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ntage appMaker May 05. 2024

Road To Parents

연쇄긍정마

명언카드만들기 - Android
자신이 해야할 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오직 나 자신 뿐이다.  - 오손 웰스

1. 가정의 달


가정의 달 5월. 80의 중간을 넘어가는 부모님들을 찾아뵈며 지난시절의 오답노트를 정리하게 된다. 아버지와 대화가 자연스러운 집은 우리세대에 흔치 않다. 물론 우리 아버지 세대는 더 심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와 논리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었던 시기는 내가 30대로 들어가는 시점이었고 그 때부터는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형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25년을 훨 넘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게 된다. 그런 의미로 어버이날에 방문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에 대부분 5월의 첫째주에 부모님들을 찾아뵙는다. 우리 부모님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나와 지인들의 의견”을 수렴해보면 Fire & Ice 라는 평가가 맞는 듯하다.  어머니의 활화산 같은 속도와 열정과 달리 아버지는 수만년을 빙하 속에서 잠자고 있는 전설의 존재같은 차가움이 있다. 두 분다 자신의 “인생의 바운더리(나와바리)”에서 랜드마크함을 가지고 계시다. 특히 사회적으로 그렇다. 그렇기에 어린시절부터 내가 강화학습처럼 받은 교육은 “사람과 조직, 그리고 예의”에 대한 것 뿐이었다.


나머지 이슈사항은 “너님의 인생”일 뿐이었다. 당시 내게는 다음과 같은 이슈가 있었다.  

 

Heavy metal 광신도(과격한 비주얼과 그에 걸맞는 덩치)

8 bit Apple Game 매니아와 프로그래밍

반자본, 반정권적 (5공비판) 언행

“대학안가고 브라질로 이민가겠다” 공언


위와 같은 문제가 있는 80년대 고등학생인 내게 부모님들은 “니가가라 브라질”이라는 말로 엣지있게 아들의 진상을 진압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된 교육보다는 무관심과 자포자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위험하게도 10대 재벌 자녀가 동네 편의점 처럼 수두룩하고 전두환 3째 아들까지 후배로 있던 고등학교에서 거침없는 막말을 하고 다녔던 아들을 생각하보면 이민을 가는 것이 가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당시에는 국내정서가 허락하지 않는 전방위적으로 답없는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행법상 큰문제(사소한 교통관련 과태료 조차없다)없이 중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볼 정도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2. Road to 어르신


아버지와 대화가 다른 집들은 어떨 지 모르곘지만, 자식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건 자식들의 Role일 뿐이다. 단지 자식이 조언을 바라면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조언은 “가능성”과 “당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80대 중반의 노인의 멘탈에서 저런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임에도 요즘따라 갱스터랩을 자주 하신다. 바로 아버지 고등학교, 대학 (경복, 서울대)의 단톡방 문자를 볼 때마다 내게 보여주며 특유의 시크한 워딩과 사대문 특유의 라임으로 갱스터랩이 작렬하실 때가 많다. 듣다보면 상당히 거북할 때만 많지만 나의 80년대 헤비메탈 광신도의 모습을 상기하면 들어들어야 할 것 같아서 끝까지 듣는다.


아버지의 메세지는 아래와 같았다.   


아버지 세대의 어른(나님의 할아버지 세대)은 “인간의 도”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내가 뭘 아냐.. 젊은 니네들이 알 지..” 였다고 한다(자식에게 위임).

요즘 것(7, 80대 노인들?)은 지내들이 다 잘났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늙고 무능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을 망친다.


가 주제였다. 사실, 듣디보니 맞는 듯 하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유시민이 한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누굴 가르치는 행위”는 “도를 넘어서는 안된다”에는 100%로 공감한다.


3. 가르치려 하지 말아라


인생에서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없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주위 어르신과 선배들을 눈으로 보고 자란 것이 있기에 하나의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함부로 가르치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못했던 것 같다(대학때는 한 분 빼놓고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대화형 수업을 하셨다).


경력, 나이로 “내가 해봐서 아는 데”라는 말을 시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을 수록 “운이 좋았음”을 깨닫지 못하는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보다 “조직과 동료의 힘”이 컸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PBL(Problem Base Learning)기반으로 소통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모든 지식과 깨달음을 알려주는 스승은 “자신”이고 그를 도와주는 멘토들은 동료이기 때문이다.


4. 정리


5월 가족의 달을 보내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게 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깨달음은 내게서 나왔겠지만 “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 딸에게는 부모의 욕심(지구정복) 따위는 더이상 강요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물론 사춘기 딸은 비웃기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리수를 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