인 민준과 테니스 수업 후 카페에 갔다. 그가 말했다. “나 조만간 퇴사할 거야. 최대한 빨리. 이번에 코로나로 한 주 동안 자가 격리하면서 한 달 후 내가 죽는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청천벽력 같았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무기력했던 마음속에서 꾀죄죄한 냄새가 진동했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눈물이 났다. ‘이 일을 하면서 난 행복하지 않아. 난 열정 빼면 시체인데...’


그때 비로소 내 마음속 검은 봉투를 마주 볼 준비가 되었다. 마음속 썩은 양파를 찾아내며 팀장님 민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내일 출근하면 바로 퇴직 신청합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나, 나의 열정은 여기가 아니므로 일단 나만의 위대한 멈춤을 하기로 했다. 

 



도서 <위대한 멈춤> 속 감명 깊은 문장 소개한다.


과거의 삶, 어제의 나를 과감히 놓아 버리고 매듭을 지을 때, 우리는 자신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길로 들어섰음을 알게 된다. 


인생은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다. <밥과 존재>, 두 가지 모두 삶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양보할 수 없으니 둘 다 <동등하게> 높은 우선순위로 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었다. 밥은 존재보다 언제나 더 절박한 문제이기 마련이다. 존재를 발견하는 문제는 잠시 미뤄 둘 수 있지만, 먹고사는 것을 보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잠시라도 배를 곯아 본 이는 밥벌이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환기는 밥보다는 존재를 우선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밥의 문제에서 거리를 두지 않으면 존재는 늘 뒷전이 된다. 성공해서 유명해지려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멈춤>으로써 새 길을 발견하고, <비움>으로써 새 삶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외적인 성장을 멈추고 불필요한 것을 버림으로써 겨울 준비를 시작한다. 겨우내 스스로를 비워 내고 이듬해 찬란히 꽃을 치울 눈을 조용히 틔운다. 나무에게 겨울은 죽은 듯 보이는 끝인 동시에 찬란한 미래의 보이지 않는 시작인 것이다. 삶에도 <겨울>이 존재한다. 이 시기에 열매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계획과 의지를 내려놓은 채,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안의 비법성의 씨앗을 확인할 수 있다. 삶을 바꾸는 <위대한 멈춤>의 시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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