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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의 섬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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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 Oct 21. 2024

슬픈 밤, 새벽달 1

  새벽부터 머슴 칠복을 재촉해 마당으로 나갔다. 담벼락 아래엔 능소화가 꽃송이째 떨어졌고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키를 재고 있다. 나는 오동나무 아래 오목한 돌에 앉아 연당 연꽃과 연밥에 눈 맞춘 다음 봉숭아와 채송화 사이에서 땅따먹기하는 잡초를 뽑았다. 칠복이 만들어준 방석이 꽤 요긴했다. 두툼하고 둥그렇게 쌓아 올린 짚 뭉치에 불과했으나 오른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로 밀면 이동이 가능했다. 여름 햇살은 얼마나 빨리 닥치는지 땀이 나고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아침밥을 달게 먹고 칠복의 도움을 받아 목욕까지 마쳤다. 내 들뜸을 눈치챘는지 칠복이 병영 사는 친구분 오시느냐고 물었다. 몇 달 전 『어린이』에 실린 「새동모」를 읽은 독자라며 불쑥 집으로 찾아왔던 김인석 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때 얼굴만 확확 달면서 어찌나 쩔쩔맸는지, 칠복이 틈만 나면 우스갯소리로 삼곤 했다. 나는 석중과 주고받은 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길이 멀다, 차비도 없을 테니 편지로만 교류하자는 내 간곡한 글에 그는 방학도 했으니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기대가 하나라면 걱정은 열도 넘었다. 

  내 표정이 심상찮았는지 칠복이 얼른 나를 업었다. 날마다 살뜰히 청소하는데도 어둑하고 퀴퀴한 방에 몸을 뉘었다. 2월에 갑자기 죽어버린 동생이 생각났다. 계봉이 가 있는 세상이라면 나도 사내답게 걸을 수 있을까, 사람 구실 할 수 있을까…… 나는 슬금슬금 올라오는 자괴감과 불안을 제지할 생각도 없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먹으로 나무 대문을 톡톡 두드리는 정도였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내내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붙들고 있던 수틀을 내려놓고 방문 가까이 엉덩이를 밀었다. 반응이 없자 대문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아무도 안 계시냐는 말도 거듭되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아, 기어이 왔구나.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석중이 고스란히 쬐고 있을 8월의 햇볕이 내게도 쨋쨋하니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식구나 칠복을 부를 때마다 썼던 호각에 손이 가지는 않았다. 어렵게 마련한 기찻삯으로 멀디먼 경성에서 내려온 귀한 문우, 사무치도록 그리운 석중이 대문 밖에 있건만 나는 숨만 할딱였다. 차라리 그가 돌아가 버렸으면, 울산까지 갔는데 집을 못 찾았노라는 사연을 편지로 받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더 견디지 못하고 호각을 불려는 순간 누군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어머니와 석중이 툇마루로 올라섰다. 방에 있으니 들어가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는 반짇고리를 밀었다가 수틀을 당겼다가 혼자 부산을 떨었다.

  “서덕출 씨, 저 윤석중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정중하면서도 무거운 그의 말에 나는 버티지 못하고 들어오라고 했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몸과 보고 싶은 마음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말이 가느다랗게 나왔다.
   나는 여태 해온 일인 양 수틀과 바늘을 쥐고 있었다. 그가 경멸을 감추고 반갑거나 안타까워할 표정으로 꾸밀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는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내 손을 빼앗다시피 당겨 잡았다. 눈 맞추기 어려운 나와 달리 그는 내 앞에 바짝 쪼그려 앉았다. 이미 예상하였던 것일까, 그는 내 굽은 등과 비틀어진 다리에 놀라지 않았다. 
   “오실 때도 못 나가 뵙고, 또 가실 때에도 못 나가 뵈는 신세라……”

  눈시울이 뜨거워진 나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도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내 두 손을 자기 것인 양 계속 쓰다듬기만 했다. 

  어머니가 밥상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신월이, 입맛 없다더니 손님을 기다렸던 게로구나.”
   내게 농을 건넨 어머니가 석중에겐 굴비를 권했다. 석중은 수저질을 빠르게 하면서도 어머니의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으며 나는 그가 겨우 열여섯 살이라는 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는 거, 양정고보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선 어머니가 말했다. 타고난 건 아니었어. 대청마루에서 베개를 가지고 놀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왼쪽 다리를 다쳤어. 다리 염증이 척추까지 번져 저렇게 등이 굽어버렸다오. 유명하다는 일본인 양의를 붙였는데도 말이야. 남들 다 가는 학교도 못 가고……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제대로……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그 대목에서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었다. 내가 나설 때였다. 아니에요. 대신 어머니가 한글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수예와 뜨개질로 무료한 시간 보내도록 했고요. 아버지가 경성까지 다니시며 책과 잡지를 구해주신 은혜도 잘 알아요…… 그런 말로 어머니 마음을 녹여야 했지만, 나는 빈 벽만 물끄러미 보았다. 아직도 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였다. 신이나 운명에 해야 할 종주먹질이고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시시때때로 삐딱해졌다. 
   석중이 잠시의 침묵을 깼다. 밥값 요량이었는지 어머니에게 나를 대단한 시인으로 치켜세웠다. 1925년 4월호 『어린이』에 실린 「봄편지」를 두고 버들잎에 우표 붙여 강남으로 보내는 발상과 그 편지 본 제비가 다시 찾아온다는 표현이 놀라운 작품이라 했다. 벌써 2년 전, 내 나이 열아홉 살 때였다. 창간호부터 애독했던 잡지에 내 시가 뽑히면서 나는 병신 아닌 또 하나의 나, 시인 자아를 얻었다. 작년엔 윤극영 선생의 작곡으로 이어졌고 그 악보가 『어린이』에 실리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석중의 입담에 어머니는 내내 온 얼굴로 웃었다. 나는 과분한 선물을 갚듯 어머니에게 석중이 나보다 일 년 빠르게 『신소년』으로 등단하고 나와 같은 해에 『어린이』에 「오뚜기」로 당선되었다고 말했다. ‘기쁨사’ 동인을 만든 이가 이렇게 어린 줄 몰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눈부신 듯 석중을 쳐다보았다. 

  그때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여기 서덕출 씨 집 맞습니까?”

  대문 두드리는 소리도 처음부터 컸다. 언양 사는 신고송 씨일 겁니다. 의아해하는 내 시선에 답하며 석중이 얼른 일어났다. 석중이 앞서고 어머니가 뒤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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