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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Jun 29. 2024

머릿속에서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이 사라졌다

기억나지 않는 일에 대해 써라




가깝게 지냈던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어린 내가 한창 나의 세계를 구축하느라 가족들의 안위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때, 할아버지는 하루하루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잠든 사이에 할아버지는 숨을 거뒀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긴 했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이 나진 않았다. 상복을 입고, 차갑게 식은 할아버지의 입술이 수의로 덮이는 염을 보고 나서야 이 세상에선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선산에 묻혔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흰꽃을 골라 꺾어서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 얼굴이 느리게 흐릿해졌다.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런데 어떤 죽음은, 너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현실을 거부하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대 초반의 나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픈조였던 나는 매일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중 Z오빠는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친해지기 전엔, 나는 오빠가 챙겨주는 이런저런 먹거리를 거절했다. 신세 지기 싫기도 했지만, 남자들이 이유 없이 여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계심이 있는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내 거절에도 Z오빠는 매번 내 몫을 챙겼다. 결국 나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 Z오빠와 맛있는 것들을 함께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오픈조는 쉴 틈 없이 일해야, 오픈 시간에 모든 준비를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도우면서 10~20분 정도 일을 일찍 끝냈다. 그렇게 시간이 생기면, 오빠는 밥을 먹어야 힘내서 일할 수 있다며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곤 했다.


Z오빠는 언제나 유쾌하고 긍정적이었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오빠를 좋아했다. 오빠와 함께 있으면 나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내가 Z오빠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착각하기도 했다. 어렸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성을 연애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서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Z오빠라는 사람이 정말로 좋았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Z오빠가 병원에서 위독한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휴가를 내고 재밌게 놀러 간 사람이 갑자기 병원에 있다니. 나는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처럼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에 취해가던 그날 밤, 오길 바라지 않았던 전화가 오고야 말았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향은 피웠는지, 국화를 올려두었는지, 상주에게 절은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술에 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을 하지 않으려 했다.


Z오빠의 죽음 이후, 동료들 사이에서 오빠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금기어가 되었다. 모두 어렸던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일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오빠의 이름을 잊었다.


어떻게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을 쉽게 잊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이라도, 이름의 한글자라도, 초성이라도 기억해 보자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기억력이 좋은 나였기에,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10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사이에도 여러 죽음을 경험한 나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Z오빠의 죽음은 내게 큰 고통이었다. 나의 무의식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거대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의 빈자리를 슬퍼하고 추억을 곱씹는 대신에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치 지우개로 존재를 지워버린 것처럼. 


내 무의식이 주도한 기억상실은 나를 위한 것임을 안다. 다만 어린 나는 이유를 몰랐기에, 바보같이 사람 이름을 잊어버렸다며 자책할 뿐이었다. 물론 오빠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보다 자책이 나았다. 그때의 나는 추모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그때 추모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맞았다. 장례식에 맨 정신으로 가야 했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마음껏 울어야 했다. 그를 사랑했던 다른 사람들과 생전의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나는 아직도 Z오빠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위생모를 쓰고 웃던 그의 얼굴만큼은 잊을 수 없다. 그는 비록 이름이 없지만, 내 안에서 멋진 사람으로 존재한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던 그는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죽었다. 남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는 마지막조차도 자신다웠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다정함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그는 꿈꾸던 미래를 얻진 못했지만,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반짝이던 눈동자가 아직 내 안에서 빛나고 있다. 그는 그렇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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