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농부 세네월 Jan 10. 2024

산골마을의 건축학개론

낙동강 기슭의 산골마을 걷기: 현동 - 숫골- 수안골- 풍애리- 분천역

*"컬처라인" 2023.1 vol.30 (www.cultureline.kr)에 게재된 글.


강기슭의 ‘산골마을’이란 표현이 어폐가 있는 말로 들리지만 강이 산을 안고 굽이 굽이 흐르는 낙동강 상류에는 자연스러운 말이다. 외진 산속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강을 따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는 마을이 생겼으나 경작토지가 넓고 풍족하지 않으니 양반 가가 들어설 만한 입지가 되지 못한다. 자연스레 서민들 만이 모여 살게 된다. 

지난번 법전 – 조래마을 구간의 번듯한 한옥들과 정자들이 지도층 혹은 권세가의 자취를 보면서 일반 대중의 삶의 모습도 대비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번듯한 한옥 고가가 없어 (제가 사는 동네에도 없지만) 모두 서민들이 사는 마을인데 이 지역 전통 서민주택인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이 한 마을에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 있다. 봉화군에는 경북지정 문화재인 서민가옥이 네 곳이 있는데 설매리의 겹집과 까치구멍집, 분천리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이다. 그중 분천리의 두 집이 모두 황목 수안골에 있다. 
 
 

*다리를 나누어 쓰는 마을

출발점인 소천면 소재지인 현동리에서 난간이 없는 잠수교 형식의 다리 2개를 건너서 암돌마을- 연남동을 지나면 이끼 낀 돌담 안에 있는 멋진 성황당이 반기는 황목 수안골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강변의 사과밭 풍광이 아름다운 풍애리를 만나게 되고 낙동강을 세 개의 다리로 건너면 분천역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는 풍애리 들어가는 길의 낙동강이 넓고 깊어서 비가 오면 건널 수가 없어 산을 넘어 수안골로 해서 2개의 잠수교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0년도 이후에 풍애리의 3개의 다리가 제대로 만들어진데 반하여 수안골 가는 두 개의 다리는 아직 잠수교 형태로 큰 물이 나면 다리가 잠기게 되자 지금은 수안골 사람들이 풍애리 마을 다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리를 빌려주다 이제는 빌려 쓰는 형편이 되었습니다만 이제 각자도생의 길이 곧 열리게 됩니다. 암돌마를 가는 길의 다리 2곳을 새로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면소재지에서 암돌마를 가는 길에는 무인역인 현동역이 있습니다. 역 주변에 흔히 있는 가게는커녕 인가 하나 없이 역은 강 따라 나 있는 좁은 길을 향해 있고 역 뒤편으로 보부상들이 소천장을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 하여 이름 붙인 막지고개에 인가가 좀 있다. 예전에는 외씨버선길의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조치로 역을 지나 철도 횡단을 금지하여 막혀 있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최고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최고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니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라는 식의 접근이 효율적일까 라는 회의가 든다.  현동역은 “시가 있는 무인역”을 표방하여 대합실내에 많은 시집과 앉아 읽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이 닫혀 있다. 법으로 사고를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선출한 것은 선거를 한 사람들의 잘못, 곧 우리의 잘못이다.


현동역을 지나면 강을 두 번 건너 암돌마을에 진입하게 되는데 현재 잠수교 형태의 다리가 안전한 상시 통행을 보장하는 다리로 건설되고 있다. 
 

위의 두 다리가 완공되면 예전과는 반대로 풍애마을로 산을 넘어가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암돌마를 (암호동)이 나오는데 숫돌에 대비되는 암돌이 있는 모양이라고 추측했으나 돌이 많고 강변의 바위절벽에 유래되었다는 동네 분의 설명이다. 암돌마을에서 내를 따라서 산모퉁이를 돌면 비교적 넓은 경작지와 연남동 마을이 있고 길가에 남아있는 몇 그루 소나무가 멋진 입구를 만든다. 차가 신경 써야 교행 할 수 있는 길을 올라가면 예전에 있었던 황목분교 자리를 지나 (숫골)  황목 수안골에 이른다. 

