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는 다르게 어릴 때의 나는 아주 무던했다고 한다.
그 무던한 정도란 자다 깨도 엄마를 찾지 않고, 먹을 것만 있으면 알아서 벙싯거리며 누구와도
시간을 잘 보내며,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얼굴을 꼬집어서 상처가 나도 울거나 싸우지 않으며,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내내 잘 놀다가 금세 정이 들어 어르신이 내릴 때 같이 따라 내리겠다고 하는 그런 정도였달까.
그런 아이의 성향은 옷차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4세 이상부터 시작되는 여아들의 공주기 (핑크색, 반짝이, 샤랄라한 모든 것들에 애착을 갖는 시기로 코디 혹은 TPO와 상관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창작하는 때이다. )도 없이 지나갔고, 타인의 눈을 가장 의식할 초, 중등의 청소년기도 주면 주는 대로 입는 유순한 아이로 자라났다.
그것은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유치원생부터 남보다 한 뼘 정도 키가 더 크고, 초등학교 내내 운동장에서 가장 키가 삐죽한 아이였던 남다른 성장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비엔나소시지처럼 칸칸이 포동했던 팔다리를 가졌던 신생아는 그 살들이 다 키로 변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무려 일 년에 23cm가 자라는 바람에 성장통을 늘 달고 살았다. 그 이후로 매년 꼬박 7~8cm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 6학년 때는 170cm에 육박하게 되었고, 다행히 그 뒤로 더 많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동복보다 성인복을 입게 되었고, 그 당시 한창 붐이었던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아는 로엠걸즈, 언더우드 등 국내 아동복 브랜드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선천적인 영향으로 인한 선택지의 부재로 옷에 관한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동복에 입문과 동시에 졸업했던 나는, 이모들의 옷을 주로 물려 입었다. 막내 이모는 나와 띠띠동갑 차이로 그 당시 강남에서 헤어샵을 운영하는 멋쟁이 중의 멋쟁이였다. 이모는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색깔별로 사서 입고, 자주 사고, 오래 입으며, 관리도 아주 잘하는데, 그렇게 관리한 옷들은 계절별로 옷장 정리할 때마다 한두 상자씩 내 몫으로 보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성인복을 입기 시작했고, 그 옷이 내 나이에도 어색함이 꽤 없을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에는 그 무던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라도 발현된 듯 옷을 좋아하게 되었다. 옷을 좋아하지만, 예산이 빠듯한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주말마다 용돈을 쪼개 부평지하상가, 부천지하상가 등을 누비며 오천 원, 만 원짜리 옷을 열심히 사 나르는 것이었지만. 때로는 금요일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새벽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 구경을 마음껏 하는 열심도 있었다.
뒤늦게 패션에 뜬 눈은 취업 시기까지 이어져 사회생활의 처음을 패션 회사에서 시작했을 만큼 옷은 나에게 큰 존재가 되었다.
예전만큼 발품을 팔지 않아도 SPA브랜드에서는 매일 신상이 쏟아지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가득한 패션플랫폼들이 있으며, 예쁘고, 화려하고, 필요하거나 혹은 불필요할 때에도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하기도 쉽다. 그래서 때로는 택도 떼지 않은 옷이 옷장에서 발견될 정도로 옷을 많이 사들이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새 옷은 그만큼 익숙한 것이 되었지만, 나의 패션 세계를 이루는 그 반대편 축에는 이모에게 어린 시절부터 물려 입었던 옷, 빈티지가 있다.
까칠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정해서 내가 사랑하는 우리 막내 이모의 옷에 대한 애정이 나에게 체화되어 보이지 않는 유산처럼 남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독 빈티지를 좋아하는데, 그중 최고는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엄마의 스커트와 이모의 롱코트이다. .
엄마는 이모와 달리 패션에 큰 관심이 없고, 불필요한 옷들은 바로 버리는 타입이다. 그런 엄마의 옷장에서 딱 한 번 엄마가 처녀시절 입던 옷을 발견했는데, 실루엣이 근사한 스커트였다. 브라운 H라인 스커트는 내가 입으면 무릎을 살짝 덮는 기장으로 하이웨이스트에 허리 뒷부분 가운데에 버클이 있어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고, 살짝 나온 여분의 원단이 전체적인 리본 형태로 마무리된다. 울 소재이지만 가볍게 직조된 두께 감이라 한여름을 제외하고 가을부터 봄까지 입을 수 있어 착용 가능 시기도 길다. 적절한 디테일과 핏, 그리고 어떤 상의와 매칭해도 잘 어울려서 꽤 자주 입는 옷인데 무엇보다 그 스커트를 입을 때마다 젊은 시절 엄마의 한 조각과 함께하는 것 같다. 허리에 딱 맞는 스커트를 입고 또각또각 걸었을 27세의 고 여사를 상상해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허리를 더 곧추세우고, 그 날 하루는 더 힘을 낼 수 있다.
이모는 아주 날씬하다. 아마 사는 평생 날씬했을 것이다. 그냥 날씬한 것도 아니고, 걸어가면 누구나 뒤돌아볼 법한 옷 태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아직 성장기인 어릴 때는 이모의 옷을 자주 받아 입었지만, 이모보다 키도 커지고 체격도 커진 이후로 이모의 옷을 물려 입기가 어려웠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간혹 이모가 아끼는 아우터를 물려받곤 했다. 이모는 체형과 비교하면 어깨 골격이 조금 있는 편이고, 나는 어깨가 조금 가는 편이라 가능한 일인데, 몇십 년이 훌쩍 지난 옷들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입는 맛이 훌륭하다. 그중에 아끼는 코트가 있는데 겉면은 카베르네 소비뇽 의 와인빛이고 안쪽 면은 멜란지 그레이 컬러의 이중지 소재로 되어 있다. 넉넉한 오버핏이라 안에 여러 겹 레이어링해서 입을 수 있어 한겨울까지 입을 수 있고, 큼지막한 주머니가 양쪽으로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172cm인 내가 입었을 때 발목 정도까지 오는 롱 기장으로 롱코트가 유행하기 전부터 자주 입고 다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코트를 입으면 나 홀로 집에 나오는 비둘기 아줌마 같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불과 몇 년 사이 그 코트는 꽤 멋진 아이템이 되었다. 직업 특성상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입는 것만은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가 마음 가는 대로, 재미있게 입을 수 있는 자유로움은 이모의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멋진 아이템들을 누릴 수 있는 조카로 태어났기에 가능한 호사가 아닌가 싶다.
요새 유튜브를 보면 몇십 년 된 엄마의 옷이나 가방 등을 물려받아서 보여주는 컨텐츠들이 보인다. 트렌드는 언제나 돌고 돌아 지금의 유행이 그 당시의 것을 닮았기도 하고, 때로는 유행을 타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착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아이템도 있어서 가능한 컨텐츠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그 내면에는 그 시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꼈던 물건, 거기에 담긴 시간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 지금의 내가 그것을 공유하며 생기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무던했던 아이가 꽤 까칠한 어른이 될 만큼 시간이 흘러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옷을 물려 입을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종종 이모의 옷을 물려받고 싶다. 그것은 앞으로도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을 거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