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를 맞이한 건 전혀 엉뚱한 상황이었다. 취재한다고 야자를 빠졌으니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다.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자마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안방 앞이었다. 지난주처럼 또 싸우는가? 가만, 어머니가 우는 건가?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서 귀를 기울였다.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말을 좀 해 봐. 이 사진이 뭐야? 그 돈도 설마……”
작은누나의 음성이 앙칼졌다. 어머니의 울음도 잦아들고 있었다.
“엄마가 짐작하는 대로야. ……미안해.”
너무도 침착한 큰누나의 말에 어머니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가만가만히 몇 걸음을 옮겨 안을 살폈다. 큰누나는 침대 아래 앉아 있고, 작은누나는 화장대를 짚고 섰으며 어머니는 큰누나에게로 막 무너지는 찰나였다.
“언니, 미쳤어? 왜 그런 짓을?”
“미쳤냐고? 흐흐, 그래, 미치지 않을 수 없더라. 학점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 오라는 데 하나 없어. 그렇다고 우리 집 형편에 공무원시험 준비하겠나 임용고시 얘기를 꺼내겠나.”
“아무리 그래도……”
“뭐, 어때? 도둑질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자궁만 빌려줬을 뿐이라고. 어차피 이왕 버렸던……”
“정화야! 너……”
“엄마, 아무 말 말아줘. 난 나름대로 애썼다고. ……고등학교 때 당한 일, 잊으려 노력했어. 독하게 공부했단 말이야. 학점도 좋았고 장학금도 받았어. 하지만 그래봤자야.”
“직장이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
“창우는? 창우도 여기서 공부하게 할래? 지방대 나와 봤자 너나 내 꼴밖에 더 되겠어?”
온몸이 떨렸다. 인터넷에 떠돌던 얘기들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렸다. 알아듣지 못하면 좋으련만 나는 유학의 실체가 무엇인지, 뭉칫돈이 어디서 생긴 건지 단번에 알아버렸다. 놀이방과 갓난아기를 봐야 했던 큰누나의 심정까지도…… 서서히 눈앞이 흐려졌다.
“그래서 친구까지 끌어댄 거야?”
“말 함부로 하지 마. 서로 절실하게 원하는 일을 연결해 주었을 뿐이야.”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어? 정말 언니 맞아?”
“그만해, 그만하자. ……엄마, 난 괜찮아. 진짜 괜찮다고…… 아빠나 창우에게는 비밀로 하고 이대로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게 해 줘. 일 년 버틸 돈 있으니 공무원시험 준비할 거야. 학원과 고시원만 오갈 거라고. ……엄마, 내 고집 알잖아. 독하게 마음먹은 거야. 내 방식대로 살게……”
어머니의 울음에 작은누나의 울음이 포개졌다. 꼿꼿이 앉은 큰누나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서 있는 거실 바닥으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눈을 훔치며 뒷걸음질 쳤다. 화장실 앞을 지나 조용히 신발을 꿰신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소리 없이 현관 잠금장치를 열 수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몇 걸음 너머에 있을 식구들이 밉고 또 그만큼 보고 싶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포옹하던 준영이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 다녀, 왔습니다.”
소리가 작았나,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몸을 지탱한 두 다리가 떨렸다.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준영이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즐겁고 행복해서 스마일보이로 사는 게 아닐 테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땀나는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문득 좁은 현관 바닥에 정신없이 널린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릎을 살짝 굽혀 그것들을 짝지어 가지런히 놓았다. 나란히 선 구두와 운동화, 슬리퍼가 하나같이 작았다. 이 작은 신발을 신고 세상을 타박타박 걷는 핏줄들이 지금 저 안에 있다! 콧등이 시큰했다.
나는 상체를 쭉 편 다음 목청을 가다듬었다.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가 소리 나게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큰누나, 작은누나, 나 왔어.”(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