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우먼이 된 엄마

by 김뭉치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심장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어머니는 딸에게 두 가지를 인생의 지침으로 물려주었다고 한다. 첫째 독립적일 것, 둘째 주체적일 것.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일화를 들으며 나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는 내게 인생의 지침 같은 걸 말해준 적이 없다. 다만 엄마는 늘 내 편이었다. 그 감각을 나는 잊지 못한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늘 친구로 여겼다. 엄마는 나랑 다니면 심심할 새가 없다고 했다.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그다지 말이 없는 나는 엄마 앞에서라면 종일이라도 종알댈 수 있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내가 사귀었던 모든 남자들을 알고 있고 적어도 한 번씩은 그들을 만났다. 엄마는 내 친구들의 이름과 성격과 특징을 아주 세세한 것들이라도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하루 일과를 알고 있었고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았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늘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설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무지하게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종종 지나치게 예의가 바르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33년을 그렇게 살았더니 이제는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내가 아닐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엄마는 아닌 것에 있어서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행동으로 보여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반에서 성적으로 1등이었고, 부반장이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이상하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모피를 두르던 그 할머니 담임 선생님이, 나는 무서웠다. 선생님이 불러서 학교에 간 엄마는 담임이 의뭉스럽고 교묘하게 촌지를 요구하는 걸 파악했다. 그러나 엄마는 촌지를 건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에 실험관찰책을 가져가는 걸 깜빡했다. 담임은 내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하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통지표에 늘 '영양실조'라고 적혀 있던 키만 크고 깡마른 나는 담임이 말한 대로 딱 100번, 성실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 5일 동안 걷질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촌지를 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화난 엄마가 전화를 걸자 담임은 나한테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킨 적이 없고 죄책감에 시달린 내가 스스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이나 한 거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우리 애는 거짓말을 하는 애가 아니라고 담임에게 맞섰다.


5일 뒤 학교에 간 나는 더 이상 담임이 무섭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주아주 잘 사는 집 애들만을 예뻐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에선 올백을 맞았다. 그렇게 나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담임선생님들께 전화를 해주었다. 하루 정도 학교를 안 나가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중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내가 화장을 하고 다닌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나는 누차 선크림을 바른 거라고 담임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믿어주질 않았다. 때로는 내가 지각을 한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담임 말만 듣고 나를 윽박지를 법도 한데 엄마는 선생님이 잘못 안 거라고, 우리 애는 화장 따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가는 걸 엄마가 똑똑히 봤다는 거다. 갑자기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피곤하다 보니 종종 지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선생님이 이해해달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엄마는 내가 다니고 싶다는 학원만을 다니게 했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은 아빠에게 얻어맞는 일이 있어도 사 주었다(내가 책을 사는 걸 아빠가 왜 그리 싫어했는지는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은 엄마로 인해 풍족하게 채워졌다.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구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엄마 덕분이었다.


어제 꿈에 엄마가 캣우먼이 되어 나타났다. 타이트한 가죽 코스튬을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당당하고 멋졌다. 엄마, 하고 부르자 엄마는 윙크를 하며 뒤를 돌아봤다. 역시 그녀는, 영원한 나의 히어로였다.



엄마, 영원한 딸들의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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