이끼 낀 돌담과 오래된 전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와 느릅나무 등에 둘러싸인 잘 생긴 성황당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우람한 전나무가 숫서낭당임을 말해주며 돌담에 있는 다래나무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으로 서낭당목으로 다래나무가 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라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내 마음의 여행” Kemimiti님> 

네이버의 위키백과에 의하면 성황당과 서낭당은 지역에 따라 같은 의미로 혼용이 된다고 하는데 일부는 단순 돌무더기를 서낭당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황목마을에는 당집이 있고 그 안에 “성황신위”가 모셔져 있는 성황당이다. 잘 관리되고 있는 성황당에서 힘든 환경에서 안녕을 비는 산골 주민들의 애절함이 묻어 나는 듯해서 짠한 마음이었는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화려하고 거창한 교회들을 생각나서 잠시 헷갈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요즘의 구복이 예전의 구복보다는 차원이 다른 더 어려운 고차원의 소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도처의 외형과 개인의 바람은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성황당 근처에 이번 마을길의 유일한 한옥정자 한 채가 있다. 약 300년 이상 되었다는 반송을 배경으로 거의 유일한 십자형 정자인 침산정이다.

안내판도 없고 정자를 둘러싼 담장과 닫혀 있는 문으로 외부에서 둘러볼 수밖에 없는데 <봉화문화유산지킴이>를 자처하는 진성 방유수 님에 의하면 침산정은 1947년 김녕김 씨 암돌문중의 김진섭씨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봉화군에서는 비지정문화재로 분류하여 2015년 현재의 담장을 포함한 수리를 하였다고 하며 현재 이 건물의 소유주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정자를 세우는 것이 단순한 건물 하나 짓는 것 이상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라 단순이 돈이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던 법전 강 씨 문중 분의 말이 생각났다. 비지정문호재이긴 하나 서있는 위치도 황목 숲골을 내려보는 좋은 위치와 정자에 가까이 있는 반듯이 서있는 반송과 어울려 멋진 그림이 된다.


침산정을 다시 돌아 나와 조금 올라가면 수안골 (숲안골)이 시작되는데 1994년 <경상북도 문화재 지정보고서>에 의하면 숲골 및 수안골에 각각 20여 호가 있었다고 한다. 수안골에서 만난 할머니 말씀으로는 지금이 귀촌 귀농한 이들로 가구수는 늘어났다고 한다. 
 
 *도토마리집

마을 입구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도토마리집이 얌전하게 단장되어 있다. 도토마리는 도투마리의 사투리로 베틀의 한 부분으로 실을 감아놓은 H형 널빤지로 베를 짜면서 손으로 양쪽의 널빤지를 돌려가며 짠다고 한다. 김홍도의 길쌈그림에도 도토마리가 나와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집 평면이 부엌을 중심으로 좌측이 안방,  우측이 외양간과 사랑방의 대칭인 까닭에 도토마리집이라 불린다. 도토마리집은 안동 의인섬에 네 채가 있었으나 한채만 민속경관지구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댐으로 수장되었고 하회마을에 있던 한 채는 화재로 소실되고 황목에 있던 두채중 한 채가 철거되어 현대 제자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도토마리, 김홍도 길쌈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쪽으론 양쪽방이 마루로 연결된다고 하는데 이 집은 달랐거나 혹은 개보수시 변형 된 것으로 보인다.


두산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경북 안동지방 민가의 특이한 양식으로 외양간, 부엌, 안방, 윗방의 순서로 형성된 일자형의 보편적 소농가의 경우보다 간략한 구성을 보이는 초가집”으로 외양간 관리, 겨울철 보온관리에 효율적인 주거형태로 기술하고 있다. 정면 대문을 열면 봉당과 부엌이 있는 구조로 같은 겹집인 까치구멍집의 공간확장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각 방의 천장은 고미반자인데 이는 지붕의 서까래 아래 살림집 구들방 천장을 말하는 것으로 서까래와 천장사이의 삼각 공간을 더그매라 부르며 여기를 살림살이등의 수장 공간으로 사용했다. 

