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양 경험과 분리불안
초롱이는 분리불안이 심하다. 보호자와의 분리불안은 대부분의 푸들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지만, 초롱이는 다른 푸들에 비해서도 심한 편이다. 우리 부부는 초롱이의 불리불안 해결책으로 오랜 사투 끝에 초롱이를 집에 혼자 남겨두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21년도 부터 초롱이는 한번도 한 시간 이상 혼자 집에 남겨진 적이 없었다. 나와 남편이 긴 시간 외출을 해야 한다면 가족들에게 초롱이를 맡기고 외출이나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초롱이를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그게 비록 우리 삶에 제약을 가져오더라도 말이다. 이 글은 우리 부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 훈련으로 충분히 반려견의 분리불안을 극복 할 수 있는데 포기하고 만건지, 사랑과 희생이라는 가치 아래 숨겨 둔 합리화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초롱이는 전 보호자들에게 여러번 파양 당한 개다. 3-4번 정도로 추정되는데, 사실 초롱이가 내게 오기까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파양 경험으로 인해 보호자와 잠시라도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초롱이와 함께 거실에서 웅크려 잠들었던 첫날밤 이후로 초롱이는 나를 '절대 떨어지면 안되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은것 같았다. 집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내가 없으면 (또는 아빠가 없으면) 거실 창문을 바라보며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렸다. 혼자 남겨지면 화분을 엎고, 배변을 아무 곳에나 해 놓는 등의 사고를 쳤다.
그 당시 나는 2개월 후 출국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초롱이의 분리불안이 강화되는 걸 막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짧아도 1년간은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텐데, 그동안 초롱이가 내게 버려진 기분으로 살게 할 순 없었다. 초롱이를 집에 혼자 두고 짧게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별채로 가서 몇시간씩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기도 했지만 어째선지 초롱이의 불안은 심해지고 있었다.
어느날은 내가 집밖으로 나와 50m 쯤 걸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누군가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일인가 싶어 집쪽으로 걷는데, 순간 초롱이가 전광석화처럼 내달리며 내게로 왔다. 알고보니 문 근처에서 낑낑대던 초롱이가 다른 가족이 집에 들어가려고 잠시 문을 연 사이 탈출해버린 것이었다. 나를 찾아나서기 위해서.
나를 찾아낸 초롱이는 헥헥거리며 내 품에 안겼다. 내가 초롱이라면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며 달려다녔을 것 같은데 초롱이는 고작 나를 찾아 달렸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실한 존재가 된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내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차에 커다란 캐리어를 싣고 마지막으로 초롱이를 쓰다듬었다. 초롱이는 나를 배웅하는 가족들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마자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때 그 울부짖음을 애써 뒤로 한채 울음을 삼킨 탓에 나는 외국에서 자주 울었다. 초롱이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부산의 시어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고, 본가에서 부산으로 초롱이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초롱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 마음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던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책임지며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우울하게 지내고 있는 시어머니에게도 초롱이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될것이라는 짐작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