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연보랏빛 원피스

- #미투,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by 김뭉치

엄마가 과일을 안 먹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기에 “그냥 졸려서”라고 답했다. 내 방 문을 닫기 전 거실의 TV에서는 <파파>가 나오고 있었다. 배용준과 이영애가 나왔다. 젊은 부부가 이혼한 뒤의 이야기인데, 이전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던 줄거리라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였다. 특히 <젊은이의 양지> 이후 배용준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파파>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드라마가 됐다. 그런 <파파>를 마다하고 나는 방문을 닫았다.


무서웠다. 방문을 닫았지만 문틈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입을 막고 흐느꼈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쑥 빼보았다. 잔디밭이 보였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우리 집은 4층이었다. 애매하게 높았다. 그 애매함 때문에 자칫하면 다치기만 하고 죽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참을 잔디밭만 바라보다 누웠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날은 가족 모두가 축구를 보러 갔다. 홍명보 선수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설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보랏빛 원피스를 입었다. 그때 나는 이미 주관과 취향이 뚜렷한 아이라서 내가 입을 옷은 직접 골랐다. 번데기도 사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라 행복했다. 아빠는 워낙 출장이 잦았고 그리 가정적이지 못해서 쉬는 날에도 우리와 함께하는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함께였다. 나는 그게 무지 좋았다.


경기를 보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아빠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갔다. 남녀공용화장실이었지만 그때 이미 아빠는 나를 여자로 대우해줬기 때문에 함께 들어가진 않았다. 아빠 요 앞에서 담배 피우고 있을 테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아빠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볼일을 보고 나왔더니 웬 아저씨가 내 앞을 막고 서 있었다. 아빠에게 가려고 그 아저씨를 피해 돌아가려니 내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을,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을 막아섰다. 그제야 나는 그 아저씨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아저씨는 화장실로 들어오는 문을 잠그고 달려와선 갑자기 내 입을 막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소리 지르면 죽어.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왔다. 아니, 사실 두려움은 이미 그 자리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볼일을 마친 내 앞에 서 있을 때부터 나는 두려웠다. 너네 가족 어디에 앉아 있는지 내가 다 알어. 소리 지르면 너뿐만 아니라 가족들 다 죽여 버릴 거야. 알아들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가족들 안 죽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았지?


지금 그놈의 얼굴은 기억 못하지만 그때 내가 울면서 조용히 외쳤던 문장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저씨, 10초 지났어요… 응. 그래그래. 10초만이라고 했잖아요. 아파요. … 어휴. 알겠어. 10초 지났어요. 아파요. 너무 아파요…


그 미친놈은 나에게 10초를 세라고 했다. 10초만 참으면 우리 가족들은 안 죽는다고 했다. 10초를 못 참고 내가 소리를 지르면 그때 우리 가족은 모두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10초를 셌다. 10, 9, 8… 10초는 영겁 같았다. 10초가 지나도 그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또 10초를 세고 또 10초를 세고… 우리 가족이 이름도 모르는 이 놈한테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놈은 손가락을 빼면서 나한테 속삭였다. 지금부터 연기를 하라고, 넌 나를 만난 적 없는 거라고. 내가 너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댔지? 거짓말해도 죽어. 너랑 가족들 다 죽어.


나는 기진해 화장실을 나왔다. 아빠를 소리쳐 불렀다. 아빠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었다. 얼굴은 또 왜 이리 빨갛냐고, 왜 울었냐고 물었다. 나는 안에서 넘어졌다고, 너무 아파서 이제야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있는 좌석으로 가면서 나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놈이 우리 가족을 보고 있을까 봐, 우리 집까지 따라와서 우리 집 주소를 알아갈까 봐 겁이 났다.


울면서 잠이 들었다. 혼곤한 잠 뒤에 모든 게 꿈이었길, 꿈으로 남길 바랐다. 눕는다는 건 그런 힘을 주니까. 이후 나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마주하게 될 고통이 두려웠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웠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해결해준답시고 꼭 피해자의 잘잘못을 따지고 드니까. 상처가 후벼파지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잊고 싶었고 그래서 잊고 살았다. 다만 그 뒤로 공용화장실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은 극도로 꺼리게 됐다.


나는 그때 고작 열 살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대학생이 됐을 때, 친구들과 어린 시절 당한 성폭력을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때 이후로 나는 몇 가지의 끔찍한 기억을 더 얻은 뒤였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여자들의 유년기에는 이런 공포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 걸. 그건 아빠 친구일 수도 있고 나처럼 아예 모르는 타인일 수도 있고 이웃 주민일 수도, 친구의 아빠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이런 여러 가지 종류의 공포를 품고 산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서는 안 되는 공포.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공포. 그리고 모든 걸 고백했을 때 닥치게 될 것들을 무연히 감당해야 하는 공포까지. 오랫동안 감춰왔던 이 공포체험담을 풀어내는 건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봐 왔던 가해자들의 비겁한 변명에 한번쯤 소금을 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의 생채기에 소금을 뿌려왔으니 내 고백의 서사의 쓰린 맛도 봤으면 한다.


나는 여전히 1996년, 열 살의 그 소녀처럼 힘이 없고 약하다. 그러나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는 카일 스티븐스의 가해자를 향한 외침을 기억한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로 사는 게 아니라 생존자로 서려 한다. 그러니 나도 #미투. 고백은 계속될 것이다.



(좌) 성폭력 생존자 카일 스티븐스 (우) 가해자 래리 나사르 ⓒ Brendan McDermid,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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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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