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교사였던 사람에 대해 써라
내게 최악의 교사로 꼽을 만한 사람들은 많았다. 나는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양궁 화살로, 인테리어 자재로,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나무 방망이로 매를 맞았다.
일부 나쁜 선생님들의 학생을 향한 은근한 성희롱이 이뤄지던 시대이기도 했다. 수치심을 주겠다며 남학생의 바지를 벗겨버리고, 여학생들의 윗옷을 들춰 가슴 발육을 확인하고, 자습시간에 교육용 컴퓨터로 포르노를 보고,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난 여학생들을 밤에 따로 불러내 술을 따르게 하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악의 교사로 다소 평범한 B 선생님을 꼽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전교 1등이 되었던 때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학기마다 시험을 쳤던 기억은 나지만, 서로 점수를 비교하며 누가 전교 1등인지 따져보진 않았었다. 그저 방학 때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학업통지서를 통해 각 과목이 '수우미양가'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느 정도로 공부를 해내고 있는지 잘 몰랐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저 수업이 끝나고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부모님이 저녁을 차리기 전까지, 놀이터와 운동장 그리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았다.
그렇게 철없이 놀던 내가 중학생이 되었고, 입학식에서 나는 난데없이 이름이 불려져 강단으로 나갔다. 내가 반배치 고사 1등을 해서, 최우수 학생 상장을 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받아 본 등수가 1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기쁨보다 당혹스러움이 컸다. 이제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처음 보는 친구들은 나를 전교 1등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공부 잘하는 범생이 캐릭터는 내가 원하던 이미지가 아니었다.
당혹감은 교실에서도 계속되었다. 우리 반의 담임이자 국어 선생님이었던 B는 나를 임시 반장으로 지목했다. 이유는 당연히 전교 1등이기 때문이었다. 몇 주 후 정식으로 반장 선거를 진행했지만, 친구들은 익숙해져 버린 나를 뽑았다.
전교 1등이자 반장이라는 타이틀은 게으른 나에게 엄청난 압박이었다. 항상 높은 성적을 기대하는 B 선생님의 눈빛과 그런 선생님이 조장한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면, 힘에 부치게 된다)
하지만 인정욕구가 강한 나는 최선을 다해 1년간 전교 1등 자리를 지켰다. B 선생님은 그런 나를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항상 단정한 투피스 정장에 우아한 웨이브 머리를 하고 꼿꼿한 자세로 우리를 가르쳤다. 나는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고, 선생님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기분 좋으면서도 내심 다 때려치우고 자유롭게 놀고 싶은 마음도 컸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담임선생님이 바뀌자 나는 B 선생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나이땐 머리로 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끼리 몸으로 부딪히며 관계 맺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는 친해진 같은 반 친구들과 악동처럼 신나게 어울려 다녔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를 괴롭히거나, 수업을 째거나, 선생님께 대들진 않았다. 그저 서로의 별명을 시끄럽게 부르며 깔깔거리고, 수업시간에 몰래 쪽지를 주고받는 식이었다. 그러다 선생님께 들키면, 잠시 혼나면 그만이었다.
그날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손을 들고 복도에 서있었다. 그런데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B 선생님이 나를 몹시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이번 기말고사 성적이 7등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널 정말 아꼈는데,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어버린 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이 정말로 의아했다. 전교 1등에서 7등이 되면, 엉망이 되어버린 걸까?
다음 학기에 교외 백일장이 열렸다. 2학년 국어 담당이었던 A 선생님은 백일장 글쓰기 부문에 나갈 학교 대표로 나를 추천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독서라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나였다. 교무실로 호출을 받은 나는 A 선생님께 백일장 참가와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근처에 앉아있던 B 선생님이 A 선생님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B 선생님은 백일장에 보낼 학생으로 나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는 내가 '불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아이가 지능과 더불어 감정을 가진 한 전체적인 인간으로서 학교에 가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학습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에서 발췌
인간 중심의 상담을 선도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찢기는 교육을 받는 것을 개탄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머리만 원하며, 아이들의 감정과 정서는 학교 교문밖에서만 표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이성과 감성, 머리와 몸, 자아와 무의식이 통합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리를 부추기는 교육을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B 선생님이 내게 원했던 것도 머리였다. 내가 아닌 '공부 잘해서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나'를 원했다. 물론 선생님들이 모든 학생의 복잡하고 내밀한 세계를 이해해 주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낀다고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존중해 줄 순 없었을까. 1등이 아닌 내 모습도 좋아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무려 7등이나 했는데도!) 1등이 아니기 때문에 불량 학생 취급을 받았던 나는 B 선생님의 반대에도 백일장에 참가했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1등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