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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의 섬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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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 Oct 21. 2024

갈아타기3

  드디어 집도 갈아탔다. 그린아파트 101동 102호, 현관에는 ‘그린 놀이방’ 간판이 걸리고 창문이 알록달록하게 꾸며졌다. 현관을 마주 보는 앞집은 주민회관 겸 경로당이었다. 1층인데다가 경로당 앞이라서 전세금이 한참 낮았다며 어머니는 기뻐했다. 24평에서 43평으로 넓어졌으나 이제 집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일터가 되었다. 방 두 개에 짐을 몰아넣고 거실, 부엌, 방 두 개는 아기들의 놀이터, 공부방, 수면실로 꾸며졌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책가방을 꾸린 다음 아기들 수면실로 건너가야 했다. 분홍색 공주님과 하늘색 구름 벽지를 바라보며 들척지근한 내음 속에서 잠들었다. 종종 슈렉이나 잠자는 공주가 나오는 꿈속에서 헤매거나 한밤중에 벌떡 깨기도 하지만 내 방이 없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큰누나는 돈으로, 작은누나는 노동으로 집안을 돕고 있으니 말이다.

  “언니가 그런 말 할 줄 몰랐어. 왜 그래, 정말?”

  늦은 밤, 야자를 마치고 귀가한 나는 교복을 벗으려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요즘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작은누나가 웬일인가 싶었다. 선뜻 문을 열지 못한 채 서 있자니 싸우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냥 싫어. 싫다고. 갓난아기 받는다는 얘기는 안 했잖아. 한 달도 안 된 애를……”

  “지금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어? 다섯 명으로는 현상 유지도 안 돼. 그리고 수정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다는데 어떻게 애를 보내. 오히려 우리에게도 기회지.”

  “아, 몰라. 아기 우는 소리 정말 싫단 말이야.”

  “조용히들 해. 간신히 재워놓은 애 깨겠어.”

  어머니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정화야, 너까지 도우라는 말은 안 할 거야.”

  “밤새 시달릴 텐데 엄마 몸은 무쇠야?”

  “그건 알아서 한다니까 그러네. 나는 너희들 싸우는 게 더 힘들어.”

  “언니, 참 많이 변했다. 그래, 천만 원 내놨다 이거지? 나 같은 건 꿈도 못 꿀 능력이니 말이야.”

  큰누나를 째려보며 빈정거리는 작은누나, 보지 않아도 빤했다. 작은누나가 가장 화났을 때 내는 음성을 들으며 나는 숨을 참았다. 뭔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방문을 열며 들어서자 누나들이 흠칫했다. 아기를 업고 엉거주춤 서 있던 어머니는 내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보조를 맞출 겸 나는 물었다. 

  “누구예요?”

  “수정이, 오늘부터 밤에도 보기로 했거든. 귀엽지?”

  작은누나가 큰누나를 흘끔 보며 내게 말했다. 저렇게 계속 업혀 있어야 하는 아기라면 누구라도 짜증 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외국 배우처럼 어깨를 조금 들썩이기만 했다.

  “아버지는?”

  “새삼스럽게 아버지는, 아직 퇴근 전이……”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가 빼액 빽, 울음을 터뜨렸다. 

  “에구에구, 우리 공주님, 또 깼어? 엄마 등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자장자장 자장자장……”

  어머니는 잔걸음을 떼며 아기를 달랬다. 

  “봐, 그렇게 밤샐 거야?”

  큰누나의 목소리가 앙칼졌다. 안색조차 새파래져서 홱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무어라 대꾸하려는 작은누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로터리, 로터리 사람들’

  특집 제목과 취재 범위가 정해졌다. 이곳은 도시가 만들어질 때부터 여러 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 젊은 거리로 통해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 섭외가 가능한 사람들을 취재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학교종 문방구와 로터리 모퉁이 얄개분식, 지나가면 괜스레 주눅 드는 경찰서와 우리 학교 단골병원 정 의원, 휴대폰 가게와 24시 편의점으로 압축되었다. 두 사람이 같이 다니되 글은 한편씩 책임지기로 했는데 나는 얄개분식을, 준영이는 정 의원을 맡아 한 팀이 되었다. 

  “우리가 후배라서 편했나? 자랑 들어준다고 힘들었네.”

  정 의원을 나와 얄개분식으로 향하면서 내가 말했다. 

  “뭐, 의사니까 그럴 만도 하지. 초엘리트 아니냐?”

  “평생 같은 일만 하면 답답할 거 같은데……”

  “에구, 낭만파 나셨네. 저런 사람들이야 얼마나 좋아. 일이 안 풀리는 사람들이나 자꾸 갈아타는 거야. 하긴, 우리 집 같은 미련퉁이도 있긴 해.”

  “뭐 하시는데?”

  “엥? 몰랐어? 얄개분식이 우리 집이라는 걸. 알고 맡은 거 아니었어?”

  “헉, 네가 그 집 아들? 정말 빅뉴스다. 우리 집 완전 단골이야. 얼마 전에도 큰누나가 한 보따리 사 와서 먹었어. 너는 좋겠다.”

  “아이구, 철 좀 드세요. 그깟 게 뭐라고, 정 의원을 부러워해야지…… 그런데 나도 어쩌나. 이러는 창우 너하고 배짱이 맞으니 말이야. 너나 나나 돈 되긴 다 틀렸다.”

