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에겐 충전이 절실하다

- 프롤로그

by 김뭉치

퇴근을 하면서부터 새로운 지옥이 시작된다.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3호선으로 환승한 뒤 마을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또는 회사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배차간격이 참으로 늦은, 그러니까 2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 연희교차로에서 환승, 또 다른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간 뒤 다시 기업은행 사거리에서 마을버스로 환승해 집 근처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면 나는 녹초가 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종종 야근 후 타게 되는 택시 안에서 서로 떠밀고 떠밀리며 부유한다.


때로는 퇴근 후 치미는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환승 정류장에 있는 만두집에서 만두를 사 가는 때도 있다. 그 순간 당장 먹지 않더라도 나의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를 사 들고 간다는 사실만으로, 내겐 적잖은 위안이 된다. 든든해진다.


가끔 날씨도 좋고 체력도 허락하는 어떤 날에는 동네를 산책하다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에 내가 어깨에 짊어 멘 건 한두 권의 책과 노트북, 집에 가서도 봐야 할 교정지 등이라 그냥 집으로 향하는 날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럴 때의 나는, 집에 가면 일단 눕고 본다.


실은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자진납세했기 때문에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남는 에너지는 거의 없다. 바닥을 친다고 보면 된다. 소진됐다. 나에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옳을 거다.


KakaoTalk_20180831_154648617.jpg 나에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박종민


야근을 한 날에는 더 심해서 잠깐의 눕기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씻고 바로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에라도 나는 억지로 무언가를 한다. 누워서 책을 읽거나 남편과 영화를 본다.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의 전시된 행복을 엿보기도 한다. 이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반죽했기에 부푼 시간들이다. 그리고는 남편이 들려주는 책 속 문장들에 귀를 기울여야 가까스로 잠이 온다. 어쩌면 직장을 다니며 보낸 숱한 불면의 세월은 다음 날이 오기 전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발버둥 쳤던 스스로가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 날 피곤할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 온전한 나의 시간을 만들어야,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충전해야, 다가올 내일을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나는 어쩌면 머리부터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공무도하가>¹의 ‘님’처럼.


그래서 이 매거진은 죽도록 일하고 퇴근해 집에 가면 밤 9시인, 저녁 먹고 집안일 좀 하다 보면 훌쩍 11시라 놀라는, 그냥 자면 억울하니 다음 날 피곤할 걸 알면서도 새벽 2시까지 스마트폰을 보는, 당신들과 함께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충전이 절실하다. 잠들기 전 우리가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렸다!’ 의욕 섞인 만족을 느끼기보다 그저 좀 덜 뒤척이는 밤을 보내기를, 어쩌다 한번 가볍게 피식 웃거나 따뜻하고 둥근 고양이의 등을 만지듯 소중했다고 되뇌기를, 그리고 이 매거진이 나와 당신을 위한 본격 당 충전 에세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쪼꼬바 하나 먹고 시작합시다 :D



¹)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將奈公何)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http://bitly.kr/tU8tz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