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윤 Dec 28. 2023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나의 관계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종종 생긴다. 상관없는 일들이 공통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그날 오후에 나른하게 거실 바닥에 누워 퍼져 있는데 문득 영화가 한편 보고 싶어졌다. 무슨 영화를 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선택했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영화였다. 그때에는 그저 우울한 영화라는 감흥과 마츠코의 슬픈 인생과 대비되는 화려한 색상의 연출과 음악이 신선하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그날,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어떤 충동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디바인 매트릭스>라는 책을 정독하고 있을 때였다. 이 책에서 관계가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글귀를 읽었다. 그 글귀를 계기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관계들은 나의 어떤 면들을 비추고 있을까? 하는.


또 며칠이 지나고 나는 어떤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다. 사실 겉으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끝을 내기를 종용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본 영화와 책의 글귀 덕에 이 관계를 정리하며, 이 관계는 나의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되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마등처럼 몇 년간의 관계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모든 관계에서 나는 어떤 상처를 받았다. 그런 마음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나는 선 밖에 서 있고 선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버림받는 기분,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그리고 연이어 몰아치는 자괴감, 죄책감, 단절감, 수치심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뱀이 똬리를 틀듯 틀고 앉아 언제든 고개를 쳐들고 달려들어 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 모든 혼란을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 극복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이 관계들을 다시 비추었고 나에게 <너의 기대가 만든 왜곡>이라는 한마디 말을 남겼다.


넘어지는 모든 관계에 나는 나의 어떤 모습이라도 이해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대를 위해 노력했었다. 진솔하게 한다고는 했지만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고 눈치를 봤다.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더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렇다고 여기지 못했었지만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주었던 친절과 상대가 나에게 돌려줬던 친절을 생각하고 나의 뒤틀린 부끄러운 자아의 일부분도 상대가 기꺼이 받아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또는 그게 당연한 관계라 여겨서, 또 한편으로는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는 관계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결국 모든 관계는 깨어졌다.

그리고 이제와 하나의 관계를 더 정리하며  내 안에 내가 몰랐던 마츠코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사랑, 신뢰, 이해, 보살핌, 따뜻함. 마츠코가 모든 관계에서 원했던 것은 그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고,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연인들에게서도 사랑과 관심, 이해를 원했다. 마츠코는 이를 위해 용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줬다. 하지만 언제나 버림받았고, 기대는 깨어지고 만다. 마츠코는 외친다. “왜? 도대체 왜?!” 그리고 내 안에서도 그런 마음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돌아가 <디바인 매트릭스> 책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때로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어떤 부분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오면 많은 것들을 알게 모르게 억눌러버린다. 살아남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동안 영혼의 어떤 부분은 감추어지고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은 내 안에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되면 상대가 가진, 내가 상실한 그 어떤 부분이 찬란히 빛나는 순간 그 사람에게 빠지는 것 같은 혼돈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누구나 자기 정체성의 큰 부분을 타협한다. 그럴 때마다 사회적으로는 용납되나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내면의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동기를 서둘러 끝내고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거나, 주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인종적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상처와 분노의 감정을 억누름으로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살아남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사례에 해당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신뢰와 자비심이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 저버리는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부모나 형제자매나 친구들에게 조롱당하기에 십상이니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것을 배운다. 가족이 학대하더라도, 저항하기보다는 ‘굴복’하고 잊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사회인이 되면, 전쟁 동안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특별한 상황이라고 정당화하며 용인한다. 사람은 누구나 분쟁, 질병, 압도적 감정에 직면하면 자기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야 이해하기 시작한다. (중략)

우리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기 위해 내어 준 우리 자신의 부분들이 있던 자리는, 아직도 텅 빈 채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특별한 빈자리를 채워줄 것을 항상 찾아 헤맨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곁에 머물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의 어떤 면인가가 나의 내적 공허를 채워주고, 내가 완전한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중략)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 부분을 찾으면, 우리는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그/그녀에게 끌린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믿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를 그들에게 그토록 매혹시킨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그저 잠자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그것들에 덧씌운 가면을 벗기고 그것들을 다시 우리의 삶으로 통합해 낼 수 있다.

<디바인 매트릭스, 느낌이 현실이 된다 중>


나는 이 사실들을 지난 몇 년간의 관계를 통해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매번 뼈 아팠지만 매 순간 내가 그와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했는가를 알게 해 준 경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랐던 그 무엇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을 신뢰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왜곡된 나의 애착과 기대가 만들어낸 치덕치덕한, 관계를 향한 끈끈한 마음이 저항 없이 톡 하고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진정한 자아로써 독립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상실을 겪을 때마다, 나는 상실의 그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만트라처럼 되뇌며 위로했다.


- 나의 사랑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 온전히 남아 찬란하게 빛난다. 나는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며,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 나의 신뢰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내 안에 온전히 남아 나는 나와 세상을 신뢰한다. 삶이 나의 편이 되어 줄 것을 믿고 나를 보호하고 있음을 깊이 신뢰한다.


- 나의 이해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해는 내 안에 온전히 남아 나 자신을 진정으로 보듬고 있다. 나는 독특한 한 개인이자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나의 이해는 그 모든 것을 충분히 감싸 안고 있다.


- 삶이 변하여도, 어떤 상실을 겪더라도, 내 안에 이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함을 느낀다.


나는 그 무엇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의 세계는 온 우주와 같이 넓고 독창적이며 창조적이고, 따뜻하고 온화하다. 그리고 나의 가슴을 느낀다. 그 안에 정말로 빛나고 있는 나의 사랑을 발견한다. 그래,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의 내면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혼란스럽고 비바람이 치는 하늘처럼 어지럽지만 너만은 그대로 고요히 남아 나를 지킨다.


이소라 - TRACK3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속상해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 내지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너무 아픈 날 혼자일 때면
눈물 없이 그냥 넘기기가 힘들죠
모르는 그 누구라도
꼭 손 잡아 준다면
외로움은 분홍색깔 물들겠죠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2023년 12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러닝을 하면서 하는 생각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