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화양영화 14화

트럼프 시대에 '바이스vice'를 생각하다

- 영화 <바이스> 리뷰

by 김뭉치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였다. 연출, 연기, 편집, 호흡, OST까지 완벽했다. 가장 재미있었다. 애덤 매케이 감독의 영화 <바이스> 얘기다. 감독의 전작 <빅 쇼트>는 두 번을 봤을 정도로 신선하고 리듬감 있고 독창적인 연출이 압권이었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진정한 실세였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바이스>는 <빅 쇼트>에서 더 나아가 대중성까지 두루 갖췄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는 고요하고, 인내하며,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지도자다. 시끄럽고, 성급하며, 사사건건 속내를 드러내는 트럼프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딕 체니가 트럼프보단 한 수 위 같다. 딕 체니는 허수아비에 가까웠던 부통령의 권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오히려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든(어쩌면 딕 체니보다 조지 W. 부시가 이 영화를 더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존 볼턴 등 네오콘(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딕 체니 같은 사람이다. 조용하며, 무슨 패를 쥐고 있는지 떠들어대지 않는 사람. 영화는 그 점을 명백히 한다. 딕 체니는 행동하기에 앞서 상대를 관찰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본다. 그 순간들이 모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 같은 부통령 딕 체니를 만든 거다.



애초에 딕 체니를 창조한 건 신이 아니라 그의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였다. 딕 체니는 1941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났다(그의 부모는 그와 달리 민주당원이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목가적인 풍경이 압권인 와이오밍주 캐스퍼에서 자란 그는 아내 덕에 예일대학교에 들어가지만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다 중퇴한다. 이후 전기 설비공으로 일하다가 다시 와이오밍대학교에 입학해 정치와 문학을 공부했고, 1965년 와이오밍주의 상원 입법부 교생이 되었다. 이윽고 딕과 린은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에서 박사 학위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리고 딕은 국방부 인턴십에 지원,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의 보좌관으로 정치계에 입문한다.



그렇다면 린은? 똑똑하기로는 딕보다 그의 아내가 한 수 위였는데?

린에 대해 영화는 그의 입을 빌어 말한다. 나는 명문 대학에 갈 수 없고, 회사 사장이나 시장이 되지도 못해. 이 세상이 여자에겐 그래. 그래서 난 당신이 필요해. 그런데 지금 당신은 세상 쓸모없는 인간이야. 앞으로 달라질 거야? 아니면 내가 시간 낭비하는 거야?”



학업엔 뜻이 없고 술이나 마셔대고 싸움질이나 일삼는 딕을 매섭게 몰아붙인 린 체니 덕에 딕의 인생은 달라진다. 린은 킹 메이커이자 후엔 자신의 재단을 갖는 이사장으로,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산다.



그런데 이쯤 하면 왜 이렇게 구구절절 딕 체니에 대해 떠드는지 궁금할 테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이 지경까지 끌어내린 사람이 바로 딕 체니이기 때문이다. 지루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벌인 일을 모두 알아야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부통령은 머나먼 한국의 국민인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이렇게 생각하면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도 섬뜩하기 짝이 없다). 딕 체니는 럼즈펠드의 보좌관을 거쳐 공화당 하원의원, 백악관 최연소 수석, 석유 대기업 핼리버튼 사장을 거쳐 부통령이 된다. 그는 네오콘을 요직에 앉히는 등 모든 인사에 관여했고, 대통령에게 오는 메일들을 일일이 검토했으며 우익 채널 폭스를 만든다. 법을 교묘히 이용해 고문과 영장 없는 감시를 허용하고 결국에는 이라크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을 통해 그가 몸담았던 핼리버튼과 딕 체니가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딕 체니에게 관심이 없었다. 영화가 꼬집는 건 바로 이 점이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 비극이 모두 딕 체니의 결정으로부터 나왔음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아는가. 알고자 하는가.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심장을 뺏기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갈한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가리면 자칫 우리의 심장이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주권을 빼앗긴 채 인형극의 꼭두각시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트럼프 시대에 우리가 바이스vice(부통령이라는 뜻도 있지만 악덕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단어)를 생각해야 할 이유는 명백해진다. 트럼프가 열렬히 지지하는 <폭스뉴스>의 탄생과 현재를 비교해보라. 전 대기업 수장으로서 딕 체니가 펼친 대기업 규제 철폐 정책을 보라. 그들의 악덕이 우리의 심장을 앗아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머시니스트> , <아메리칸 사이코>, <아메리칸 허슬>, <바이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노력으로 캐릭터의 외양을 완벽히 구현해내는 크리스천 베일이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스티브 카렐은 거침없는 캐릭터인 도널드 럼즈펠드를 생생하게 극화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 역시 우리에게 뼈저린 고통을 안겼다. 에이미 아담스 역시 완벽한 린 체니 자체로 분해 권력욕에 사로잡힌 우아한 여성 캐릭터를 고스란히 선보인다. 크리스천 베일은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와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 부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였다. 앞서 말한 모든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여우조연상, 편집상, 분장상 후보였으며 아카데미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코미디에서는 분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69회 베를린 영화제 비경쟁부문 출품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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