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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7. 2018

서툴게나마 발자국을 남기는 일

가지 않은 그 길, 몰타

  누가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랄까 하릴없이 일 년 간 묵혀 두어야 했던 가슴 한 편의 계획들을 다시 꺼내오기로 하니, 전보다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다시 고민해보는 것이니만큼 더 신중해지자는 다짐이 발목을 잡기 때문일까.


  평범한 어학연수 말고 좀 더 섹시한 선택지가 필요했다.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이다지도 넓은 '세상'을 배우고 싶었다.


   차근차근 원점으로 돌아가 헤쳐 나가 보기로 했다. 해외로 떠나 한국인들 득실득실한 어학원을 다니며 수료 증명서 하나 받아 오는 식의 연수엔 과감히 사선으로 찍찍 X 표시를 그었다. 기꺼이 즐기고픈 도전으로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새로운 방식의 신선한 타협점을 떠올려 보는 것!

 

나의 비행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러다 몰타를 알게 된 건 다분한 우연이었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 추천 검색어에서 '몰타'라는 단어를 보았다. 무심결에 클릭. 엇, 그런데 이거. 알고 보니 나라 이름이 아닌가!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유독 재미를 못 느낀 건 사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몰타란 나라가 지구 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는 건 다소 민망스러운 일. 하지만 민망함 채 다 느끼기도 전, 몰타에 대해 알아갈수록 조금씩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 유럽연합(EU) 국가들 간 저가 항공으로 이동이 간편해 적은 부담만으로도 유럽 인근 국가를 여행하는 것이 매우 자유로운 나라.  

-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로 '지중해의 보석'이라 불리면서도, 유러피안 젊은이들이 여행 겸 단기연수로 많이 찾는 메카.

- 그 무엇보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누구에게나 '낯선' 국가. 위험부담이 크지만, 적어도 작은 발자국을 먼저 내어갈 수 있는 곳.


  어쩌면 몰타야 말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최선의 목적지 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디든 떠나고픈 마음을 충족하면서, 생존 영어 익히기든 친구 사귀기든 어쨌든 무언갈 '남겨 오고픈' 마음까지 같이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 말이다.


  쉽지 않은 선택에 계속해 몰타로의 비행을 깊이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한 시를 떠올리게 됐다. 햇살 맑은 어느 날 대학 도서관 구석에 앉아 발견하고는 수차례를 숨죽여 읽어보았던 바로 그 시. 시가 던진 질문에 답하다 보니 고민에도 실마리가 보였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두바이 사막 여행 당시 찍은 사진. 사막에선 모든 발자국이 서툴 뿐이다.

 

 그렇다.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프로스트는 고민스러운 선택 앞에서 자를 택했다. 그 선택이 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에 하나의 길만 선택해 걸을 수 있다면, 나도 그처럼 걷고 싶었다. 너도나도 많이 가 평평해진 길보다 사람들이 적게 가 낯선 그 길.  울퉁불퉁,  서툴게나마 발자국을 남겨볼 수 있는 길일 테니까. 언젠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괜찮아질 방법은 어딘가에 또 있지 않을까. 정 아니면 다시 길을 돌아 나와 걸으면 되겠지. 젊음 뒀다 무엇하!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서도.


 고심 끝이름조차 낯선 나라 ‘몰타’라는 중심을 나의 우주에 담게 되었다.

  누군가 잘 가지 않았던

  그 길, 몰타.

  

 그래. 아무래도 몰타에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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