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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루 Jul 16. 2021

올해도 한강에서 보자

망원 한강공원


고마운 카카오톡 덕분에 희샘의 생일인 걸 알았다. 셋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수줍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작년 이맘때쯤 한강에서 조심스럽게 만났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바이러스는 여전하다는 점이 슬프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올해도 한강에서 만나기로 했다.

요즘엔 피크닉 용품도 빌릴 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텐트까지 한 번에 빌리고, 제주도에서 왔다는 맥줏집에 들러 맥주도 몇 캔 샀다. 텐트 안이 더웠다. 캠핑을 많이 다녔다는 진이 언니가 모든 문과 창문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훨씬 나았다.

작년엔 꿀맛 치킨 시켜야 하는 걸 간장치킨을 주문했는데, 올해는 찜닭이 먹고 싶어서 주문했다가 주문 취소당하고 이름 모를 찜닭집에서 찜닭을 주문해 먹었다. 이날을 위해 사 온 모기 잡는 기계는 벌레 한 마리를 잡더니 꺼졌다.

연애 얘기를 하고, 점점 아파지는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무서운 집값 이야기를 했다. 처음 만날 즈음에 많이 아팠던 진이 언니는 이제 씩씩하게 회복했고 남편분과의 사랑도 더 무르익어 있었다. 언니가 좋아서 결혼했고, 너무 언니 스타일이고, 대화가 잘 통해서 너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언니의 사랑이 항상 부러웠다. 나도 언니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언니가 형부를 생각하듯 그 사람도 날 그렇게 생각해 줄 수 있을까, 사랑의 기준을 언니에게서 찾기도 했다. 베이킹을 배우고, 옷 만들기를 배우고, 플루트를 배우던 부지런한 언니는 요즘도 플루트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멋지다고, 나의 인생 롤모델이라고 할 때마다 언니는 쑥스러워하며 겸손의 끝을 향한다. 시간이 지나도 배려심 넘치고 자신을 낮추는 언니의 깊이가 신기하고도 부럽다.

더 어렸을 때는 같이 놀고 싶은데 내가 언니들의 말에 어떻게 잘 반응해야 하는지 통 모르겠던데, 이제는 나이가 좀 들었는지 능청이 생겼는지, 스스로는 더 자연스럽고 편해졌다고 느꼈다. 이제는 맘 편하게 언니라고 두 언니를 부르기로 했다. 언니들은 나보고 놀아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나는 사실 날 끼워 준 언니들한테 고마웠다. 곧 다가올 여름은 너무 뜨거워서 우리는 열기가 한풀 식을 9월에 다시 한강에서 보기로 했다. 사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한강의 ‘ㅎ’도 안 본 것 같긴 한데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짧은 만남을 마치고 장비를 반납하는 길, 우리는 처음이었지만 영상을 보고 착착 능숙하게 자동 텐트를 접어(우리 천재인가? 너스레는 필수) 왜건에 실었다. 안 먹은 맥주 하나가 터져서 비닐과 도넛을 적셨다. 각자 택시를 타고 흩어졌고 내가 탄 택시 아저씨는 바로 옆 강변북로 진입로를 놔두고 마포구청 방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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