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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Nov 13. 2023

긴긴밤 속 동행자

ep06. 추천 도서 <긴긴밤> 루리

퇴사 후 기대 없이 펼쳤다가 내내 울림과 위로를 가져다준 도서를 만났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이다. 긴 여정 속, 반복되는 긴긴밤 속에서 주인공 노든은 여러 동행자가 있으므로 긴긴밤이 외롭지 않았다. 마지막 동행자인 작은 펭귄이 끝내 자기만의 바다에 도착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은 펭귄이 바닷속에서 어떤 동행자들을 만날까? 상상하게 된다. 어른 동화를 좋아하는 분이나 가볍게 소설을 읽고 싶은 분에게 <긴긴밤>을 추천한다. 앉은자리에서 완독 하게 되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에게도 여러 동행자가 있어서 나의 바닷속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5년간 프로듀서로 일을 했다. 조직 생활이 맞지 않은 내가 5년간 버틸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동행자 민준이 덕분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상사에게 평가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내게는 모독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주고 힘들 때 곁에 있어 주고 응원해 준 사람이 민준이다. 입사 전에 고달픈 프리랜서 시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1년 정도 쉬는 겸 회사 다녀보라고 이력서를 나 대신 자기가 다니고 있는 회사로 제출해서 함께 출근하게 되었고, 퇴사도 민준이가 퇴사하겠다고 해서 내가 먼저 사직서를 낸 것이다.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시작도 끝도 민준이가 함께 했다. 이제는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 또 다른 바닷속을 헤엄쳐 나가고 있다. 


두 번째 동행자는 윤화님이다. 비용을 거의 받지 않고 카페의 브랜딩과 디자인, 공사까지 전적으로 도와주셨다. 윤화님과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공간 디자이너라는 걸 알고 개인적으로 연락드렸는데 선뜻 도와주셨다. 디자인에서 최종 오픈하기까지, 1에서 100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신 덕분에 카페를 40일만에 오픈할 수 있었다. 카페의 기적인 윤화님은 나에게 세 번째 동행자 수연님을 소개해 주었다. 


수연님과 서로 아무 기대 없이 알게 되었다가 공통 관심사인 심리 콘텐츠로 함께 셀프 헬프 브랜드 연어를 만들게 되었다. 기획자로, 디자이너로, 심리학자로, 디렉터로 그는 많은 경험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무엇이든 수연님께 물어보면 방법이 생긴다. 성장하는 데 있어서 계속 한계를 부딪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수연님이 그 한계를 부숴주었다. 2023년 한 해동안 여러감정을 내게 선물한 수연님께 감사한다. 


짧게 동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동행할 배우자를 만났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함께 해결하는 동행자여서 든든하다. 매일 밤 일과를 이야기하며 노닥거리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계속 동행하고 있다. 나의 바닷속에서 긴긴밤을 함께해 주는 동행자들이 곁에 있어 오늘도 내게는 따뜻한 긴긴밤이다. 



P.S. 2023년 한 해동안 동행자 수연님과 함께 만든 첫 번째 원더퀘스트 <인사이트 미X미>를 드디어 오늘 펀딩 시작했다. 의미 있는 하루를 글로 남겨보며 오늘도 나는 따뜻한 긴긴밤을 보낸다. 

https://www.wadiz.kr/web/wcomingsoon/rwd/244688




끝으로 도서 <긴긴밤> 속 감명 깊은 문장을 공유한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절벽을 오르다가 수백 번은 미끄러졌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잠시 딴생각을 하다 발을 헛디뎌 처음 시작한 곳으로 굴러 떨어졌고, 다시 오르다가 중간에 힘이 빠져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여기저기 멍이 들고 상처가 생겼지만 밤은 길지 않았다. 나는 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절벽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 
꼭대기를 짚고 올라선 순간, 나는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파란 지평선을, 찝찌름한 냄새를 풍기는 차가운 바람을 맞이했다. 온 세상이 파란색이었다.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 바위 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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