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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Jun 22. 2023

[바이블클래스] 감정에 휘둘리는
당신에게

나의 감정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이 사실이 화가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인데, 힘든 날 그 아버지 품에 안길 수가 없다. 하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 이국 땅으로 출장을 가서는 편지만 가끔 하는 아버지 같았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쓰여있는 태교 일기 같은 성경을 하나 남겨두시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 


어떤 날은 성경에 쓰인 말씀만으로 충분히 그분을 신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버지가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나 인자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키고, 내 등을 토닥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빠, 전 아빠가 보고 싶은데 왜 나는 아빠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요? 날 사랑하긴 하는 건가요?"


감정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날엔 금세 풀이 죽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지 않는 게 분명해. 하나님이 날 잊으셨구나. 하나님은 이제 내 삶에 어떤 역사도 하시지 않기로 결정하셨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히 가슴에 꽂히지 않는 날엔 사실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특히나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를 짓거나, 하나님께 회개한 문제들로 다시 씨름할 때면 비참함이 몰려왔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겠지. 가증스럽고 나약한 내 모습을 보고 도망가셨겠지?' 실제로 반복되는 죄 앞에 무너진 후엔 아주 오랜 기간 하나님을 느낄 수 없었다. 


나의 20대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감정적으로 안정적일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다가도 정서가 불안할 때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게 틀림없다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게 하나님은 텍사스 들판에서 한 가지를 알려주셨다. 

나의 널 뛰는 감정도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불안과 정서적 혼돈은 하나님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 감정에 휘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내 기분 하나로 하나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교만. 나는 하나님이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분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나님은 나의 감정에 상관없이 늘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절망과 상관없이 언제나 빛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불신앙과 상관없이 지금도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냥 하나님시다. 


나의 경우엔 신앙을 자라게 하지 못하는 내 안의 가시가 '감정'이었다. 

감정의 영역은 한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 고유한 영역이기에 하나님도 다루실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감정에 휘둘리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폭풍을 다스렸던 것처럼, 언제든지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이셨다.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는 걸 본다. 성인 ADHD나 정서 불안과 같은 감정의 질병을 가진 이들이 늘어난다. 나는 이 모든 문제가 그저 '기도 '만 하면 나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도' 없이는 온전한 치유도 없다. 그렇게 보자면 하나님의 치유는 절대적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나도 그랬다. 우울증을 앓을 때만 해도 하나님의 치유가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도 오래 받았고, 트라우마, 어린 시절, 질병으로서의 정신 문제 를 다루는 전공서 등 안 읽은 심리학 책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완전한 치유를 받고 보니 아주 많이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나의 감정보다 크신 주라는 사실을 뼈마디에 새기는 것보다 확실한 치유는 없다. 우리는 약하다. 그래서 나의 약함을 채울 강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인생은 '믿음'의 영역이다. 내가 우울증을 뿌리부터 치유받았던 때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이 믿어진 때였다. 


아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씀이 지금 내 안에 일어난 실재임이 믿어졌다. 이건 '경험'의 영역이기에 더 잘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나의 필력이 한탄스러운 순간이다. 


나의 감정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빚으실 수 있다는 믿.음.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감정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속는 셈 치고 하나님을 믿어보길 바란다. 

물론, '믿음'을 통한 치유라는 말이 환상 같고 낭만적이게 들릴지 모른다. 마음속에 이미 그건 글쓴이의 개인적 경험이지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하며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리에겐 '믿음'이 전부다. 


오늘 이런 기도를 해보면 어떨까. 


"나의 감정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주님 저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해 주세요. 저의 마음이 더는 불안과 혼돈에 흔들리지 않기 원합니다. 저를 깊은 우울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세요. 저를 깊은 절망의 늪에서 꺼내주세요. 저를 마르지 않는 눈물의 골짜기에서 탈출시켜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에게도 하나님의 절대적 치유가 일어나길 바라며, 블레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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