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화양영화 20화

어메이징 에이미!

- 영화 <나를 찾아줘> 리뷰

by 김뭉치

저녁 하늘에 손톱달이 떴다. 꽉 차고 둥근 보름달을 본 게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이지러졌는지 모르겠다. 차면 기울고 기울다 보면 이지러진다. 달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 모든 게 다 ‘달’이다. <나를 찾아줘> 속 에이미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인 척 가장하지만 그녀 뒤엔 다른 모습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그녀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누구이고, 무엇일까. 영화는 실로 ‘어메이징’한 에이미를 쫓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의 첫 시퀀스. 그가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카메라 앵글로 판단하건대 아무래도 그녀는 그의 무릎을 베고 누운 듯하다. 그는 속으로 혼잣말을 되뇌인다. “여보, 무슨 생각해? 기분은 좀 어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What are you thinking? How are you feeling? What have we done to each other)?” 그때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본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원제: Gone girl)는 이 장면으로 시작해 이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는 관객의 감정은 앞뒤가 전혀 다르다. 처음에는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골몰하다 보니 남편 닉(벤 애플렉)의 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한다. 그러나 도입부의 장면이 반복되는 엔딩 시퀀스를 보고 나서는 영화가 또 다시 시작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건의 실체는 밝혀졌고 우리는 그들 부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의 오싹함은 배가된다.


그들의 관계가 처음부터 소름 끼쳤던 건 아니다. 첫만남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남편의 진술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제과점 앞에 흩날리던 설탕눈 사이에서 아름답게 “동화”처럼 입맞춤한 기억 말이다. 잡지에 심리테스트를 기고하던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는 첫눈에 이상형의 남자를 만났다는 걸 알아차린다. 신문기자인 그의 턱은 “bull·shit”이라 그녀를 속일 것 같았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말에 턱을 가린 채 진실만을 맹세하겠다는 위트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에이미가 자신의 신탁 자산으로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았을 때 닉은 실직하고, 곧이어 닉의 어머니가 유방암 4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려한 뉴욕 생활은 별 볼 일 없는 미주리 생활로 바뀌고 에이미의 조종과 간섭이 싫은 닉은 젊고 예쁘며 가슴까지 큰 제자(닉은 한 대학의 작문과에 시간강사로 출강했다고 한다) 앤디와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에이미가 차려준 더 바(The Bar)에서, 에이미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앤디의 입술을 엄지 손가락으로 살짝 훑은 후 키스를 한다. 에이미의 눈 앞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그동안 조금씩 드러나긴 했더라도 ‘진짜’는 단단하게 감춰져 있던 에이미의 본성은 이제 폭발한다. 바람 피운 남편을 응징하기 위해 그녀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운다. 남편이 자신을 살인한 것처럼 위장하고 자신은 자살해 남편을 사형시킬 계획을. 여기까지만 보면 좀 지나치긴 해도 바람 피운 남자를 응징하는 막장드라마의 여주인공 같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에이미라는 여자의 성격이 그게 다가 아니란 것이 드러난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멀리하자 강간죄로 그를 교도소에 처넣는 악랄한 여자였고, 자신을 못 잊는 첫사랑 -물론 그 남자의 행동을 보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역시 그녀의 본모습이 아닌 어메이징한 외모, 어메이징한 고급 취향을 사랑한 것 같다-을 이용한 뒤, 커터칼로 목을 긋고는 납치범도 모자라 강간범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여자다.


무엇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는지는 영화에서 깊게 묘사되지 않는다. 단지 에이미의 부모가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동화 시리즈를 집필하며 늘 그녀와 동화 주인공 ‘어메이징 에이미’를 비교해왔다는 것, 그녀가 정말 어메이징하기를 요구해왔다는 것, 그래서 에이미는 늘 어메이징한 에이미가 되도록 노력해왔지만 현실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는 것. 그녀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를 통해 명문대를 나온 부유한 외동딸이자 너무나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어메이징 에이미’를 연기할 뿐이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그녀의 성격이 좀 과하게 엇나가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칠 수도 있다. 동명의 원작소설에서는 그녀의 과거가 그보다 더 불행했다는 게 묘사된다고 한다. 원작을 보면 에이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까. 에이미는 리얼리스트다. 타인의 존재를 통해 자기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녀는 자존심이 세고 자존감이 강하다. 어쩌면 이하이가 부른 <Rose> 같은 여자인지도.


어쨌든 핀처의 영화가 놀라운 점은 에이미와 닉 두 부부의 이야기를 넘어 자극적으로만 사건을 중계하는 미디어의 실체, 자식을 이용하는 부모의 교활함을 끼워넣고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부부가 펼치는 연기와 각자 주장하는 이야기의 얼개는 꼭 대결의 그것처럼 보이며 과연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이 지점에서는 언뜻 <미스터&미세스 스미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다. 닉은 증오하고 조종할 뿐인 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자며 에이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에이미는 “그게 결혼이야”라며 오히려 닉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닉은 에이미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지만 그녀로 인해 자서전을 쓰게 되고 더 바의 체인점을 열게 된다. 그녀를 통해 얻는 사람들의 관심 앞에서 닉은 또 한 번 연기를 하기로 한다. 원작에서는 닉이 원래 과시욕이 강한 인물로 나온단다. 영화에서의 닉은 그렇게 과시욕이 강한 인물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위한 책임감 때문에 그녀와 사는 것을 선택한다. 어딘지 모르게 소심해보이고 우유부단한 밴 애플렉의 닉과 묘하게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에이미를 통해 자신이 얻게 되는 실리를 계산해 내린 선택임이 보인다.


<나를 찾아줘>의 큰 수확은 로자먼드 파이크라는 여배우의 발견이다. 사실 그녀는 그동안 별로 눈여겨보지 않은 배우였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그녀의 헤어 길이는 세 번 변하는데(롱, 미디엄, 단발) 그때마다 놀랄만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아한 그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소유욕은 정말이지 섬뜩하다. 언제가 됐든, 에이미를 꼭 한 번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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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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