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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Jan 01. 2024

반려견이 오줌을 싸지 않는다

반려견에게 이사란


초롱이는 실외배변을 선호하는 개다. 사실 개들은 본능적으로 실내 배변보다 실외 배변을 선호한다고 했다. 자기가 거주하는 공간에 배변을 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던가? 그래도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니 배변 훈련을 통해 패드를 깔아 둔 특정 장소에 배변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반려견은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지만, 일부 녀석들은 실내 배변을 거부하기도 한다. 초롱이가 그랬다. 




초롱이를 처음 본가에 데려왔을 때 어떤 곳을 배변하기 좋다고 생각할지 몰라 거실 곳곳에 배변패드를 깔아 둔 기억이 난다. 좀 더 자주 배변하는 장소를 찾아서 패드 개수를 줄여나갈 계획이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초롱이가 소변을 자주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밖으로 산책을 나가면 마치 참느라 힘들었다는 듯 소변을 누는데, 집에선 하루종일 패드 근처에 가지 않았다. 깨끗하던 패드는 깜깜한 밤에만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다. 초롱이는 모두가 잠들었거나 외출해서 혼자 있을 때만 배변패드를 사용했다.


어쨌든 낮에는 밖에서, 밤에는 패드에 배변을 하니 큰 문제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사람이 보는 앞에선 실내 배변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첫 보호자에게 배변 훈련을 잘못 받은 게 아닐까 짐작했다. 실내에서 배변한 걸로 혼을 냈다면 혼날까 봐 눈치 보며 배변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부부가 시어머니가 계시는 부산에서 초롱이를 데리고 살 때도 배변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초롱이는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갔고 조용한 밤에는 화장실로 들어가 배변을 했다. 문제는 우리 부부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에 적응 중이던 초롱이


반려인이 인천에 있는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공항철도가 다니는 서울 서쪽에 살게 되었다. 본가에서 부산으로 데려갔을 때도 잘 적응했던 초롱이였기에 서울에서도 빠르게 적응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초롱이는 실내 배변을 완전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밖에선 배변을 잘했지만, 실내에선 무슨 일인지 절대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초롱이가 머무는 자리엔 조금씩 새어 나온 소변이 고이기 시작했고, 밤새 젖은 축축한 이불을 매일 아침에 세탁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나는 부산에서 다니던 직장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고, 잠도 자야 했으므로 초롱이의 배변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나가기엔 무리였다. 그 무렵 우린 자다가도 초롱이가 생식기를 핥으며 소변을 참는 거 같으면 데리고 나가 소변을 누게 했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순 없었다.


처음엔 초롱이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신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동물병원을 데려갔지만,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더 자주 산책을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합리적인 결론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애석하게 들렸다. 


우리는 폭염과 장마가 반복되던 계절에 이사를 왔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할 틈도 없이 맞벌이를 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산책을 나가도 초롱이는 어김없이 이불에 실수를 했다. 이불을 세탁하고 말리며 이런 나날들이 원망스러웠다. 집에서 소변도 편하게 못 누는 초롱이는 또 어떻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글에서 '반려견 특히 노령견에게 이사란, 사람으로 치면 80세 노인이 평생 살던 동네를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것과 같다.'는 비유를 봤다. 이 또한 사람이 쓴 글이니 진짜 개들의 마음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서울로 이사 온후 초롱이의 상태를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이사 갈 동네에 미리 반려견을 데려가서 산책을 시키기도 하고, 동네 개들과 인사를 시키기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동네와 집에 익숙해지도록 한다고 했다. 장거리 이사에 사람이 고생할 생각만 했지, 초롱이가 적응하는데 힘들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새로운 집이 얼마나 낯설면 배변조차 하지 않을까. 초롱이는 이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초롱이를 꽉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지만, 초롱이는 그저 새어 나오는 오줌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에겐 변화가 필요했다. 우선 초롱이가 실내배변을 거부하는 원인을 파악해보려 했다.


첫 보호자에게 배변 훈련을 받을 때 혼났던 기억으로 실내 배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 현 보호자인 우리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수 있다.

� 현재 배변 환경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세 가지 정도로 추린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먼저 패드를 치우고, 개들의 습성을 고려해 만든 플라스틱 배변판을 주문해 화장실 안쪽으로 배치해 두었다. 새로운 자리에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 화장실에서 간식을 주는 훈련도 진행했다. 초롱이가 밥을 먹은 직후에 배변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일 식사 시간을 훈련 기회로 삼았다. 


초롱이에게 밥을 주고 나서 나는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집의 가장 구석으로 가서 내 몸을 구겨 숨었다. 나는 초롱이가 사료를 흡입하는 소리, 빈 그릇을 핥는 소리,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주변을 경계하는 발소리를 숨죽여 들었다. 머뭇거리던 초롱이가 플라스틱 배변판을 밟는 소리가 나면 입을 틀어막고 내적 비명을 질렀다. 초롱이의 오줌소리가 멎을 때쯤 밖으로 나가 초롱이를 쓰다듬으며 온갖 칭찬을 퍼부었다. 


초롱이가 이 집을 안전하게 느끼고, 실내 배변을 해도 나에게 혼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했다.(물론 나는 전부터 한번도 혼낸적이 없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초롱이는 식사 후 배변하는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배변한 걸 와서 보고 칭찬을 하란 듯 뒷발을 차며 소리를 내기도 했고, 배변을 뒤처리하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자 불을 끄고 숨지 않아도 보란 듯이 내 앞에서 화장실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내가 버젓이 뒤에 서있는데도 등을 돌리고 소변을 누는 초롱이의 뒤통수를 바라볼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내가 기저귀를 떼고 아이용 변기에 스스로 배변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부모님의 마음이 비슷했을까. 개가 오줌을 누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은 내 꼴이 우습기도 했다.


이사 온 집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은 초롱이


초롱이는 마음이 편할 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초롱이가 잘 지낼 때 우리 부부가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나는 이 글을 또 다른 새집에서 쓰고 있다. 초롱이는 지정석에 누워 자고 있고, 새집에 이사 온 지 이틀 만에 실내 배변을 했다. 누가 뭐라고 한대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값진 오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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