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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의 섬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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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 Oct 21. 2024

갈아타기2

  “뭐 해?”

  큰누나가 들어오며 말했다. 작은누나가 비닐봉지를 받았다.

  “튀김? 떡볶이도 있네. 얄개분식 거다. 맞지?”

  갑자기 만들어진 야식 시간, 모처럼 집에 있는 아버지까지 모여 앉았다. 맛있다, 얄개분식이 아직도 있더라, 고등학교 다닐 때 완전 단골, 창우도 가니? 가끔…… 먹으면서 한마디씩 보탰다. 역시 큰누나가 돌아오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먹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을 때 큰누나가 아버지 앞으로 흰 봉투를 내밀었다. 부모님이 뜨악한 시선을 나누고 있는 동안 작은누나가 봉투를 집었다. 

  “처, 천만 원?”

  작은누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나는 튀김이 목에 걸리는 줄 알았다. 부모님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모은 돈이에요. 미국에서 한글 가르치는 알바를 했거든요. 새 일 하시는 데 보태세요. 그리고 저, 다음 달에 서울로 가요.”

  “취직? 한 학기 남았잖아.”

  역시 작은누나 성질이 가장 급했다.

  “취직하면 출석 인정해줘. 지금은 인턴이지만 몇 달 있으면 월급도 오를 거야.”

  “어디? 뭐 하는 회산데?”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어머니가 말했다. 꽉 잠긴 목소리였다. 

  “응, 가나출판사라고, 그쪽 방면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야. 책도 만들고…… 번역도 하게 되겠지. 창우야, 일 년 뒤에 너도 와. 대학은 무조건 서울인 거 알지?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이야.”

  “언니는 그저 창우, 창우뿐이야. 언니는 지방대 나와도 잘 풀리기만 하네, 뭐.”

  “……나는 좀 경우가 다르고. ……저, 잘게요.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큰누나가 들어가고도 들뜬 기운은 남은 식구들 사이를 헤집었다.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장밋빛 미래를 그려냈다. 큰누나는 물론 새롭게 시작할 일도 모두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나 역시 인서울이 가능한가 싶어 가슴이 뛰었다. 슬쩍 살을 꼬집어볼 정도였다.

  실실 웃으며 화장실 문을 열다가 흠칫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큰누나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닫고 돌아섰다. 어? 그런데?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잘못 보았을 리 없다. 큰누나는 옷을 입은 채로 변기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울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는 두 눈은 충혈되었고 양 볼은 눈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뭐지? 왜 그랬지? 침대에 누워서도 큰누나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정체를 알지 못할 불안감에 내 가슴이 다시금 떨렸다.


  편집회의를 위해 토요일인데도 학교에 나갔다. 평일에 시간 맞추지 왜 그러냐 했더니 편집부의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오늘은 특집 주제를 정해야 했다. 나의 제안에 특집 담당인 정호가 반신반의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이 지역 이야기를 알아보는 거지. 마을 유래나 옛 모습도 좋고 일하시는 어른들도 취재하고……. 애향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라도 알자고.”

  “학교 앞 문방구 아줌마가 말하는 이십 년 전 모습 같은 거?”

  “○○중공업 산 증인, 우리 아버지?”

  “재개발 때문에 집 잃고 우는 아이는 어때? 그게 나야.”

  여기저기서 말이 쏟아졌다. 나는 마음이 뿌듯해졌다. 망설이다가 낸 의견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였다.

  “괜찮을 거 같지? 나머지 두 꼭지가 가벼운 편이니 무게 중심이 잡히겠어.”

  취재 대상까지 정해지자 준영이 회의를 마치자고 했다. 오후 특강을 위해 몇몇은 학원으로 달려가고 준영과 나는 뒤로 처졌다. 

  “지랄, 날씨가 왜 이리 좋은 거냐?”

  하늘을 올려다보며 준영이 말했다. 대낮 거리를 걸어보는 건 나도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랗게 흔들리는 가로수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보는 거리는 세밀하고 낯설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과학 중점에서 사회 중점 학급으로 옮긴 기분도 그랬다. 자료화면이나 관련 영화를 보여주는 근현대사 수업이 좋았고 발표 중심인 윤리 수업도 금세 빨려들었다. 게다가 교지편집부라는 동아리까지 가입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잘 갈아탄 것 같다. 가끔씩 생각나는 민준이 자리는 어느새 준영이가 메우고 있으니 친구도 갈아탄 셈인가? 민준이가 성택이로 갈아탄 것처럼? 습관처럼 민준이 번호를 열었다가 휴대폰을 집어넣는다. 

  “창우야. 뭐해?”

  뒤따르던 준영이 나와 발걸음을 맞추며 말한다. 

  “어? 어. 갑자기 생각나는……”

  “아, 그럼 걸면 되지, 꼭 뒤 마른 강아지 같다. 누구지? 여친?”

  “아, 아냐, 됐어. ……돌아갈까?”

  준영의 장점 중의 하나는 꼬치꼬치 묻거나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나는 적당한 선에서 대화가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기며 가게를 해찰하며 걸었다. 네일아트, 편의점, 은행, 음식점, 꽃집을 거쳐 안이 훤히 보이는 커피전문점을 지난다. 웬 사람이 저리도 많나 하고 지나치려다가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를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쳐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단발머리에 좁은 어깨, 검은색 바바리…… 간밤의 모습과는 달랐으나 큰누나가 틀림없다. 

  간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는데 뜻밖에 큰누나가 서 있었다. 커트 머리 여자와 함께였는데 두 사람은 잡았던 손을 풀었다. 헤어지는 인사말을 나누는 말투가 친근하니 오래 알아 온 친구인가 보았다. 

  나란히 길을 걷던 큰누나가 느닷없이 나와 팔짱을 끼더니 곱살스럽게 얘기했다. 이리저리 돌렸지만 결론은 공부 잘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튀김 먹던 밤에 보았던 큰누나의 눈물에 관해 묻지 못했다. 집 떠나는 슬픔이라고, 내 편의대로 내린 결론이 아닐까 봐 두렵기도 했다. 술 냄새가 옅게 퍼졌다. 우리 집을 살릴 사람은 나보다 큰누나야. 엉뚱하게 튀어나온 내 말에 큰누나는 흥흥거리며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되는대로 돈을 꺼내 내 호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액수가 컸다. 

  오늘 다시 보는 큰누나는 세련된 옷차림의 중년 여자를 상대하고 있다. 뭔가를 설명하는 중인지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며 이마를 맞대기도 한다. 상대방이 누군지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림이다. 큰누나가 고개를 돌리는가 싶은 순간에 나는 얼른 걸음을 옮긴다.

  “누군데?”

  “큰누나.”

  “아, 그런데 왜 피해?”

  “그냥.”

  “누나가 둘이나 되니 좋겠다. 나는 외동이라 외로워. 책임만 무겁고……”

  잠깐 준영이 얼굴이 그늘진다. 하수구 구멍 속이나 잎사귀의 이면 같아서일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에 박혔다. (갈아타기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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