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간단한 해결법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부산에서 1년 반 정도 지냈다. 사실 나는 그때 초롱이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 있지 못했다. 쉬지 않고 일했고, 친구들을 사귀기에 바빴다. 의무적으로 아침, 저녁 매일 2번 산책을 시켜주긴 했지만, 아마 초롱이는 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대신해 초롱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어머니도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했지만, 초롱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게 마음이 쓰여 일감을 집으로 들고 오곤 하셨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초롱이의 분리불안이 심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건 아마 어머니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초롱이를 혼자 두고 외출하곤 했지만, 어머니는 마음이 쓰여 그러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가족 모두가 밖으로 나가 혼자 집에 남겨질 때면 초롱이는 중문 앞 마루를 앞발로 긁었다. 마치 이 부분을 파면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열정적으로 팠다.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마루의 색은 점점 옅어졌고, 발톱으로 파여 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초롱이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 왔을 때, 나는 4-5개월 간 재택근무를 하며 초롱이와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초롱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롱이는 잠깐의 외출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계속되는 외출 둔감화 훈련에도 불안이 줄어들지 않았다. 부산에서 빠르게 적응했던 것과 다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초롱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혼자 집에 있는 게 서서히 적응되나 싶었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내가 재택이 아닌 사무실 출근을 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초롱이의 분리불안은 마치 산꼭대기에서 만든 주먹만 한 눈덩이가 아래로 구르며 불어나듯 커졌다. 초롱이는 혼자 남아 장판과 벽을 뜯었다. 내키지 않으면 문도 뜯었다. 문쪽에 무엇을 어떻게 막아 놓든 초롱이는 그것을 박살 냈다. 우리는 매일 퇴근하자마자 어질러진 집을 치워야 했다. 그렇다고 팻시터를 고용하거나 초롱이를 매일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 (당시 공시생이었던 친동생이 와서 초롱이를 봐주긴 했지만, 계속 부탁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그저 아무 노력 없이 초롱이가 버티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출근 전, 아침마다 한 시간씩 산책을 다녀왔고 수십 개의 노즈워크 간식을 만들어 바닥에 두고 나갔다. 외부소음에 예민한 초롱이를 위해 백색소음을 스피커로 틀어두었고,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도 써봤다. 나름 돈을 들여 반려견과 놀아준다는 로봇도 샀었다. 그래도 초롱이의 분리불안 문제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퇴근하다 마주친 주민은 개가 하루종일 운다며,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한참 사과를 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어김없이 장판과 벽이 뜯어져 있었다. 그런 날은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당시 남편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직장에 다녔고, 나는 가깝긴 했지만 자주 야근을 했다. 직장 일이 유난히 힘든 날은 화를 꾹 눌러 담으며 집을 치웠고, 눈물을 삼키며 저녁 산책을 했다. 이렇게 사는 게 초롱이에게 최선인지 의심스러웠다. 초롱이를 죽도록 사랑하는데, 지금이 행복하진 않았다. 초롱이를 혼자 내버려 둔 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도 미웠고, 내가 매일 돌아온다는 걸 믿어주지 않고 하루종일 불안에 떠는 초롱이도 미웠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려견의 분리불안 훈련은 많았다. 외출 둔감화 훈련, 자주 만지거나 안아주고 같이 자는 등의 과도한 애착 줄이는 훈련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후 한계를 느낀 우리는 결국 훈련사님을 불러 방문 교육을 받았다. 세 달 정도 훈련사님이 시키는 대로 부단히 애쓰며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사님도 이렇게 적극적인 보호자는 별로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훈련을 거듭하며 초롱이의 불안도는 조금 낮아졌나 싶었지만, 결국 큰 성과를 얻진 못했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훈련사님에게 처음 상담을 받았을 때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내내 맴돌았다.
"그 어떤 개도 11시간 이상 혼자 있는 걸 견디진 못해요, 가장 좋은 건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프리랜서를 시작했다. 물론 그 결정을 내린 이유가 100% 초롱이 때문이진 않았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젠 더 이상 CCTV 화면 너머로 초롱이가 울부짖는 소리, 바닥을 긁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됐다. 불안에 떨다 화장실에 갇혀버린 초롱이를 구하러 집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됐다. 내가 좋은 보호자가 아니라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훈련을 6개월, 1년 꾸준히 했더라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인내심이 내게도, 초롱이에게도 없었다. 초롱이는 이미 노견이었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희망고문으로 채워놓고 싶지 않았다.
개를 절대 집에 혼자 두지 않기란 어렵다. 그런데 혼자두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엔 그리 어렵지도 않다. 초롱이를 갓난아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졌다. 갓난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비록 초롱이 때문에 병원도, 쇼핑도 자유롭게 가지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 삶에 스스로 제약을 걸었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내 발 근처에서 잠든 초롱이를 보며 편안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