외양간과 사랑방천장 사이에 보이는 더그매

*견적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이루어지는 삶 & 아들3< 딸1

도토마리집을 구경하다 이 마을에 50년 사시고 계시다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어찌 사셨는지를 물으니 “계란 며루치 못 먹고살았다,”라고 하신다. 논이 없으니 작물은 콩, 옥수수, 보리, 감자등이 주곡이었고 바깥양반은 30년 전에 돌아가시고 시부모와 3남 1녀를 돌봤다. 자녀 넷을 다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는데 그중 둘은 영주 봉화에서 다녔다. 전기가 80년대 후반에 들어왔고 비료를 사려면 아침 먹고 8킬로를 걸어 현동 농협에 가서 당시 25kg 한 포대를 이고 집에 오면 저녁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따져 보면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 견적을 낼 수가 없는 형편이다. 애들 공부를 영주, 봉화에서 시키는 것은 유학이고 돈이 엄청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자리 잡고 잘 살고 들 있다고 한다. 다만 본인의 혹사결과 허리등이 아파서 일도 못 나간다고 하신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우리들을 그렇게 키우셨다. 조금 더 나가면 6.25 종전 70년간의 대한민국도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그 덕에 살만해진 우리 아이들 세대는 또 다른 의미로 자식교육에 올인한다. ‘소황제”를 만들려 하니 돈과 노력이 너무 들어 아예 결혼을 안 하거나 애를 낳지 않기로 하여 출산율 0.7의 신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은 하지 말자,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젊은 애들 버릇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글이 있다지 않은가? 이집트 이후 오늘날까지 살고 있지 않은가? 걱정과 기우는 일은 안 하는 혹은 못하는 나이 든 이들의 몫 일 뿐이다. 어찌 되었던 ‘지구는 돈다.’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덧 붙이신다. 
 - 잘못했어요, 딸 하나 더 낳을 걸 그랬어요.” 
 - 아니 아드님 3분에 따님도 계신데…
 - 딸이 너무 멀리 살아서 자주 못 봐요.
 - 아드님들은?
 - 그나마 망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전화, 다른 애들은 아주 가끔. 아들들은 소용없어요.
 
 딸이 없는 부모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아들들이여, 반성합시다.


*까치구멍집
 
도토마리집에서 조금 올라가면 까치구멍집에 닿는다. 도토마리집과는 달리 새로 단장을 하지 않아 옛집 냄새가 더 진하다. 특이한 것은 입구에 돌로 쌓은 화장실인데 얼핏 보기에는 도산서원에 있는 똬리 화장실 같이 생겼으나 그냥 입구를 제외하고 돌로 둥그렇게 쌓은 것으로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같은 방향에 출입구가 있어서 무언가 가림막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치구멍집

까치구멍집이란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봉당 등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앞뒤 양쪽으로 통하는 양통집의 속칭으로 주로 경북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태백산맥 일대에 특히 안동, 영양, 청송, 영덕, 울진, 봉화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일종의 겹집 모양으로 구(口) 자형의 집이 축약된 듯한 폐쇄형 가옥이다. 정방형의 넓이를 아홉 구역으로 나뉘어 정자형처럼 구획되어 각각의 기능을 하도록 된 것이 특징이다.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택을 평면구성으로 볼 때 외통집· 양통집· 곱은자집· 겹집으로 나눌 수 있다. 양통형 집은 안동지방뿐 아니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해안 산간지방에서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조가 한국집의 고대양식이라는 점에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까치구멍집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및 한국민속대백과 

광명대와 까치구멍


 마루와 부엌 부뚜막 사이에 구멍을 내어 만든 광명대, 관솔불을 지펴 조명과 불씨를  간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까치구멍집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및 한국민속대백과

판자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매서웠겠지만 방은 흙벽이고 고미반자의 낮은 천장으로 비교적 따뜻했을 것이다. 이 집은 보수 시에 부뚜막을 없애 버린 것으로 보인다. 지방문화재도 문화재인데 이런 식의 보수를 하고 개방하는 것은 참 용감한 일이다. 집안에 난방이나 취사를 할 수 없는 시설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까치구멍은 집안 곳곳에 틈이 있어 연기가 나가겠지만  지붕의 환기구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까치구멍집은 산곡 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집 짓는 재목의 취득이 용이하여 사용된 재목들이 튼실하고 후하다. 신리의 너와집도 겹집으로 구조는 비슷하나 다만 지붕재를 소나무를 잘라 만든 너와를 사용한다. 


