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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Dec 31. 2023

위 개가 먹은 곶감의 개수를 구하시오

반려견의 식탐이 지나칠 때


초롱이는 식탐이 강하다. 한 번도 건사료나 화식, 간식을 거부한 적이 없어서 기호성을 따져 먹일 필요가 없었다. 간식으로 동기 부여가 워낙 잘돼서 각종 훈련도 수월한 편이었다. 어느 정도의 식탐은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지난 몇 년간 초롱이의 식탐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고, 꾸준한 노력으로 문제 행동을 교정시키거나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통제해 왔다. (과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처먹다간 배가 터져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겠다 싶은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우드스틱도 일주일 만에 해치우던 초롱이


초롱이를 처음 본가에 데려온 며칠 후, 우리 가족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내내 얌전하게 앉아있던 초롱이가 치킨 냄새를 맡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식탁에 앉은 우리에게 짖고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처음 보는 초롱이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소금기, 기름기 가득한 치킨을 줄 순 없었다. 그래서 초롱이를 작은 방에 잠시 격리시켜두었는데, 문을 닫자 초롱이는 문을 부술 듯이 긁기 시작했다. 우리는 불편한 식사를 이어가며 초롱이의 전 보호자 중 한 명 또는 모두가 치킨을 줘서 버릇이 잘못 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날 끝까지 치킨을 주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사람이 먹는 음식을 절대 초롱이에게 주지 않기로 했다. 그날 봤던 초롱이는 마치 당연히 자기도 치킨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듯 요구했고, 그 욕구가 좌절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밥그릇에 사료를 주자마자 허겁지겁 10초 만에 식사를 끝내는 녀석인데, 치킨은 얼마나 맛있게 먹었을지 뻔했다. 




그런데 초롱이에게 인간이 먹는 음식을 주지 말자던 우리의 약속은 내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고구마를 자주 초롱이와 나눠먹었고, 초롱이는 겨울만 되면 통통한 개가 되었다. 그래도 간이 된 음식은 절대 주지 않았다는데, 문제는 초롱이가 그럼에도 호시탐탐 음식을 훔쳐먹을 타이밍을 노렸다는 것이다. 


초롱이는 주로 식탁 밑에 누워 가족들이 식사하다 흘린 부스러기를 노렸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시간이나 자고 있을 때 식탁 위를 노렸다. 그래서 가족들은 식탁에 초롱이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의자를 끝까지 밀어 넣고 남은 음식은 다른 곳에 치웠지만 깜빡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초롱이는 고구마도, 치킨도 심지어 포도 껍질도 훔쳐먹었다. 사실 포도는 개들에게 위험한 과일이라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빠가 먹다 남은 접시를 식탁에 올려두고 급히 외출해 버려 생긴 불상사였다. 이때 나는 전화로 조심 좀 하지 그랬냐며 아빠를 타박했었는데, 사실 나도 초롱이를 데리고 살면서 비슷한 실수를 자주 하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초롱이와 함께 산지 1년쯤 지났을 때,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다용도실 바닥에 잠시 내려둔 고등어구이의 찌꺼기를 초롱이가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달려 나가 보니 이미 음식을 맛본 초롱이는 접시를 뺏으려는 어머니에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나는 바로 초롱이를 제압한 후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어 남아있는 음식물이 없는지 훑었다. 입속에 남은 음식은 없었지만, 어머니가 발견하기 전까지 뭘 얼마나 먹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어는 기름진 생선이라 급성 췌장염이 올 수도 있고, 큰 가시를 삼켰다면 소화관 천공이 올 수도 있었다. 일단 저녁이라 시간을 두고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고 다음날 혈변이 나오자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 결과 장염 정도의 증상이라 주사 처치와 약복용으로 괜찮아질 것 같다고 했다. 크게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문을 열어둔 자신을 탓했고, 나는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초롱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고등어 때문에 주사 맞고 시무룩해진 초롱이


