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돌솥밥과 생선구이
비가 꼭 계단처럼 내렸다. 일직선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빗방울이 옆으로 밀려나 떨어졌다.
“혼자 여행 오셨어요?”
평소 잘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말을 섞으려니 불편했다. 게다가 중년의 남성분이라 더욱더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몇 마디 섞어보니 무척 친절하고 점잖은 분이었다.
“네. 한 달 자택 근무 받아서 쉴 겸 제주도에 왔어요. 혼자 자전거 종주하신다고 들었어요.”
“아하하. 네. 건강이 좋지 않아서 관리 차 시작한 라이딩인데, 시간이 돼서 이번에 제주도에 왔어요. 그런데 태풍이 와서...”
“아쉬우시겠어요. 언제 서울 가세요?”
“저는 내일 가요. 내일은 날이 좋아진다니까. 자전거 타고 가서 반납하고 비행기 탈 예정이에요.”
“그럼 오늘이 마지막 밤이시겠네요. 저도 자전거 엄청 좋아해서 가끔 한강변을 따라 라이딩하곤 해요.”
이런저런 자전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양념한 고추장에 버무린 무말랭이와 살짝 데쳐 콩고물에 버무린 나물, 잘 익은 김치와, 간장에 조린 달달한 콩자반,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두른 짠지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대망의 전복돌솥밥이 내 앞에 놓였고, 중년 남성분이 주문한 생선구이 정식은 공깃밥에 노릇노릇 구워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생선구이가 놓였다.
“이것도 같이 드세요. 맛있게 생겼네요.”
남성분은 생선 가시를 발라 살만 있는 생선구이 일부를 내게 건넸다. 오늘 처음 본 내게 가시를 일일이 발라 주는 모습만 봐도 이미 습관이 된 따뜻함이었다. 웃을 때 잡히는 주름이 자연스러웠고, 아무래 내가 자신보다 어려도 조심하려는 모습이 영력 했다. 따뜻한 아버지상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직업이...?”
“저는 일반 직장인이에요. 사무직. 한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냈는데, 애들 다 키우고 나니까 몸이 안 좋아지더니 병이 생겨서 일을 그만뒀어요. 그래서 쉬면서 자전거 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더 좋아지겠죠? 하하.”
“따뜻한 아버지이실 것 같아요.”
“우리 집 딸내미가 딱 아가씨 정도 나이라 꼭 딸내미 보는 것 같아서. 우리 딸도 얼마 전에 혼자 제주도 여행하고 왔었거든요. 게스트 하우스를 다니면서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네요.”
돌솥 뚜껑을 열고 전복과 밥을 빈 그릇에 덜었다. 녹차를 돌솥에 붓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생선 한 점과 반찬을 집어 먹었다. 한 숟가락 뜬 밥에 전복이 딸려있으면 수지맞은 기분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따뜻한 밥과 짭조름한 반찬을 한껏 즐겼다. 혼자였다면 양손으로 뺨을 감싸며 '너무 맛있다'를 연발했을 테지만, 혼자가 아니니 얌전하게 식사를 즐겼다. 쫄깃한 전목이 씹히면 반찬 대신 양념간장을 숟가락에 톡 묻혀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밥을 한 숟갈 욱여넣고 나물과 무말랭이를.
“혹시 무슨 일 하세요?”
갑자기 치고 들어온 질문에 냉큼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잡지사에서 일해요.”
“디자이너분?”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잡지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열에 여덟은 디자이너를 언급한다. 이젠 익숙하다. 디자이너와 에디터 사이에는 오묘하게 풍기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걸까?
“아니요. 에디터로 일하고 있어요. 기자요.”
“그 일이 참 힘들다고 하던데, 많이 힘들죠?”
“네. 일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처럼 안 될 때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이번에 자택 근무를 받은 것도 퇴사하려다가 대표님이 한 달만 쉬고 오라고 제안해주신 덕분이에요.”
“좋은 분이네요. 그러기 힘든데.”
“하하하.”
가식적인 웃음과 정색 후에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밥맛이 사라져 조금 밥이 남은 그릇을 옆으로 밀고 돌솥을 앞으로 끌어왔다. 뚜껑을 열고 돌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있는 힘껏 박박 긁었다. 이분이 무슨 죄라고. 그리고 대표가 좋은 사람인 건 맞다. 나는 대표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정도 많고, 감수성도 풍부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진심으로 답하는 사람이니까. 또 언제나 사무적으로 대할 필요 없는 것도 편했다. 다만 최근 대표의 히스테리나 막말이 심해져서 일도 힘든데 감정노동까지 감당하려니 버겁다. 물론 대표가 힘든 건 안다. 돈도 못 버는 잡지를 만들면서 직원들 월급을 감당해야 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부담일지 상상도 하기 싫다. 만약 나였다면 이미 몇 년 전에 사업을 접었다. 그래도 대표는 자기 식구들 챙기려고 열심히라는 생각으로 몇몇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일 뿐이고 서른이 되기 전에 내 미래의 방향성을 정해야 했다.
대표가 꽤 힘들게 했지만 대표의 인성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극단적 상황에 놓여야 그 사람의 인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죽을 듯 힘든데 부처가 아니고서야 누가 인성을 챙긴다는 말인가. 범법만 아니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인성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몸거 마음도 아픈 것뿐이다. 오히려 여유가 넘칠 때 그 사람의 인성이 더 드러난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아쉬울 게 많으니까 말이다. 그저 대표도 그럴 뿐이다.
“그래도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내가 지금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미쳤다. 터진 말들이 수습하기도 전에 쏟아졌다.
“이 직업의 미래도 잘 모르겠어요. 잡지 산업은 복구가 힘들 정도로 영세하고 그래도 저는 글 쓰는 게 좋거든요. 뭔가 만들어내는 것도 좋고요. 제가 내년이면 스물아홉인데 서른이 되기 전에는 안정적인 회사에 이직해서 자리를 잡아야 하나 싶고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회사가 영세하고 대표님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뭐만 하면 달달 볶이는 것도 지겹고... 아, 잘 모르겠어요.”
“첫 회사죠? 아주 잠깐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지만, 생각이 깊은 분인 것 같아요.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세요. 내가 이런저런 얘길 하는 것보다는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아요. 상황을 잘 모르니까 조심스럽네요.”
서로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뿐인데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고. 분명 여행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잠깐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홀가분했다. 나는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꽤 뜨거웠던 돌솥이 식어 있었고 녹차는 미지근했고 누룽지는 살짝 뜨거웠다. 입김을 후후 불어 먹고 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