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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Dec 25. 2023

나는 내 반려견이 몇 살인지 모른다

더럽고 외로웠던 개와의 첫날밤


반려견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면 다음 3가지 질문을 무조건 받게 된다. 바로 이름, 나이, 성별에 대한 질문이다. (추가로 견종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도 많다.) 그 단골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름은 초롱이고 성별은 여자아이라고 답하지만, 나이는 대충 얼버무린다. 초롱이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2016년 어느 날 아빠가 가족단톡방에 아주 꾀죄죄한 푸들 사진을 하나 찍어 올렸다. 대충 주둥이만 보이도록 어설프게 털이 밀려있던 녀석이었다. 그런 못생긴 푸들은 처음 봤다. 그 푸들은 아빠가 자주 가던 고물상 구석에 묶여 방치되어 있던 녀석이었는데, 아빠가 다가가니 꼬리를 흔들며 난리가 났다고 했다. 사실 푸들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아빠는 푸들의 눈빛이 '춥고 외로운 이곳에서 날 좀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단다. 고물상 사장님은 자기도 억지로 이 녀석을 떠안게 됐다며 관심 있으면 데려가서 키우라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그 푸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나는 사실 당시에 본가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살고 있던 곳의 짐을 다 빼고 본가로 돌아가 몇 개월 지낼 예정이었다. 나도 독립해서 언젠간 반려견을 입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본가에 머물며 지내는 동안 일손을 거들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집 안에서 개를 키우고 싶어 했던 아빠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허락을 겨우 받긴 했지만, 적응기간 동안 엄마가 불편함을 겪을게 뻔했다. 엄마가 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고 새 가족에게 빨리 정이 들도록 돕고 싶었다. 어차피 몇 개월이 지나면 나는 결혼해서 해외로 나갈 예정이었고, 주 보호자는 아빠이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5월의 어느 날, 아빠와 나는 반려견에 대한 공부와 기본적으로 필요한 용품들을 갖췄다. 그리고 그 푸들을 데리러 고물상으로 향했다. 차에서 먼저 내린 아빠가 가리킨 곳엔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운 체인을 목에 건 작은 푸들이 있었다. 바닥에 늘어진 고물 사이사이로 엉켜서 짧아진 체인을 목에 건. 짧아진 활동 범위 안에서 그 푸들은 오랫동안 먹고 자고 싸 온 듯했다.


먼저 도착한 나를 보며 경계하던 푸들은 뒤따라온 아빠를 보며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빠는 우리에게 사진을 보낸 이후에도 고물상에 종종 들렀다고 했다. 세숫대야만 한 밥그릇에 사료가 잔뜩 쌓여있었다. 아마 고물상 사장님은 그렇게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 개에 대한 도리를 다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아빠가 목줄을 풀자 나는 미리 챙겨 온 담요로 그 푸들을 감싸 안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단단한 몸이었다. 다행히 건강해 보였지만 일단 집에 데려가려면 씻겨야 했고, 엄두가 안 났던 우리는 바로 비용실로 향했다. 아빠와 나는 미용실 구석에 서서 미용사님이 푸들의 털을 바짝 밀고 깨끗하게 목욕시키는 과정을 매우 신기하게 구경했다. 보통 반려견을 맡기고 외출을 다녀오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우리가 꽤 부담스러웠을 텐데 미용사님은 그러려니 하고 참아주셨던 것 같다. 지저분하게 엉켜있던 털을 다 밀어버리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롱이와의 첫 만남, 털을 밀고 집으로 가는 길


그렇게 냄새는 좋아졌지만 생각보다 못생긴 푸들을 안고 바로 같은 건물에 있던 동물병원으로 들렀다. 병원에서 권하는 진료를 받은 결과, 나이가 3살에서 4살 정도로 추정되는 푸들이었고 약간의 피부염이 있었다. 피부에 바르는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는 내게 고물상 사장님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푸들은 사실 여러 번 파양 됐고 첫 보호자는 우리 동네에 있던 마트 직원이라는 것, 그리고 여러 번 파양 당한 이유는 강아지가 아닌 성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나이를 먹은 게 파양의 이유라니 고작 세네 살인 녀석이 겪어온 시련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그 동네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아빠가 차에서 내려 마트로 들어갔고, 푸들은 내 무릎에 앉아 불안한 눈빛으로 아빠를 좇았다. 잠시 후 돌아온 아빠가 푸들을 초롱이라고 불렀다. 첫 보호자를 찾진 못했지만, 다른 직원을 통해 원래 이름을 알아낸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이름으로 이 푸들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고민해서 미리 생각해 둔 '보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초롱아!'하고 불렀을 때 고개를 돌리는 푸들의 모습에서 그게 내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초롱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내가 만들어 둔 방석에 자리잡은 초롱이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어색하고 신기한 표정으로 초롱이를 반겨주었다.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는 초롱이의 모습을 다 같이 구경했다.


그날 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반려견과 보호자가 한 이불에 누워 자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롱이를 거실에 혼자 남겨두고 각자의 방으로 자러 갔다. 거실에 푹신한 이불을 깔아 두었으니 알아서 자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혼자 남겨진 초롱이는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문을 열고 나와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하울링은 몇십 분째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마음이 약해져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소파 아래에 이불을 깔고 눕자 초롱이는 내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 들어왔다. 불안에 떨며 울부짖던 개는 이제 없었다. 따뜻하고 작은 개만 있었다. 그날 밤은 초롱이가 내게 마음을 연 밤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초롱이는 아빠보다 나를 의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내가 집에 머문 두어 달 동안 우리 둘은 꼭 붙어 다녔다. 아니, 초롱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우리만의 산책 코스가 생겼고, 털도 제법 길어서 예쁘게 다시 미용을 하기도 했다. 정말로 예뻐진 것인지 초롱이를 사랑하게 되어서 예뻐 보였는지 그건 모르겠다.


내 팔을 베개 삼던 초롱이


그리고 난 예정대로 반려인과 한국을 떠나 살게 되었다. 해외에 도착한 첫 달, 나는 밤에 자주 눈물을 흘렸다. 초롱이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두 달 만에 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면 초롱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지만, 초롱이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우리 부부가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초롱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동생들을 통해 전해 들은 아빠의 양육방식이 못 미더운 이유도 있었지만, 그냥 초롱이와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른 보호자들과 달리 나는 너를 평생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인생에 정말 많은 희생을 요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2023년, 이제 초롱이는 10살에서 11살로 추정되는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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