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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Dec 24. 2023

반려견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을 뻔했다

반려견의 교통사고


초롱이를 입양하기 전, 나는 길을 걷다 서로 짖고 있는 개들을 봤을 때, 공격적인 성격의 개들이 만나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공격하기 위해 짖는 개들도 있지만, 알고 보니 초롱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짖는 것이었다.




초롱이는 불안도가 높은 개다. 여러 파양 경험으로 인해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호자인 나와 분리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집밖으로 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택배 트럭의 철문을 여닫는 소리에도 지나치게 반응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짖는 개의 소리는 '멍멍'도 '왈왈'도 아니다. 살려달라는 비명에 가깝기도 한 '와랄락락락락락악악악' 쉼표 없는 소리다. 그래도 소리들은 금방 사라지니까, 집에선 금세 진정시킬 수 있다.


카페 안에서 바깥을 경계하는 초롱이


문제는 산책하다 만나는 다른 개와 오토바이다. 초롱이는 길에서 만나는 개들의 체구에 상관없이 짖어댄다. 사회성이 좋은 개들은 머쓱해하며 지나가지만, 초롱이와 같은 성격의 아이들은 선공을 뺏긴 게 억울하기라도 한 듯 악을 쓰며 함께 짖는다. 물론 사회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도 해봤지만, 초롱이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갓 삶은 고기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36계 줄행랑. 나와 내 반려인은 인간의 저사양 오감을 이용해 고사양 초롱이보다 먼저 다른 개를 발견한다. 그 즉시 길을 빠르게 지나가거나 돌아서 가는 방법이 우리가 애용하는 방법이다. (눈을 가리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그래도 다른 개들을 향해 짖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보호자들이 잘 대처하면 5초 안에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진짜 문제는 시시때때로 지나가는 오토바이였다.


어디선가 개들에겐 오토바이 소리가 마치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빠른 속도로 도망쳐버리는 얄미운 개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초롱이는 오토바이가 멀리 사라진 후에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멀리서 '부와앙'하는 소리가 들리면 리드줄을 짧게 잡고 자세를 낮춰 초롱이를 제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빠른 속도만큼 초롱이가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간다는 이유만으로 개들의 짖음을 감당해야 하는 운전자들도 고충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연속으로 마주치는 오토바이 때문에 리드줄을 붙잡은 팔 근육이 아파올 때면 오토바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던 사이, 사고는 불시에 일어났다. 어느 날 우리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초롱이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 오토바이 한 대와 기사님이 있었는데, 시동이 꺼져있어서 초롱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잠시 쉬고 있나? 시동을 끄고 횡단보도를 건너시려나? 초롱이를 안아 올리는 게 나을까?' 생각하던 중 기사님이 갑자기 시동을 걸고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기사님은 먼저 신호가 떨어진 왼편의 횡단보도를 통해 급히 도로로 진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토바이에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그 순간 초롱이는 말릴 틈도 없이 하네스를 벗어던졌다. 마치 언제든 벗을 수 있는데 지금까진 봐줬다는 듯이 너무나 쉽게. 나는 빈 줄을 붙들고 초롱이를 눈으로 좇으며 소리를 질렀다. 울음에 가까운 고함이었다. 몇 초 사이에 초롱이는 오토바이 뒷바퀴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나마 이성을 차린 반려인이 오토바이 기사님을 큰소리로 불러 세웠고 다행히 초롱이는 다치지 않았다. 목적지를 잃은 초롱이를 반려인이 안아 올렸고, 기사님은 다시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나는 초롱이를 건네받자마자 다리가 풀려 길에 주저앉고 말았다. 반려인도 그제야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거리에서 우리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사람들이 안도하는 소리가 웅웅대며 들려왔다. 우리는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집으로 걸었다. 초롱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품에 안겨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년 전 아침 산책을 나갔다 교통사고로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봤던 기억이 났다. 도로를 붉게 물들였던, 한때 고양이였던 일부들을. 단 1초만 늦었어도 초롱이가 오토바이 바퀴에 깔렸을 수도 있었다. 오토바이가 멈추지 않고 큰 도로로 진입했다면, 신호를 받고 달리던 차들에 초롱이가 치였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고양이가 초롱이가 될 수도 있었다. 초롱이가 그렇게 허무하게 내 인생에서 떠나갈 수 있었다.


아직도 강아지 같은 초롱이


초롱이의 시간은 나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정성을 다해도 자연의 순리대로 산다면 10년 안에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날은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초롱이는 내가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게 주고 있다는 것을. 


초롱이는 초롱이라는 존재를 나에게 주고 있었다.


나는 초롱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며 그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로 나는 귀여움을 제공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초롱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초롱이를 보호하며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날까지 사용했던 하네스...


+그날 이후로 하네스는 더 복잡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바꿨다. 내가 풀어주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것으로. 오토바이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훈련을 집요하게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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