초롱이의 식탐이 정점을 찍었던 사건이 있다. 나는 그것을 '곶감 사건'이라고 부른다. 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초롱이가 식탁에 있던 곶감을 훔쳐먹은 사건이다. 그날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초롱이 배는 뚱뚱해져 있었고, 먹고 남은 곶감이 바닥 한 구석에 쌓여있었다. 먹다 지쳐서 나중에 먹을 것을 자기 나름대로 안전한 곳에 쌓아둔 것이었다. 기가 차는 광경이었다. 나는 일단 초롱이가 어떻게 식탁에 올라갔는지, 사람도 힘을 줘서 열어야 하는 튼튼한 플라스틱 통을 어떻게 연 것인지 의문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미리 고려하지 못한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자책은 뒤로하고 일단 초롱이의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초롱이는 그날 새벽 구토를 했고 다음날 평소보다 기운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료를 주면 잘 먹기에 괜찮은 건가 싶다가도,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병원을 데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 속 초롱이의 위는  곶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은 바로 구토유도 처치를 했고 몇 분 후 초롱이의 입에서 곶감이 쏟아져 나왔다. 장으로 넘기지도 못할 곶감을 미련하게 처먹었을 장면을 상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처치 후 마지막으로 찍은 엑스레이 사진 속에 남은 곶감이 보였지만, 구토 유도를 위한 과산화수소 투여량이 몸무게별로 제한이 있어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곶감 먹은 날, 빵빵해진 배


의사 선생님은 딱딱한 감꼭지가 대장으로 넘어가 장기내부에 상처를 낼까 걱정이었는데, 곶감을 많이 게워내기도 했고 엑스레이 상으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잘 지켜보라고 하셨지만, 한편으로 병원에 데려와 처치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도 잠시, 나는 꾹 눌러둔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곶감을 꾸역꾸역 훔쳐먹은 초롱이에 대한 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곶감을 식탁에 두고 간 나에 향한 화였다. '그러게 왜, 그거 하나 챙기질 못해서.'


사실 곶감사건 전에는 초롱이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뭐든 배가 터질 때까진 먹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까지 식탐이 강하진 않을 거라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곶감 색의 개를 끌어안은 채 다짐했다. 앞으로 초롱이가 내 실수로 음식을 잘못 먹을 일은 절대 없게 할 거라고. 초롱이가 아픈 것도 싫었지만, 그게 결국 내 탓이라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예전엔 초롱이의 파양 경험이 지나친 식탐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마음이 괴로우면 과식을 하게 되니까. 하지만 초롱이는 그냥 식탐이 많은 개였다. 초롱이는 밀폐용기 뚜껑을 열어 사료통을 털어 먹은 적도 있었다. 당시에 나는 하루 2번 밥을 줬는데, 초롱이는 보통 한 시간 전부터 밥을 달라고 보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코로 툭툭 건드리곤 밥그릇을 가리켰고,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분노의 백스텝을 밟다가 짜증 내듯 짖었다. (요구적인 성향의 반려견이 하는 행동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이 보챔은 나에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어서 나는 결국 정해진 시간에만 밥을 주겠다는 의미로 휴대폰 알람을 맞추게 되었다. 알람을 맞춰 밥을 주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문제 행동이 교정되었다. 이제 초롱이는 알람이 울려야 자신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밥을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요구적인 성향을 고치려고 알람을 맞추게 된 이유도 있지만, 규칙을 통해 초롱이의 식탐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초롱이는 치킨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 부부가 사람이 먹는 건 초롱이에게 어떤 것도 급여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잘 지킨 덕분이었다. 물론 반려견이 먹어도 안전한 고구마 등의 작물, 간이 안된 고기들은 같이 나눠먹기도 하는데, 초롱이 몫을 따로 빼두었다가 시간차를 두고 주는 편이다. 우리가 먹을 때 초롱이를 주게 되면, 같이 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다음엔 요구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가끔 본가에 놀러 가면 아빠는 '초롱이 한입 줄까?' 하고 먹던 고구마를 나눠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 그러면 안 된다니까!' 하며 만류하지만 소용없다. 그래도 똑똑한 초롱이는 아빠만 고구마를 나눠주는 사람으로 인식해서, 집에 돌아와서 우리 부부에게 고구마를 요구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빠가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난다. 어린 나에게 믹스커피를 한 모금 나눠주던 할머니를 보던 엄마의 심정이 나와 비슷했을까.


그래도 초롱이는 여전히 식탁 아래를 기웃거리고, 주방에서 삶은 고기를 썰고 있으면 한 점이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기대하며 발밑을 서성인다. 당연한 듯 음식을 요구하진 않지만, 혹시 모를 행운 같은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초롱이가 아주 나중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파서 누워있는 것보다 식탐이 강한 지금이 좋은 거라는 생각을 한다. 


+곶감 사건 이후 내 실수로 초롱이가 음식을 잘못 먹는 일은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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