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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결산: 겨울에 핀란드 한 달 살기는 어땠을까?

이제 돌아갑니다.

by 콩작가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과연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무엇을 꼭 얻어야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히말라야를 걷다가 핀란드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천했을 뿐 여행의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아무 목적이 없었다 해도 2024년 12월 나라도 나도 혼란한 상황에서 여행을 와서인지 이 여행은 무엇인가 조용히 삶을 반추하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왜 일을 그만두었는지, 내 인생은 어떠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 인연들은 무엇이었는지.. 머리로 복잡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면들이 있었다.




핀란드 겨울 여행, 할 만한가?


그래서 여행의 성과(?)와 결과(?)를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외적인 성과와 결과. 핀란드 여행은 과연 할만한가? 즉, 추천할만한가?를 중심으로 정리해 봤다.


첫 번째,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충분히 핀란드 겨울 여행은 매력적이다. 만약 누군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고 단출하고 조용하게 연말을 보내며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고 싶다면 핀란드만큼 좋은 곳도 없다. 실제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안전하다.


두 번째, 책 읽고 산책하고 글을 쓰기에 좋은 곳이다. 첫 번째와 일맥상통하는 이유다. 만약 어딘가 훌쩍 떠나서 한 달간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다 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면 좋은 선택 같다. 오전 9시 반에 해가 뜨고 오후 3시 30분 정도에 해가 지는데 해가 떠 있는 5-6시간 정도 헬싱키 시내나 근교를 다녀오면 (근교라면 저녁 6시 정도에는 도착하겠지만.) 그 외의 시간은 캄캄한 밤이므로 조용히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에 무척이나 좋다.


세 번째, 다른 북유럽 국가를 당일치기나 1박 2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다. 헬싱키에만 있기에 심심하다면 한 번씩 재미 삼아 다른 북유럽 나라를 다녀오면 나라마다 차이점도 느낄 수 있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 이유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라면 핀란드는 겨울에 한 달 살기 하기 좋은 곳이다.




개인적 성과: 글 쓰러 온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조용한 한 달을 핀란드에서 보내고 나면서 바뀐 나의 내면의 상태와 글쓰기는 어땠는지도 정리해 봤다.


첫 번째, 글쓰기.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 외에도 쓰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총 50 페이지 정도를 쓴 것 같다. 매일 못해도 평균 세 페이지의 분량은 쓴 셈이다. 쓰고 있는 글의 분량이 120페이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글쓰기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라톤과 비슷하다. 중간까지 온 이상 완주를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까지 왔다면 계속해서 써나가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경험이다. 달려보지 않을 때는 1km를 뛰는 것도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1km를 뛰어보면 어떻게 2km를 뛸지 알게 되고 그렇게 거리를 늘려가다 보면 하프를 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프를 뛰면 완주가 현실로 다가온다. 결국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여기서도 느꼈다.


글도 써봐야 안다. 매일 써 쓰다 보면 쓰지 않는 날이 어색해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120 페이지가 대단한 분량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불안과 끊임없는 자기 검열, 통제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백수로 지내면서 마음 편히 책만 읽고 글을 쓰고 산다는 것도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인생에서 전혀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매일 한다는 것. 대한민국 정규 교육을 받은 자라면 알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런 가르침을 준 적이 없다.


습관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돈이 되는지 묻는다. 잘 쓴 글인지 스스로 검열한다. 그리고 생존에 대한 불안감도 때때로 몰려든다. 이때 나는 노련한 조련사처럼 각종 방법을 썼다. 명상이라는 방편. 요가와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루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배워둔 것을 정말 잘 써먹었다.


그렇게 해서 안 것 중 하나는 조직의 이름을 벗어버리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인생의 절반은 학생이었고 남은 절반은 회사원이었다. 나를 드러내는 조직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월급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금, 인생에서 나도 처음 겪는 존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해 줬다.


세 번째, 배짱을 얻었다. 명상을 하고 글을 쓰면서 지내왔지만 마음 한 구석에 ‘과연 내가 잘한 일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여전히 연락하는 전 직장 동료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그 조직에 이제 속하지 않는다는 묘한 소외감까지, 불쑥불쑥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평온한 일상을 흔들었다.


글쓰기와 명상을 통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은 힘들게 얻었다는 생각, 어정쩡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과연 사회에서 홀로 설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바라보고 흘려보냈다. 그 과정에서 이런 무의식적 신념을 갖게 된 계기들을 하나씩 떠올렸고 가슴에서 보내주는 작업을 지속했었다.


