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 어느 직장인의 눕기 예찬

by 김뭉치

격주간지 잡지를 만드는 편집자의 사이클은 2주를 주기로 돌아간다. 한 달로 놓고 보면 출근을 하는 20일 중 8일이 마감이다. 그렇다고 남은 12일이 편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하루는 편집위원회의, 하루는 우리 잡지의 인기 지면인 신간 동향 토크를 하며 사라진다. 발송일도 있다. 우리는 손수 독자에게 배송할 잡지를 우편과 택배로 나누어 포장하고 우체국에 가 부친다. 이제 9일 남았다. 이 기간 동안엔 다음 호와 다다음 호의 기획안을 꾸리고 필자를 서치하고 원고를 청탁한 뒤 이번 호 원고 중 미입고 원고가 있으면 필자들에게 독촉하고, 마감하느라 못 뵌 필자들도 만난다. 간간이 잡지 이슈와 관련된 행사 기획이나 준비도 하며 취재를 하고 원고를 쓰기도 한다. 이 와중에 9월이 되면 다음 해 연재와 디자인을 구상하고 잡지 발행 20주년 같은 기념일엔 특집호를 기획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아직 마감은 시작도 안 했다는 걸. 마감 때의 업무에 관해선 언급조차 못했는데 지면이 쭉쭉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놀랍다. 그것도 팀원 한 명과 단둘이서.



출판계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야근 기계가 되었다. 툭하면 야근을 했고 동이 틀 때 집에 가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점점 안 좋아졌다. 5년 전 해 뜨고 집에 간 다음 날부터 걸리기 시작한 임파선염과 편도선염은 이제 하루만 야근을 해도 성실하게 재발한다. 내가 팀장이 되고 나서는 이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었다. 연초에는 연간 일정을 짜고 월초에는 월간 일정을 계획하며 주초에는 주간 일정을 그려보는 걸 시작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 뒤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업무 시간 내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효율을 내는 것. 일할 때는 플로우가 중요하다. 이 리듬이 깨지거나 조금만 루즈해지면, 새벽 세 시까지 야근하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체제를 정비해 야근은 줄였지만, 휴롬도 아닌데 회사 일에 온 에너지를 쥐어 짜내다 보니 정작 퇴근 후가 문제였다. 집에 가면 일단 눕고 본다. 씻지도 못하고 누울 때, 손발은 씻고 누울 때, 개운하게 씻고 누울 때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은 눕는다. 한 시간만이라도 누워서 뒹굴뒹굴 꼼지락꼼지락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방전된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처럼 서서히 차오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누워 있는 그 시간은 꼭 멈춰진 듯 나만의 사이클에 맞춰지며 이후의 저녁시간을 오직 나만을 위해 쓸 수 있게 도와준다. 누우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우르슐라 팔루신스카(『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누워서 다른 세상을 보고 평온함을 느낀다)의 메시지는 정말로 유효하다!


누우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우르슐라 팔루신스카의 메시지는 정말로 유효하다


우리는 여유가 없다. 강도 높고 결정해야 할 것 투성이인 복잡한 노동을 하느라 건강을 챙길 시간조차 없으니 말 다 했다. 삶과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어려워했던 카프카의 단편(「첫 번째 시련」 ) 속 곡예사처럼 공중그네를 타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니 때로는 아무 생각 따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법. 눕는다는 건 하루 종일 고생한 나에게 여유를 허한다는 행위이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일이다. 이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워라밸이 맞춰지면 우리는 자유로워지며 조금 더 행복해질 테니까. 누워 있는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이 조금 더 충족될지 모르니까.


아, 이제 이 원고를 끝냈으니 나도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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