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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Jan 04. 2024

작가,라는 동사

끝까지 하고 또 하는 것

나는 작가다. 조용히 한번 읊조려본다. 작가, 작가.. 작가.. 작가라는 말을 혀로 굴려 보며 혼자서 되뇌어본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로 아직은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쁨이 있다. 내가 정말 작가여도 괜찮은 것일까? 어색하지만 울컥할 것 같은 울렁임은 무엇일까.


최근에 무라카미하루키와 류시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쓴다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엿보는 일들이 많았다.


어제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책을 읽으며 정체성을 이루든 단어의 품사는 동사라는 구절을 읽었다. 시를 쓰고 있을 때 우리는 시인이지만 책을 읽을 때는 독자이며, 여행을 할 때는 여행가이고, 버스를 타면 승객이다. 그러므로 자아상을 이루는 것은 변화하고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우리를 이루는 정체성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이런 구절도 있었다.


"'작가 writer는 글을 쓰는 사람이며, 기다리는 사람은 웨이터 waiter이다.'라는 말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상적인 집필 환경을 기다리는 작가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친다는 말도."


만약 나를 이루는 이름이 사회적 지위도 아니고,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전문성도 아니고, 그저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의 의미라면, 나는 작가다. 그리고 이 말을 읊조리는 순간 묘한 위로와 따뜻함이 심장을 감싼다.


왜냐하면 사실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글을 쓰면서 무엇을 느끼고 표현하지는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브런치를 구독하는 분들도 있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분들도 있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조용히 그저 글을 쓸 뿐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아직은 미약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나의 행위와 글들. 그것이 지금 내가 글과 글을 쓰는 행위에 느끼는 애틋한 감정이다. 글을 쓰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쓸모없는 일들 같았기 때문이며, 내 주제에 무슨 글이냐며, 글이란 재능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라 꾸짖던 내면의 냉소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글을 계속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작가다. 지난 1년 꾸준히 글을 써왔고,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작가인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독자로, 승객으로, 회사원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작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꾸준히 쓸 것을 가슴 깊이 되뇌어본다. 왜냐하면 그들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대작가의 글 잘 쓰기 비법이란 범인이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았지만 실은 글을 쓰는 소명에 따라 쓰고 또 쓰는 것뿐이었다. 무라카미하루키는 꾸준히 쓰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고, 류시화는 자신의 영혼을 찾아 수많은 여행길에 오르고 질문하고,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쓰고 또 쓰는 것이다. 단어를 고르고 내면을 살피고, 내면의 무엇인가와 만나는 그 과정을 끝까지 해낸 것이다.


그들에게 마법 같은 어떤 순간이란, 마법 같은 기적이란 그런 것이다. 소명을 찾고, 그것이 소명이라 여긴다면 묵묵히 따라가는 것. 그렇게 마법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꾸준히 써야지만 작가라면 나는 작가로서 살겠다. 내면의 깊이를 탐구하고 삶을 탐구해 만약 가슴 저 깊은 곳에 맑은 정수 같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글로써 표현하고 살겠다. 그리고 이 순간, 나를 작가라 말할 수 있어 기쁘다. 나 스스로가 작가에 대해 정의 내리며 그 말속에 포함해 버린 사회적 지위, 전문성, 재능처럼 어렵고 무거웠던 추를 내려버리고 행위하는 자로 돌아와 자유롭고 기쁘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삶에서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으므로. 당신과 나,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중략)

추구의 여정에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붓다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말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돼라.”

길 자체가 되기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의 길이든 부정의 길이든 자신이 선택한 길과 하나가 되어 묵묵히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모든 길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는 썼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러면 너는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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