*외양간과 부엌의 공존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의 공통점은 폐쇄적 구조로 한 지붕아래 외양간까지 같이 있다는 점인데 특히 외양간이 부엌과 마주하는 위치에 있어서 위생문제에 대한 염려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아이를 마치 무균실에서 키우듯 하는 (내가 보는 관점에서) 요즘 젊은 부모들은 기절할 노릇이겠다. 그러나 Farmacology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 시금치)란 신조어를 (Farming 농업+Phmarcology약리학+Ecology생태학) 제목으로 출간한 캘리포니아대 가정의학과 교수인  대프니 밀러 (Daphne Miller) 박사에 의하면 결과는 정말 다르다. 알프스 산의 목장에서도 겨울에는 건물 아래층을 외양간으로 사용한다. 책 중에 나오는 알프스 농촌지역과 도시지역 아이들의 천식 등에 관한 독일 Erica von Mutius 박사의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외양간에서 쇠똥을 치우는 엄마와 소가 핥을 수 있는 거리의 유모차에 잠자고 있는 아기 사진인데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천식에 걸릴 확률이 도시의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이는 주변 환경에 서식하는 균과 세균의 다양성에 기인한다고 한다, 식물과 땅의 미생물 관계나 인간의 장내 미생물의 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발전한 미생물에 대한 지식 덕분이다. 만약 추적조사가 가능하다면 까치구멍집에서 자란 이들이 도시의 아이들보다 더 건강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까치구멍집을 나와 산길을 따라 오르면 황목길이 풍애길로 바뀌게 된다. 

왼쪽사진의 멀리 보이는 길이 수안골 들어오는 길, 오른쪽은 풍애길

풍애리로 가는 길은 전부 포장이 되어 있고 가끔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묵밭을 지난다. 조금 내려가면 급경사에 자리한 고추밭과 귀농인의 농막이 가끔 눈에 띈다. 급경사가 끝나면 사과밭들이 시작되는데 이 동네의 사과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병해가 없어 깨끗해 보인다. 

사과밭 시작점에 있는 폐가는 외양간, 부엌, 안방 그리고 윗방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소농가 가옥으로 부엌 앞에 깨진 ‘경월’ 소주병이 흘러간 세월의 양을 가늠케 한다. 1993년 경월소주가 두산에 인수되어 그린소주가 출시되었다 하니 깨진 소주병은 30여 년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산길을 내려와 강이 보이는 구간에 도달하면 보이는 색색 바람개비는 낙동강 세평하늘길 표식이다. 바람개비로 아래 보이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하댐으로 내려가는 구간으로 2년 전 걸을 적이 있다. 얼마 전에 현동 – 암돌- 도하 -풍애- 황목-암돌로 역주행하는 길을 걸으려 도하까지 갔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과 싸우며 가야 해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걷기 열풍 이후 지자체들이 도보코스를 많이 만들었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저 아래 예전에 사용하던 잠수교가 보인다. 저 다리를 사용할 때 큰 비가 오면 황목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황목의 잠수교가 잠기면 풍애로 와서 이 다리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풍애에서 분천역까지 나가는 길은 넓고 깊은 강변길의 과수원길과 전나무 숲으로 걷기에 아주 좋은 코스다. 


 

강까지 내려와 있는 풍애마을 사과밭과 마지막 세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보이는 분천 산타마을

현동역으로 들어가는 현동대교에서 분천역 입구까지는 대략 13km이고 여기서 현동대교까지는 약 5km가 더 걸린다. 현동대교 가는 길에 보이는 낙동강 풍경. 분천역 입구에서 외씨버선길과 동행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데 전유진의 “꽃길”이란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꽃길 후반가사

(노래: 전유진)
 (생략)

다시 돌아가라 하면 싫어요 난 못 가요

비단옷 꽃길이라도 이제 다시 사랑 안 해요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꽃길은 또 무슨 꽃길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사랑은 또 무슨 사랑

꽃길은 또 무슨 꽃길


아까 만난 할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내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살아보라 하면 싫어요 난 못해요

비단옷 꽃길이라도 이제 다시 안 살아요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꽃길은 또 무슨 꽃길”



다시 살아보라 하면 어찌할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만 오늘 걸은 길은 지난번 그만둔 역주행 코스를 이번 겨울에 다시 걸어 볼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