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의 종양 제거 수술
3년 전 초가을, 초롱이 왼쪽 허리에 큼직한 뾰루지가 났다. 며칠 전 잠시 놀러 왔던 아빠도 눈치챌 만큼 두드러지게 솟아오른 뾰루지였다. 우리는 며칠 고민하다 우선 손으로 짜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지와 피가 나왔고, 혹시나 피지낭종이 아닐까 걱정이 돼서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초롱이 몸의 다른 부위에도 뾰루지가 났나 살펴보려 손으로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그런데 오른쪽 허리와 배 사이에 직경 3cm 정도 되는 작은 덩어리가 만져졌다. 원래 있던 근육인지 최근에 생긴 건지 헷갈릴 정도로 애매하게 작은 덩어리였고, 뾰루지처럼 피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나 보기로 했다.
다음날 우리는 선생님께 뾰루지를 짜낸 부위와 혹시 몰라 찍어둔 피지 사진을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피지낭종이 아니라 단순한 여드름 같은 것이니 피부 염증을 소독하는 약만 바르면 되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추가로 물어본 오른쪽 허리의 덩어리를 만져보던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우리도 긴장이 되었다.
언제부터 이 덩어리가 만져졌다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확실하지 않지만 2주 전만 해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얇은 주사기로 해당 부위의 내용물을 조금 뽑아냈고, 주사기 안의 끈적한 액체를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지방종이 생긴 것 같다고.
뾰루지가 피지낭종일까 봐 걱정되어 병원에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위에서 지방종이 생겼다니. 초롱이 몸에 정말로 종양이 생겼다니.
우리는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은 정신 차리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지방종은 피부와 장기 사이의 지방층에서 생기는 종양으로 양성 종양일 경우 절개 수술로 제거가 가능하며, 악성 종양일 경우 내부 장기까지 퍼졌을 확률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상, 이게 악성 종양일 확률은 낮지만 초롱이는 종양이 자라는 속도가 빠른 편이니 최대한 빨리 수술 날짜를 잡는 게 좋겠다고 했다. 정석대로 라면 먼저 조직검사를 진행하고,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하는 게 맞다고 하셨지만 조직검사와 수술을 따로 진행하는 게 초롱이한테도 부담이 될 거라며 일단 종양 제거 수술과 조직검사용 샘플 채취를 동시에 진행하자고 제안하셨다. 이미 우리나 초롱이와의 라포가 많이 형성된 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바로 초롱이의 수술을 예약했다.
수술을 기다리는 3일간 제발 악성종양은 아니길 빌었다. 선생님은 악성 종양일 확률이 낮다고 했지만, 그 낮은 확률이 초롱이에게 일어나면 어떡하나 싶어 불안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내 눈앞에서 코 골며 잠자는 이 작은 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도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장기에 종양이 퍼져서 초롱이와 이른 이별을 해야 하는 그런 최악은 벌어지지 않아야 했다. 나는 아직 초롱이와 헤어지기엔, 그런 이별을 감당할 만큼 마음이 강하지 않았다.
수술 당일 초롱이를 입원시키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마취 전 필수 검사가 몇 가지 진행될 예정이었고, 천천히 마취를 진행해서 피부를 절개해 종양을 모두 제거하는 게 선생님의 계획이었다. 나는 6시간 후에 다시 병원에 와서 회복이 끝난 초롱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병원을 나와 약속한 6시간이 흐를 때까지 어떤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초초한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아 수술 결과를 들었다. 선생님은 절개하고 나서 내부를 보니 생각보다 넓은 부위에 종양이 퍼져있어서 많은 부위를 떼어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 시간도 오래 걸렸고, 꿰맨 부위도 커졌다고. 채취한 조직은 미국으로 보내 조직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 2주 후에나 결과를 알 수 있을거라고 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초롱이를 만날 수 있었다. 붕대가 칭칭 감긴 힘없는 개가 테크니션 선생님의 품에 들려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초롱이는 이불에 축 늘어져 있었다. 저 작은 몸으로 큰 수술을 견뎠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종양을 만든 것도 아닌데, 다 내 잘못 같아 미안했다. 마음이 좋지 않아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우는 소리를 냈더니, 아빠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개들은 훨씬 강하다며 금방 회복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수술 부위를 소독하기 위해 붕대를 벗겼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오른쪽 뒷다리에서 시작해 갈비뼈 부근까지 꿰맨 자국이 족히 15cm가 넘었다.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종양을 제거하셨을걸 알면서도 그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2주라는 시간이 지나버리기 전에 더 빨리 초롱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 스스로가 미웠다. 다행인 건 아빠의 말대로 수술 부위가 매일 소독할 때마다 놀랍도록 아물었다는 거였다. 5일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상처가 잘 낫고 있으니 2주 후엔 실밥을 빼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애써 큰 수술을 했는데, 조직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 수술한 지 열흘 후 동물병원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하던 일을 던져놓고 비상구 계단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선생님은 종양이 퍼진 부위를 모두 떼어냈고 양성 종양은 재발 확률이 낮기 때문에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초롱이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양성 종양임에도 단기간에 넓은 부위로 종양이 퍼진 건 드물지만 굉장히 침습적인 성향을 가진 종양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도 보호자가 반려견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라 더 많은 부위에 퍼지기 전에 빠르게 발견한 편이고, 수술도 빨리 결정해 주어서 초롱이가 덜 아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는 동시에 사명감 같은 걸 갖게 했다. 앞으로 초롱이 네가 아픈걸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는 그런 마음의 맹세 같은.
그 일 이후 3년이 지났고 지방종은 재발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초롱이 몸 구석구석을 더듬거린다. 살을 꿰맨 자국은 아물었지만, 절개한 길쭉한 부위에는 흉터가 남았고 더 이상 털이 자라지 않는다. 그 길쭉한 흉터를 볼 때마다 큰 수술을 이겨낸 초롱이가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글을 쓰다 고개를 돌리니 몸을 말고 앉은 초롱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며 몸에 남은 흉터의 길이만큼 초롱이의 수명이 연장되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