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신데렐라를 찾습니다.
언제나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던 5년 차를 지나 입사 6년 차 되던 해, 패션사업부 아동브랜드 기획 실장으로 일하다 언더웨어 사업부의 신규 런칭 프로젝트 TFT로 이동하게 되었다.
여자라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나름 브랜딩이 되어 있는 란제리 브랜드의 홈쇼핑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이었고, 홈쇼핑이라는 새로운 유통망을 기반으로 아직 회사에서 발 내딛지 않았던 이커머스 영역의 세일즈까지 설계하는 일이었다. 홈쇼핑 채널은 특성상 적은 가지 수의 상품을 패키지로 묶어서 큰 물량으로 판매하는 소품종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기에, 잘되면 대박, 망하면 리크스가 큰 유통망이다. 무조건 팔릴 만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게다가 팀원이 단 두 명뿐인 프로젝트팀으로, 새로운 유통망을 기반으로 브랜드 런칭 전반의 과업을 진행해야 하기에 상품기획은 기본, 수익설계, 생산관리, 마케팅, 영업, 기타(상사 설득하기, 설득하는 자료 만들기, 상사의 상사를 설득하는 자료 만들기, 상사의 상사를 설득하는 미팅하기) 등등 모두를 아우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신사업 투자에 까다롭기 그지없는 회사를 설득해 큰 발주액을 사용하는만큼 실패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온통 속옷 생각뿐이었다.
엄빠주의, 후방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업무시간에 살 색이 반 이상을 가득 채우는 스크린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업무 시간에 국내는 물론, 해외의 모든 란제리 브랜드들을 다 찾아보고, 그것도 모자라 속옷 전문 쇼핑몰을 샅샅이 훑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브라를 샀더니 가슴이 왔어요. 절벽에서 계곡으로.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마케팅 문장들이지만 불과 몇 년 전 그 당시의 킬링 멘트들이란 그런 기조였다.
각설하고, 그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 하나.
“신데렐라를 찾습니다.”
홈쇼핑 판매 이후 남은 재고 소진에 대비해 온라인 판매 계획을 스터디 하며 발견한 이벤트인데, 사이즈가 많은 속옷 특성상 아소트가 깨지고 남은 재고들을 사이즈 위주로 노출해 마치 하나뿐인 주인공을 찾는 것 같이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브랜드에서 상품을 기획할 때 스타일별 수량을 정하고 그 수량을 다시 사이즈별로 정하는데 여기서 사이즈별 수량을 보통 아소트라고 하며, 판매가 진행되며 사이즈별 재고 편차가 심해지는 것을 아소트가 깨진다, 라고 표현한다.)
보통 사이즈가 깨져서 남은 재고들은 가격 할인을 통해 가격 우위로 판매하는데, 거기에 신데렐라를 찾는다는 문구 하나로 마치 주인공을 찾는 것 같은 프레임을 더해 주니 재고도 이런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구나 싶었다.
어릴 적 동화 속 해피엔딩을 맞는 주인공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로망을 사소하게나마 충족시켜주는 기분이랄까. 짝이 안 맞는 제품들은 그렇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주인을 찾아 떠나갔다.
그리고 오늘,
아동복, 언더웨어, 여성복을 거쳐 9년 차에 직장을 관둔 나는 여전히 신데렐라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