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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의 섬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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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 Oct 21. 2024

갈아타기1


  큰누나가 돌아왔다. 일 년 만의 귀국치고는 가방이 단출했다. 선물을 사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돈은 물론이거니와 먹거리 한번 부쳐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일 것이다. 작은누나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감생심, 선물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국비로 다녀온 어학연수였으니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얼굴이 하얘졌다, 틀어박혀만 있었나 봐, 살은 좀 붙었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작은누나 말에 나는 큰누나를 다시 보았다. 살이 붙어 낯설게 보였나? 

  큰누나도 두리번거렸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상자며 물건 보따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미처 처분하지 못한 마트 물건들이었다. 어머니는 곧 넓은 집으로 갈 거라는 말을 겸연쩍게 했다. 좀 잘게요. 생일이라 잡채도 했고 미역국도 끓였는데…… 어머니가 아쉬운 듯 말꼬리를 내렸다. 모처럼 장만한 음식이니 빨리 맛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언니 좋아하는 깻잎 조림도 있어. 작은누나의 말에도 큰누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하긴 장시간 비행기에 시달리고 시차 적응도 안 된 사람 붙들고 먹어라 먹어라 하는 게 더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복도 저만치서 준영이 걸어오고 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재바른 걸음이다. 늘 그렇듯이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오늘 편집회의 알지?”

  준영이 손을 뻗어 내 앞을 막으며 말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옆으로 비켜섰다.

  “어허, 왜 이래?”

  “몰랐어? 좋아서 그러지. ……이젠 고민 끝난 거지?”

  “아무래도 좀 그렇잖나? 이미 일 년 이상 너희끼리 짜인 판에……”

  “후배는 7명인데 우리는 4명뿐이야. 몇 번이나 말했듯 두 녀석이나 탈퇴했어. 당장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손이 없다. ……네가 절실해. 네가 우리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 이 편집부장을 위한 신의 은혜구나, 딱 감이 왔지.”

  “그래서 나한테 친절했던 거야? 부려 먹으려고?”

  “친구! 무슨 말을 그렇게. 길 잃은 어린 양에 대한 이 형님의 헌신을 몰라 주시고 말입니다.”

  문어체 낡은 비유를 구어체로 말하는, 특유의 말투가 나왔다. 빤한 내용을 정색하며 말할 뿐인데 준영이가 말하면 우습고 재미있다.

  2학기 들어 나는 반을 옮겼다. 사회 중점 반으로 가겠다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담임은 펄쩍 뛰었다. 나는 수학이나 과학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흥미 또한 없다고 말했다. 민준이와 같은 반 하려고 물리 반으로 왔다는 말은 못 했다. 담임의 힐난이 더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라, 학교 행정이 기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했는데 네가 간다니 서운하다, 다른 애들이 따라 하면 감당 안 된다…… 담임은 나를 몰아세우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여름방학 동안 굳힌 내 마음을 바꿀 순 없었다. 어머니가 딴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서야 담임은 절차를 밟아 주었다. 

  낯선 반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따라잡아야 할 공부도 어려웠지만 급우들과 어울리는 게 더 힘들었다. 끼어들 자리를 만들어준 스마일보이가 없었다면 나는 오랫동안 헤맸을 것이다. 

  “하는 거다? 동기들 반기지 후배들 말 없지 담당 샘 환영이지, 완전 삼위일체! 좋다, 스카우트 몸값으로 햄버거도 쏜다. 오케이?”     


  “꿈꾸는 나무는 좀 그렇다. 그럼 이건 어때? 엄마랑 아기랑”

  “너무 평범해. 듣는 순간 아, 이거다 싶어야 하는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머니와 작은누나는 지친 기색이 없다. 다른 일도 아니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의 상호를 정하는 문제였다. 

  얼마 후면 시난고난 끌어오던 그린마트가 문을 닫을 것이다. 인수할 때 미치지 못하지만, 권리금을 주겠다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근에 편의점과 할인매장이 들어선 마당이니 더 나은 조건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건물주는 새 입주자와 계약서를 쓰고 아버지는 가게에 쌓인 물건을 현금화시켰다. 파격적인 가격할인을 통해서였다. 

  마트를 내놓기 전부터 온 가족이 나서서 새 일을 궁리했다. 가게가 넘겨질 무렵에는 하루에도 열두 가지 이상의 업종이 왔다 갔다 했다. 걱정되고 들뜨기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주말이면 게임 대신 온종일 창업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고심 끝에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방으로 결정했다. 작은누나에게 자격증이 있어 보육교사는 확보되었으니 구청에 신고만 하면 사업자 등록이 되었다. 놀이방은 수용 인원이 20명 이하로 한정되는 점을 빼면 어린이집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는 김밥 가게로 계속 출근하면서 아침 일을 거들기로 했다. 다른 놀이방과 달리 방문 서비스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차별화 전략은 더 있었다. ‘이동 차량 탁아방’으로 불릴 그 일은 주로 주말에 이루어질 것이다. 아이들을 공원이나 놀이터로 데리고 가 부모 대신 봐주는 일이다. 봉고차를 예쁘게 칠하고 차 안에 애들이 보는 책과 장난감을 갖추면 될 터였다. 알음알이로 산모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너희들, 내가 끓인 미역국이 최고라 했잖아. 분위기에 고무된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초등학생을 받아 숙제 관리를 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한술 더 떴다. 갑자기 일들이 쏟아져 들어올 듯한 분위기에 식구들 마음이 붕붕거렸다. (갈아타기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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