  준영이 집이라니 얄개분식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는 진열해둔 음식들과 양쪽 벽을 빼곡히 채운 낙서를 찍었다. 학생들이 즐겨 찾는 먹거리, 학교별 특징, 단골손님들에 얽힌 에피소드, 예전과 지금의 차이 등에 대한 답변을 준영이 외할머니와 어머니께 들었다. 먹는 틈틈이 수십 년 역사가 내려앉은 가게 안을 훑어보기도 했다. 먹는 거로 장난치지 않았고 배고픈 손님들에게 야박하게 굴지 않았으니 후회는 없어. 자식에 손자까지 여러 식구 거둬 먹인 곳이니 그저 고맙지. 얄개분식 원조인 외할머니 이야기를 끝으로 취재를 끝냈다. 

  “혹시 이 이름 아세요?”

  나는 주방 쪽 낙서판에 실린 글자를 짚으며 말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내 손끝으로 몰렸다. 준영이 가까이 눈을 들이대었다. 

  “맞춤법이 엉망이구만. 할머니, 빨리 낫으세요. 재희와 왓다가요. 윤호. ……할머니, 아는 애에요?”

  “윤호? 에미야, 아는 애냐?”

  “엄마도 참, 공고 다녔던 애 있잖아요. 준영이와 동갑이라고 챙기더만. 그런데 으음, 윤호는 ……죽었어. ……하필 그 애 글을……”

  “예, 저도 그런가 싶어서 여쭤본 거예요. 제 친구의 친구거든요. ……이렇게 흔적이 남네요.”

  나는 민준과 함께했던 순천만을 떠올리며 소름 돋는 팔을 쓸어내렸다. 

  “할머니, 엄마, 우리 늦어요. 가야 해요. 내가 보고 싶더라도 울면 안 돼요. 아시겠죠?”

  이상하게 흘러가 버린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준영이가 너스레를 떨며 나를 이끌었다.

  “에구, 싱거운 놈. 차 조심하고 다녀.”

  “우리 할머니 또 걱정이다. 손자, 다 컸거든요.”

  “어서 가. 창우야, 다음엔 누나와 같이 와. 우리 집 단골이라니 특별히 잘해 줄게.”

  주고받는 대화가 정겨웠다. 나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준영이가 나오지 않아 안을 기웃거리니 준영은 무슨 얘긴가를 한참 동안 하더니 어른들을 차례대로 안아주고 뽀뽀까지 했다. 스마일보이라는 별명답게 얼굴엔 미소가 환했다. 어른들은 징그럽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좋아했다. 

  “너, 어른들에게 참 잘한다.”

  나의 말에 맥도날드 통유리 밖을 바라보던 준영이가 고개를 돌렸다. 마시던 콜라가 목에 턱 걸리는 것 같았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준영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재롱떠는 내가 우스웠지?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가 없어.”

  “흐흐, 솔직히 말하면 그렇긴 했어. 하지만 나를 반성했는걸. 나는 엄마와 안아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 어색하고 이상해서 피하게 되더라고.”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외삼촌이 암으로 돌아가셨어. 그 뒤부터였어. 나라도 웃기지 않으면 집이 가라앉을 거 같았거든.”

  “너, 참 착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말했다. 

  “나도 힘들어. 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모두 나만 바라고 사는 거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가게가 잘 되잖아. 우리 집은 마트 했었는데 쫄딱 망했다.”

  “그렇지 않아. 해마다 가게 세 올라가지, 재료비는 또 얼마나 뛰는지…… 뼈 빠지게 일해도 살기 어려워. 바동거려봤자 언제나 저 위쪽엔 쉽고 편하게 돈 버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어. 우리 가게가 속해있는 건물주 같은 사람 말이야. 가만히 있어도 월세가 엄청나게 들어오니 날마다 골프 치고 여행 다니고……” 

  “다른 세상 사람인 거지, 뭐. 우리 아버지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데, 뭔가 억울하고 분해. 아무리 밀어도 꿈쩍 않은 바위 앞에 선 기분이야. 왜 이럴까?”

  “부모 삶을 그대로 받게 되는 이 구조가 더러운 거지. 나 혼자 웃고 짓까불어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할머니와 어머니가 위안을 받잖아. ……그런데 준영아, 이젠 네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해. 네가 괴로우면 할머니나 어머니도 마음 편치 않을 거잖아.”

  “갈아타라고? 쉽지 않아. 그래선 안 될 것도 같고.”

  “음, 그럼 할 수 없다. 그렇게 살아……”

  답이 없는 문제는 그냥 넘기는 게 지혜로움 아닐까? 나는 준영에게 너스레를 떨다가 흠칫 놀랐다. 작은누나의 대사를 그대로 내가 읊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큰누나는 요즘 따라 유난히 신경질적이고 예민했다. 우유병 삶는 거나 장난감 정리는 나도 돕는 일인데 큰누나는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어머니와 작은누나가 손이 모자라 잠시 아기를 맡기기라도 할 참이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럴 때면 예전의 큰누나가 한정 없이 그리웠다. 한 달 뒤면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다니 그동안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동안 큰누나도 준영이처럼 괴로웠을까? 어머니의 18번 넋두리처럼, 없는 집 장녀로 고생만 하다가 이제는 감정을 드러내기로 했던 걸까? 큰누나의 갈아타기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걸까? 준영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들이 가지를 쳤다. 

  “그건 그렇고 기사는 제대로 나오겠나? 우리 집 취재하자 할 때부터 불안하던데.”

  “걱정 마. 멋지게 뽑을 테니. 할머니 말씀이 하나하나 ‘생활의 달인’이더라. 제목도 바로 떠올랐어. 맛, 시간, 이야기가 쌓이는 쉼터, 얄개분식으로 오세요. 어때?” 

  “오호, 좋다. 내가 인재를 보는 눈이 있다니까.”

  “흐흐, 그러냐? 취재하고 글 쓰고…… 나도 재밌네.”

  “그러게, 천상 문과인데 왜 이과로 갔었대? 이제라도 갈아탔으니 다행이다, 다행.”(갈아타기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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