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은 시쳇말로 눈코 뜰 새 없었다. 금요일 손님이 떠나자마자 방 청소, 이불 정리로 토요일 손님맞이를 시작했다. 30명이나 되는 만큼 1분 1초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일 덩치가 크니 착남도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이틀 밤샘에도 불구하고 세팅된 기계처럼 빠릿빠릿했다. 열심히 사는 부모를 돕는 효녀가 되어 음식을 나르고 빈 접시를 채웠다. 서빙을 시원시원하게 잘한다며 팁도 받았다. 다른 팀 모르게 살그머니 내미는 바람에 사양할 새도 없었다. 착남이 안 보이는 틈을 타 얼른 호주머니에 넣었다. 민지에게 쓸 수 있겠다 싶으니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버섯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글로 밤을 새우고 아침노을이 퍼질 무렵 벚나무밭으로 달려갔더니 독우산광대버섯이 뽀얀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5개를 따서 비닐백에 넣었고, 집으로 가져와 정성을 다해 튀겼다. 아침상에 나갔던 새송이, 표고 튀김과 나란히 놓아보니 구별이 되지 않았다. 온몸 온 신경이 바짝 섰고 이마와 손에 땀이 뱄다. 착남이 손님 짐을 실은 오토바이를 타고 여러 번 선착장을 오가는 동안 끝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바라고 바랐던 일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소씨 아저씨를 떠올리며 양손을 맞잡았다.
마지막 팀이 나가자 나는 이불부터 모았다. 세탁기와 건조기 사이를 오가는 사이에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으나 기계적으로 몸을 놀렸다. 집마다 다른 휴업일은 마을발전위원회가 결정하는데 우리 집은 내가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일요일로 했다고 했다. 일요일 막배로 본섬으로 나갈 수 있으니 맞는 말일 테다. 그때 고개를 끄덕인 착남은 돌아서서 이장을 욕했다. 일요일이 다른 평일보다 손님이 많아서다. 바꾸고 말겠다는 기세이니 그대로 두면 학교 다니기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뿌우 뿌우,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청소하던 방 창문에 서서 멀리 내려다보았다. 선착장으로 배가 들어오고 손님을 배웅하거나 마중 나온 펜션 주인들의 자가용과 오토바이로 붐볐다. 나는 넓은 바다와 다가오는 배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착남의 오토바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식당에 들어선 착남은 소주부터 꺼냈다. 거칠게 병을 흔들어 물잔에 붓더니 눈알을 아래위, 옆으로 굴렸다. 뭐라도 트집 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양념 아까운 줄 모른다고, 반찬이 많이 나갔다고, 내가 손님에게 불친절했다고, 실실 웃었다고 맥락 없이 떠들었다. 제 말에 스스로 열을 받는지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을 차기도 했다.
그래, 마지막 지랄일 테니 마음껏 떨어라. 주방에 들어간 나는 평생 처음 가져보는 여유와 관대함을 장착했다. 국을 푸고 밑반찬을 천천히 담으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열다섯으로 넘어갈 때 착남이 소리쳤다.
“밥은 됐고 술부터 내와. 거, 튀김 좀 남았나?”
드디어 낚였다. 내 기다림이 착남의 성급함을 이겼다. 나는 얼른 따뜻한 접시를 들고 나갔다. 걸음이 꼬여 넘어질 뻔했지만, 무사히 식탁 위에 버섯 튀김을 올렸다.
착남은 소주 한 잔을 원샷으로 마시더니 튀김을 집었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바삭, 맛있는 소리가 났다. 착남은 하나 더 집어 자세히 쳐다보는 듯하더니 한입에 먹었다.
“새송이도 쫀득하니 괜찮네. 표고 비쌀 땐 섞어도 되겠다. 그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비 아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착남이 갑자기 은근해졌다.
“야, 플러스 원. 다 잘 살자고 하는 말인 줄 알지? 좋은 댓글 받아 예약 꽉꽉 채우자고. 매상이 어제 정도는 되어야 한단 말이야.”
