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려견의 응가는 24K 골드
기혼자인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결혼을 하면 좋냐고 묻는다. 난 지금의 남편과 연애한 지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이 사람과 나는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느낌이라면 결혼하라고, 그런데 하나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잘 생각해 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누군가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입양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반려견은 아이처럼 자라서 독립하지도 않고, 배우자처럼 함께 돈을 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삶은 현대인이 아끼고 싶어 하는 모든 것(시간, 돈, 체력)을 요구한다. 정말 입양할 마음이 있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나의 다른 글에선 시간과 체력에 대해 주로 다루므로 오늘은 돈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가장 큰 단위로 쓰게 되는 돈은 병원비다. 보호자는 동물 병원에 다니며 미국과 같은 의료민영화 시스템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물론 어리고 건강한 반려견은 필수적인 예방접종 외에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반려견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면 최소 5~10만 원을 지출하게 된다. 초롱이도 어렸을 땐 1년에 2~3번 정도 방문하는 게 끝이었지만, 노견이 된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1년에 최소 백만 원을 쓰고 있고, 종양 수술을 했던 해에는 이 백만 원 이상을 썼다.
현재 초롱이는 질병이 없지만 신장과 비장, 심장의 판막등 수치가 좋지 않아 추적 관찰하고 있는 부위들이 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하고 있고 매년 스케일링을 한다. 초롱이는 많이 아픈 곳이 없어 이 정도인데, 몸이 아픈 반려견을 위해 보호자가 병원에 쓰는 비용은 나조차도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동물 병원비는 사실 OECD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도 건강보험 공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확실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막연하게 반려견을 키우다 '병원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사료와 간식 등에 드는 식비다. 나는 비교적 성분이 안전하고 영양이 균형 잡힌 수입 사료를 초롱이에게 급여하고 있다. 사료의 가격은 정말 천차만별인데, 누구든 보호자 자신이 정한 예산안에서 사료를 골라도 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나는 한 번도 리콜된 이력이 없는 사료 브랜드 중에서 초롱이의 식성과 나이에 맞는 제품을 골라서 먹이는데, 가격으로 따진다면 한 달에 4만 원 꼴이다. 누군가는 비싸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싸다고 할 것이다. 초롱이는 5kg이 조금 넘는 푸들인데, 체중에 따라 사료 급여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대형견을 키운다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들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식 또는 화식, 동결건조 사료등을 추가로 급여한다면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나도 종종 특식으로 닭이나 황태를 요리한 화식을 급여하는데, 우리 부부가 먹으려고 산 재료를 조금 덜어 주는 정도이다.
간식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초롱이는 뭘 주든 다 잘 먹는데, 나는 최대한 건강에 해로운 간식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성분이 들어간 가공품보다는 단일 재료로 만든 동결건조 제품을 선호하는데, 한번 대용량으로 사두면 오랫동안 급여할 수 있다. 새로운 훈련을 할 때는 간식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간식을 많이 주면 살이 찌기 때문에 일정 이상 간식을 주고 나서는 사료 알갱이로 훈련을 하는 편이다. 게다가 간식은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면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사실 의외의 복병은 병원비와 식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 전용 영양제가 따로 있으며 그 시장이 꽤 크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노견 초롱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각종 영양제를 섞어 먹는다. 이 영양제들을 사기 위해 쓰는 비용이 식비의 2배 정도이다. 초롱이는 칼륨, 유산균, 기관지 영양제 3개만 먹고 있는데도 그렇다. 영양제는 치료제가 아니라서 먹인다고 딱히 좋아지는 건 없지만, 먹지 않았을 때 나빠지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서 급여를 멈출 수가 없다.
노견이 아니더라도 심장사상충 예방약과 외부기생충약은 매달 예방차원에서 먹이거나 발라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에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 다만 몇 개월 분을 묶어서 판매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한 달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만 오천 원 정도이다. 이 2개를 포함한 영양제 구매에 드는 비용이 한 달에 10만 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반려견에게도 적용된다. 나도 처음엔 다이소에서 대부분의 용품을 샀지만 지금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최적의 제품을 골라서 쓴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제품들은 보통 100%의 확률로 비싸다. 하지만 싼 제품을 여러 개 샀다가 결국엔 버리게 되는 것보다, 비싸고 좋은 걸 하나 사서 편하게 오래 쓰는 게 경제적이라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당근 마켓을 이용하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렇다. 반려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누군가 반려견 입양을 생각하고 있다면 '돈'에 대한 고려가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게 필요하다. 집에 아무런 용품이 없는 상태에서 반려견을 새로 입양한다면 먹을 것, 재울 것, 씻길 것, 입힐 것 등등을 사는데 최소 20만 원에서 40만 원을 기본으로 써야 할 것이다. 병원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그렇게 필수적인 용품을 갖추고도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반려견을 위해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다. 반려견을 위해 그 정도 여유를 낼 수 없다면, 안타깝지만 반려견 입양을 반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초롱이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돈을 쓰게 됐다. 특히 건강과 관련된 비용은 아끼기가 어렵다. 초롱이의 수명을 늘릴 순 없어도 줄이긴 싫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초롱이의 응가를 주우며 이런 생각을 한다. 떡볶이, 마라탕, 아이스크림을 먹은 나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 초롱이의 것의 몇 배는 깨끗할 거라고. 바닥에서 깔끔하게 똑 떨어지도록 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갈색의 응가를 줍는 기분은 뿌듯하다. 24K의 금을 줍는 기분이다.
아빠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기였을때, 응가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질 만큼 예쁜 때가 있었다고. 정말로 향기로웠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자신의 보호아래 잘 먹고 잘 싸는 어린 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을지 않았을까. 산책하다 응가를 싸고 가벼운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초롱이를 보는 내 기분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