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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Jan 08. 2024

그게 아니라 저희 개가 그쪽을 물어요

오프리쉬와 개물림 사고


초롱이는 방어적인 성격의 공격성을 가진 개다. 산책하다 마주치는 개들을 향해 짖고, 빠르게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몸을 치대는 개들에겐 경고성 입질을 하기도 한다. 보통은 반려견들이 목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자가 저지하는 이상 갑작스럽게 다른 개가 초롱이에게 다가올 확률은 적다. 그럼에도 종종 우린 목줄이 없는 개들을 마주친다. 보호자들 사이에서 오프리쉬에 대한 의견은 찬반으로 갈리고, 나는 반대하는 쪽이다. 개들의 자유보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책을 사랑하는 초롱이, 6년 전 부산에서


무엇이 옳은 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초롱이를 대한다. 초롱이는 경계심이 심한 녀석이고, 불안에 사로잡힐 때 내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초롱이와 나 그리고 다른 개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목줄을 사용한다. 물론 목줄 없이도 보호자 곁을 조용히 걷고 다른 개를 공격하지 않는 착한 개들이 있다. 이런 개들을 산책하다 마주치면 나는 초롱이가 발견하기 전에 자리를 피한다.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일하기 전 내가 회사를 다닐 땐, 출근하기 전에 한 시간씩 초롱이와 산책을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다 보면 같은 사람과 개를 마주치기 쉽다. 그즈음 자주 마주치던 개와 보호자가 있었다. 처음엔 주인을 잃어버린 개라고 생각했다. 한산한 아침 산책로에서 갑자기 목줄이 없는 한 소형견이 초롱이를 향해 달려왔고, 나는 초롱이를 안아 들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 개가 내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동안 초롱이는 내 품에 안겨 으르렁 거렸다. 그러다 우리 쪽으로 태연히 걸어오던 중년 여성분이 개의 이름을 불렀다. 그 개의 보호자였던 것이다.


자기의 이름을 부르자 그 개는 금방 보호자의 곁을 따라갔지만, 나는 순간 욱하고 올라온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서있던 산책로 바로 옆은 자전거 도로였고 계단만 올라가면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변이었다. 보호자와 족히 50m 거리를 벌려 뛰어다니는 개라면 어떤 사고가 일어나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보호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혹시 이 강아지 보호자세요?"

"네, 그런데요?"

"애기 목줄 채워주세요. 저기 현수막에도 써져 있잖아요." (*동물보호법에 따른 목줄 착용 안내 현수막이었다)

"얘는 착해서 안 물어요."

"그게 아니라 저희 개가 그쪽을 물어요."


보호자는 마지막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걸음을 재촉해서 가버렸고,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끝까지 목줄을 하라는 말을 외쳤다. 오프리쉬가 불법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나는 종종 이런 상황에 처했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반려견이 갑자기 들쥐나 비둘기를 쫒다가 차나 오토바이에 치이진 않을까. 신나서 뛰어다니다 보호자를 잃어버리진 않을까. 목줄이 없는 개들끼리 싸움이 나진 않을까 두렵다. 그래도 보통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만, 이렇게 가끔씩 보호자에게 목줄을 착용해 달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내 참견을 들은 보호자들은 기분 나빠하면서도 알겠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뜨곤 했다. 그런 내게 누군가는 무슨 법의 수호자라도 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 정말 나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나는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그 반려견과 우리 초롱이가 안전하길 바랐다는 거다.


친해질 수 없는 사이들


초롱이는 자기보다 훨씬 큰 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입양되기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모두 아물어 작은 흉터로 남아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 처음 왔을 때 초롱이의 왼쪽 엉덩이와 등 부분에 큰 개의 이빨 자국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초롱이는 다른 개들이 다가오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래도 나는 초롱이가 다른 개들과 상호작용하며 지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착한 개들과 조심스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초롱이는 다른 개에게 금세 흥미를 잃곤 했다. 마치 자신이 개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냥.


종종 초롱이가 충분히 싫다는 표현을 해도 다가오는 개들이 있는데, 그럼 화가 난 초롱이가 갑작스럽게 왕! 하고 입질을 하기도 한다. 물론 초롱이는 공격할 목적이 없기에 (심지어 이빨도 별로 없기에) 다른 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었다. 사람에겐 천사 같은 녀석이 다른 개와는 친해질 수 없다는 게 참 속상했지만, 체념했다. 초롱이는 보호자인 내가 밖에서 만나는 다른 개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부족한 보호자였던 시절, 초롱이에게 했던 실수를 모두 기억하기에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말 나를 믿지 못하는 거라면 솔직히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개로부터 초롱이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와 초롱이를 부산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본가에서 초롱이와 산책을 하다 목줄이 풀린 개를 맞닥뜨렸다. 다른 집 마당에 묶여 있던 토종개였다. 사실 며칠 전부터 초롱이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엄청 크게 짖었던 녀석이라 신경이 쓰였지만, 바로 앞집이라 산책을 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날도 초롱이를 향해 위협적으로 짖던 녀석의 목줄이 갑자기 핑-하며 풀렸고 10m 거리에 있던 초롱이에게로 곧장 달려들었다. 


어른들이 흔히 백구라고 부르는 큰 체격의 그 개에게 초롱이가 목을 물린다면 몇 분만에 사망할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 틈 없이 초롱이를 안아 올렸고 목표물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 개는 초롱이 대신 내 정강이를 스치듯 물었다. 아프다고 느낄 틈도 없었다. 나는 왼팔로 초롱이를 최대한 높게 올려서 들었다. 백구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 품에 안긴 초롱이를 뺏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롱이는 온몸이 굳어서 내 손에 들려 있었고, 나는 오른손으로 리드줄을 잡아 공중에서 크게 흔들었다. 백구와의 거리를 벌리는 게 우선이었다. 


조금씩 아물던 그날의 상처


나름 위협적으로 채찍을 돌리듯 리드줄을 돌리면서 소리를 지르자 백구와의 거리는 조금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구는 다시 공격할 타이밍을 노리는 야생 늑대처럼 물러서지 않았고, 나는 너무 두려워서 마을의 누구라도 들을 수 있게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애석하게도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집 쪽으로 뒷걸음질 치며 리드줄을 더 강하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격적인 동물에겐 절대 등을 보이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뒤를 돌수도, 좌우를 둘러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타이밍을 보다가 어느 순간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초롱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안도감과 동시에 백구에게 물려서 아픈 게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지만, 정강이에 난 흉터는 2년이 지나서야 희미해졌다. 초롱이와 백구는 그날 털 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여러분이 나라면 오프리쉬를 찬성할 수 있겠는가)



내가 잠시 살았던 뉴질랜드에는 개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도그파크가 곳곳에 있었다. 우리 부부는 반려견을 키우던 친구덕에 도그파크에 한번 다녀왔었는데, 그냥 자연 그대로의 숲 같기도 들판 같기도 한 넓은 부지에 울타리를 쳐두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둔 곳이었다. 그 안에선 개들이 목줄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숲 속을 자유롭게 뛰노는 아름다운 개들을 보며 한국에 있는 초롱이를 생각했다. 초롱이가 이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 나도 초롱이가 목줄 없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합의가 없는 자유로움이란 존재할 수 있는걸까. 


뉴질랜드는 보호자가 반려견 입양 전에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보호자도 반려견들도 모두 매너가 좋고, 공공장소에서 개들이 짖는 일을 무례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개를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나라에선 이미 개들의 자유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목줄을 채운다. 초롱이에게 안전한 자유를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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