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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Aug 01. 2021

머리_망한_썰_푼다. txt

친구야 도와줘

 나의 머리는 반곱슬. 앞머리는 일정 길이 이상 기르면 끝이 비죽 솟아버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온 머리가 습도를 환영하며 한껏 부푼다. 때문에 깔끔한 머리가 주는 깔끔한 이미지는 깔끔하게 포기한 편이다. 머리 스타일이 사람 인상에 정말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내가 날 떠올리면 그렇다. 근데 글을 쓰며 생각해 보면 사실 미용실에 안 가는 편도 아닌데. 이상하다. 아마도 내 머리에 할 수 있는 최선은 뿌리 매직 + 볼륨 매직 + 세팅(열 파마, S컬 정도, 굵게) 정도인데 미용실에 갈 때마다 미용실에서 추천해주는 다른 머리를 그대로 해서인 것 같다(머리를 볶고 염색도 종종 하는 편인데 어쩐지 글을 쓰면서 머릿결이 안 좋은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는 기분이다). 아무튼 홍대에서도 나랑 맞는 미용실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은 머리 스타일도 색도 어딘가 이상한 채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그날은 홍대의 여러 미용실을 찾아 휴대전화를 뒤지다가 한 가게를 발견한 날이었다. 선생님들께서 종종 언급하던 가게여서 호기심에 나도 찾아가 봤다.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을 듯한 젊은 분이 사장님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멋지다 생각했다. 평소같이 열 파마를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쩐지 머리를 다 하고 거울을 봤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미용실에서 '머리 너무 예뻐요~' 하는 소리를 들으면 진짜 머리가 예쁜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저분은 이 머리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는구나, 생각하고 참고 집에 오는 사람 1인). 집에 오니 왜 머리가 해그리드처럼 부풀어 있었다. 내가 반곱슬이라고 했지 이런 곱슬머리를 가진 기억은 없는데. 확실하게 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놀라서 난리가 났다. 클레임이라는 걸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성격이라 고민을 거듭하다 전화를 걸었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거울을 볼수록 내 상황이 실감 나서 눈물이 났다. 옆머리가 타서 바삭바삭하고 뒤쪽 머리는 해그리드인 20대의 나. 사진을 보내고 다시 한번 미용실에 찾아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막상 가려니 막막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안 가고 환불도 안 받고 싶긴 한데 이 머리를 복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무언가 하든지 보상을 받든지 하긴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내 상황을 지켜보던 진이가 흔쾌히 미용실에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베르에블랑에서 맛있게 파스타를 먹고 가게로 향했다('사라진 나의 맛집을 추모하며' 참조). 여기서 친구의 관찰을 좀 빌려보자면, 가게에서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달려와서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고, 나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주눅 들어 있었다고 한다. 친구 덕분에 원만하게 해결을 하여 나는 머리를 다시 하고 친구는 옆에 앉아있다가 동네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20대 중반이었던 그때까지도 나는 아직 살 떨려서 문의 전화도 잘하지 못했던 대학 시절의 연장 선상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똑 부러진 친구들 덕분에 나도 많이 성장하고 또 많이 배웠다. 비록 탄 옆머리는 1.5년간 내 인상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가게에서도 미안해하며 머리를 다시 해 주었고 친구도 옆에서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주었던 기억 덕분에 일종의 중화된 추억이 되었다. 그나저나 미용실도 한 군데를 정해서 쭉 다니면 참 좋은데, 그 한 미용실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요즘은 동네 미용실에 잘 다니고 있긴 한데, 대부분 만족스럽지만 사실 요즘도 머리를 하고 와서 머리가 나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할 때가 있다(하지만 절대 말 못 해). 거울을 한 번 볼까…. 요즘은 앞쪽에 왜 이렇게 흰머리들이 느는지. 염색한 머리에서 뿌리가 올라오다 못해 줄기까지 올라왔다. 줄기 염색 겸 새치염색 겸 염색하러 또 가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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