어느새 소주병이 비고 튀김 접시도 기름기만 번들거렸다.
“예. 열심히 할게요.”
모처럼 상냥하게 부니는 말에 착남이 허허헛 웃었다. 나는 외워두었던 증상을 떠올렸다.
섭취한 뒤 6시간에서 8시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열은 없지만 배가 아프고 토하며 콜레라처럼 심한 설사를 동반한다. 점액과 피가 섞여 있기도 하다. 하루 정도 지나면 증상이 다소 안정되지만 3~4일 뒤엔 다시 위장장애, 간기능 장애가 나타난다. 7일엔 콩팥 기능 상실, 10일 이내에 사망한다.
청소와 빨래를 끝내고 나는 배를 탔다. 착남이 튀김을 먹은 지 6시간 후였다. 장씨 아저씨와 개철 아줌마가 주고받는 농담을 들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게 실감 났다. 다음 주 금요일엔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될까, 그때 착남은 죽었을까, 죽어가고 있을까, 아미도가 아니라 본섬 장례식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엄마와 나란히 서 있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일랜드 카페를 지날 때 고개를 쭉 빼고 숍인숍 쪽을 보았다. 메리 올리버라고 했던가, 펜션을 떠나면서 책방지기가 시집을 빌려주겠다고 할 때 받을 걸 그랬나 싶다. 내일 밤으로 예정된 온라인 소설 모임과 읽지 못한 추리소설이 생각났다. 밤새워 글을 쓰면서 느낀 야릇한 열기도 떠올랐다. 착남이 죽고 나면 그 모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엄마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민지에게 스며드는 빗물이 될 수 있을까……
기쁜 줄 알았는데 어이없이 눈물이 났다. 그래도 나는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얼굴을 들고 어깨도 폈다. 눈물이 흐르거나 말거나 아랫배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걸었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원룸에 도착해 샤워부터 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섰다. 튀김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튀김을 내가던 순간을 되살려 보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헷갈리고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참 생각하다 보니, 실수하지 않았겠지만 실수한들 어떠냐 싶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지금도 죽어 있으니까.
아랫배가 다시 아프고 뭔가 메스꺼운 것도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괜찮냐는 이모티콘을 보내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쨌든 나는 끝까지 독버섯의 존재를 몰라야 했다. 착남의 죽음은 소씨 아저씨처럼, <살인자의 집>처럼 미제 사건으로 남아야 한다. 좁은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열었다. 저녁 8시, 튀김으로부터 9시간이 지났다. 아미도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불안한 마음을 몰아내듯 나는 책상에 앉았다. 태블릿을 열어 내가 쓴 글을 보았다. 나와 달리 P는 원 플러스 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숍인숍이라면 책방을 품는 카페가 되겠다고 했고 본섬에 딸려 있으나 본섬보다 풍경이 좋고 잘 사는, 섬의 섬이 되겠다고 했다. 내가 썼으나 내 소망을 정확하게 짚어준 글이 마음에 들었다. 내 머리에서 나온 글이 나를 다시 정리해 준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메일함을 열어 담임 주소를 클릭했다. 메일 제목을 ‘숙제-처음 만나는 죽음’으로 적었다가 한참 만에 ‘숙제-처음 만나는 소설 쓰기’로 바꾸었다. 담임은 200명 글을 모두 읽을까, 내 글을 보고 뭐라 할까, 상담실로 부르는 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옆에 있는 생수를 당겨 마시는데 캑캑, 숨이 막혔다. 쳐다보니 병 입구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벽에 붙은 침대에 누웠다. 형광등을 꺼야지 싶은데 마음뿐이었다. 다시 아랫배가 조여왔다. 생리 전조현상으로 믿고 싶었다. 엄마는 자고 있을까, 착남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생각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독버섯을 먹었대도 잠 귀신에게 먼저 잡혀갈 것 같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어디로 가는 중인지 소리가 점점 커졌다. 버벅거리는 엄마의 음성 같다고 느끼며 나는 잠인지 죽음인지 모를 세계로 빠져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