핀란드에서 이 작업을 마치고 배짱을 얻었다. 퇴사를 한 것이 미친 짓 같았지만 했었어야 할 일을 했다는 신뢰가 생겼다. 시장 환경은 바뀌었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며, 회사의 방침은 내 가치관과 반대로 가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이를 먹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직함 하나 더 얻자고 내 일에 대한 이해도 없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얻은 직함과 월급을 위안 삼아 버틴다 해도 10년 안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많게는 40년 이상을 보내야 하는 나의 중년과 노년. 나는 많이 봐 왔다. 자신의 인생을 찾지 않는다면 노년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어제 유튜브에서 고미숙 인문학자의 쇼츠를 봤는데 이런 말을 했다.


“60대, 70대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할 때 정말 지혜와 진리에 대한 탐구가 없다면 나는 누구도 그 공허를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해요.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까 확실히 알겠다니까. 그게 없으면 노년 이후에 내가 홀로 살아갈 수가 없고 근데 홀로 살아갈 수 없는데 혼자가 되잖아요, 지금 사람들의 삶은. 가족이 너무 적어. 어떻게 가족이 공존해? 부부생활은 너무너무 멀어졌어. 그리고 친구들도 다 동년배 친구밖에 없어. 이게 치명적인 거야. 동년배 친구밖에 없으면 나는 고립돼. 오래 살아도 나는 고립돼. 그래서 이거를 깨야 돼요. 이거를 깨려면 내가 공부를 하고 있어야 돼. 공부를 하지 않는 한 절대로 세대를 가로지르는 친구를 만날 수 없어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움켜쥐려고 노력하는 시기를 지나면 놓는 시기도 지나야 한다. 가진 직업을 놓아야 하는 시기가 오고, 최대로 벌던 돈도 줄어드는 시기가 오고, 언제나 함께 일 것만 같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할 시기도 온다. 그때에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고 있다면, 진짜 삶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지 공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 시기를 버틸 것인가.


친척 중에 고위공무원까지 올라 집안의 자랑이었던 분이 있다. 아들도 서울대 의대를 나와 여러모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도 자부하는 분이다. 그분이 이룬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그 과정에서 얻은 가슴과 머리는 어딘가 공허하다고 느낀다. 어쩌다 같이 앉게 되면 동석자에게 지옥을 선사하는데 밤새 이어지는 성공담, 자신이 어떻게 그 일을 헤쳐갔는지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끊임없는 증명까지… 다 들으려면 10시간도 부족하다. 마치 70대가 되어도 40대와 50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같다. 그것 외에 자기 자신을 설명할 방법도 삶의 의미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이런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40대에도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지에 대해. 이것은 그냥 적당한 나이에 은퇴하고 자식들 다 시집장가보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정도의 수준 아니다. 노년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고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떤 생활을 영위할 것인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 꿈을 꾸어야 한다. 인간은 생의 어떤 구간이 오더라도 꿈을 꾸어야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꿈은 어린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내 남은 인생이 자립적이기를 원한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일에서 삶의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기에 늦게까지 일하고 싶다. 그렇다면 조직에 기대고 살 수만은 없다. 내 이름으로 살아보는 일을 해보지 않으면 영영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또, 내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고집스럽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어떤 일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 굳이 선택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여전히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지혜란 공부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경험하고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유다.


여기까지 생각을 했더니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사십여 년 멋모르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봤다. 그리고 그 40년이 절대로 길지 않았다. 삶은 쏜 살같이 흘러가 버린다. 남은 40년 남짓한 인생도 어차피 길지 않다면 흥미와 호기심에 따라 살아가보자고 생각했다. (인생이 거꾸로 가는 것 같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되어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보고.


‘에라 모르겠다.’


이제 내 인생의 모토다. 인생에 있어서 나는 장님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므로. 더듬더듬 벽을 더듬고 발끝으로 돌부리를 피해 가면서 나아가 보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주어진 인생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 이런 말을 하면 좋겠다.


“키키키. 이렇게 될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런 방식으로 올진 몰랐지.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


핀란드의 마지막이라 글이 길어졌다. 결론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이번 핀란드 여행은 좋았다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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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youtube.com/shorts/EfRdqncCdeA?si=Ymnpg7DiivWHNEv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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